2023년 가을 135호 - 여름방학 맞이 「거리의 질감」 공동체 상영회 / 박임당
여름방학 맞이 「거리의 질감」 공동체 상영회
박임당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각종 미션 수행 중
지난 6월 27일, 노들야학에서는 여름방학식 사전 행사로 리슨투더시티에서 제작한 장애인 이동권 다큐 「거리의 질감」 공동체 상영회를 진행했다. 이 작품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2023년 4월 27일부터 9월 3일까지 진행된 ‘걷기, 헤매기’라는 타이틀의 전시회에 출품되기도 했다. 리슨투더시티의 박은선이 연출을 했고, 노들야학의 학생인 조상지와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문애린이 출연했으며, 뮤지션 말립 님이 음악을 맡았다. 방학을 맞이하는 학생들, 그리고 온라인으로 신청한 손님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난 후, 은선, 상지 언니, 말립 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도 가졌다.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과 지하철 행동에 연대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은선은 장애인 이동의 현실을 조금 다른 감각으로 영상에 담았다. 우선 이 영화는 덜컹거림의 영화인 것 같았다. 애린이 집을 향해 “굴러 가는” 시간 동안 바퀴와 거리가 마찰하며 발생하는 덜컹거림, 상지 언니가 지하철의 위험천만한 리프트를 타며 비장애인 보행자와 충돌할 뻔한 상황의 덜컹거림 등,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길을 간다는 것, 그것의 질감을 담아내기 위해 영화는 애를 쓴다. 무심한 도시의 소음들 속에서 덜컹거리며 나아가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경험과 그 거리의 질감을 소리와 움직임을 통해 담은 것이다.
연출에서 인상 깊은 부분은 상지 언니의 인터뷰 장면이다. 상지님은 보완대체의사소통(약칭 AAC) 기구를 사용하는 뇌병변장애인인데, 인터뷰의 답변을 미리 발로 한 글자 한 글자 쳐서 빼곡히 작성을 해왔다. 노들야학 교실을 배경으로 AAC에 미리 입력해둔 답변이 재생되는 동안, 상지님은 언제나처럼 손짓과 소리를 통해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했다. AAC에서 흘러나오는 조금은 딱딱한 기계적 음성에 상지 언니의 생생한 소리와 움직임이 더해지는 그녀만의 독특한 말하기 방식이 잘 담겨있었다. 상지 언니의 말하기 질감 그 자체가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일전에 다른 행사에서 상지 언니가 사회를 본 적이 있었는데, 사회자 대본을 AAC로 준비해왔기에 관성적으로 마이크를 한 개만 제공하여 AAC의 소리만을 증폭시켰다. 가만히 지켜보니 상지 언니는 그러한 조건에서도 자신이 그 언어에 담고자 하는 감정과 메시지를 몸짓과 소리로 표현하고 있었다. 행사 중간에 뒤늦게 상지 언니의 소리를 따로 잡을 수 있는 마이크를 전달했고, 부족한 지원을 부끄러워해야 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나는 겪어야 알 수 있었던 것이 이렇게 필름에 잘 담겨있어 정말 좋았다.
말립 님의 영화 삽입 음악을 함께 듣는 시간도 야학에서는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물론 언제나처럼 주무시는 분들은 몇 분 계셨지만, 전반적으로는 음악에 집중하는 공기의 흐름과 긴장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음악 자체도 정말 좋았지만, 학생분들이 익숙하게 듣는 장르도 아니고 가사도 없는 음악을 진지하게 듣는 모습이 익숙한 공간을 낯설게 만들었다. 이어진 인터뷰에서 말립 님이 그동안 『빅 이슈』 관련 활동에 오래 참여해 왔고, 앨범도 발매한 것을 알게 되었다. 소수자 운동과 함께 한 말립 님이 또 이렇게 인연이 되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행사 전체를 통틀어 모두의 마음에 뜨거운 무언가를 던진 것은 마지막 상지 언니의 응답이었다. 은선이 사회를 보기로 한 나에게 사전 질문지를 보내주었는데, ‘상지 언니에게 노들야학이란?’이라는 질문이 있었다. 평소 야학에서는 이런 질문을 서로 잘 하지도 않거니와 너무 추상적인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빼면 좋겠다고 피드백을 했는데, 은선은 그대로 가자고 했다. 상지 언니에게 이 질문을 건네면서 나는 “저희는 사실 이런 걸 서로 물어보지 않는데요~”라며 너스레를 떨었고, 상지 언니는 이에 대해서 모두의 코를 새빨개지게 하는 답변을 준비해 왔다. 그 답변의 전문을 싣는다.
