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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형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 조의를 표합니다

 

 

 우정규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동권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 공공일자리)가 처음 도입되었던 2020년, 서울시는 선도적으로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게 되었다며 직접 보도자료를 쏟아냈다. 하지만 2023년 여름부터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를 둘러싼 서울시의 정세는 상당히 엄혹해 졌다. 무엇이 변했을까.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지금까지 비경제활동인구로 살아가면서 가장 노동 능력이 없다고 평가받았던 최중증장애인을 우선적으로 고용하는 맞춤형 일자리이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 참여하는 최중증장애인 노동자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UN 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과 「장애인복지법」 등 장애인 관련법에 명시된 장애인의 권리를 모니터링하고 인식 제고 캠페인을 진행하며,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대한민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권고한 내용을 홍보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캠페이너(Campaigner)인 셈이다. 대한민국은 2008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한 국가이며,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2014년과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장애인의 존엄성, 능력, 권리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한 캠페인 진행을 권고한 바 있다. 이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서울시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서울시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를 통해 중증장애인이 수행 가능한 맞춤형 노동을 제시해 중증장애인의 일자리를 지원해왔고, 일자리에 참여하는 중증장애인 노동자는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가 한국사회에 권고한 인식 제고에 따른 장애인 인식개선 캠페인을 앞장서 수행해 왔는데, 이 사실은 2020년도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2021년 서울형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보조사업자 모집공고문 내 ‘직무유형’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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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특성은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또 다른 사회적 중요성과 기능을 나타내고 있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단순히 공공 부문에서 예산을 지원하는 일자리가 아니다. 국가가 지자체가 수행해야 할 의무를 중증장애인의 노동을 통해 실현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서울시의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사업을 올해로 4년차를 맞이했다. 하지만 정권이 변하고 서울시장이 변하면서 이 일자리의 성격과 본질을 왜곡하