“나에게 노들야학이 어떤 의미냐는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 저는 그냥 눈물이 났습니다.
눈물이 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뭔가가 가슴에 꽉 차면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노들야학은 언어장애가 있는 저에게 목소리를 가지게 해 준 곳입니다.
7년 전 처음 학교에 나올 때 저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같이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방법을 몰라서 수업만 받고 아쉬워하며 집에 갔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경험들을 통해 집회도 나가고, 발언도 하고, 학교 오면 선생님과 동료들과 얘기하는 수다쟁이가 됩니다.
말을 못하는 저에게 다양한 방식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 준 곳입니다.
저에게 노들야학은 연대의 힘을 가르쳐준 곳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성일장 옥상에서 철거민 투쟁을 할 때 천성호 교장선생님을 포함해서 많은 선생님들과 동료들이 와서 힘을 주었고, 강제집행을 코앞에 두고 용역들과 대치했을 때 노들야학 선생님들과 동료들이 와서 안승남 구리시장을 만났고, 그로 인해 조합과 합의를 통해 어머니와 저는 살아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연대의 힘을 배웠고, 고마움을 알았습니다.
학교로 돌아와 감사 인사를 했지만, 모두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였다고 얘기하면서 오히려 고생했다고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연대는 여러 명이 작은 것을 모아 큰 것을 준다는 걸 알았고, 그것을 배운 저는 투쟁현장에서 연대의 힘을 보태 제가 받았던 큰 감사함을 갚으려고 합니다.
노들야학은 저에게 장애인 조상지가 아니라 인간 조상지로 살 수 있게 해 준 곳입니다.
시설과 집에 있을 때 저는 중증장애인이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에게 밥을 얻어먹기 때문에 어머니보다 하루 빨리 죽는 게 제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지금은 학교에서 부총학생회장으로 권력의 맛도 보았고, 영화를 만들어 상도 받았고, 일자리를 통해 월급도 받아봤고, 장애인 권익옹호를 위해, 하고 싶은 투쟁을 마음껏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저는 하고 싶은 게 많고, 반드시 할 수 있다고 제 자신을 믿습니다.
하루하루 성장해 나가는 제 자신이 대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이 모든 것은 노들야학을 만나고, 노들야학에서 배우고, 선생님들과 동료들의 지지와 사랑이 있었기에 제가 도전하는 인간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들야학에서 받은 모든 것을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해 도전하는 인간 조상지로 살겠습니다. 노들야학 정말 사랑합니다. 노들야학 정말 감사합니다.”
멋진 답변에 말을 덧붙이자니 조금 군더더기 같지만, 상지 언니의 답변은 개인적으로는 내가 왜 노들야학에서 활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다시 되짚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상영회에 참석하지 못한 다른 노들야학의 구성원들에게도 언니의 이러한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기에, 바쁜 일정 속에서도 이 글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녀의 답변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는 어떤 생각을 피어 올렸는지 몹시 궁금하지만, 서로의 활동들 속에서 그 마음을 살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멋있는 영화 「거리의 질감」이 앞으로 여러 곳에서 상영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리슨투더시티의 은선, 뮤지션 말립, 학생이자 활동가인 조상지의 활동이 또 새롭게 펼쳐져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리라 기대할 수 있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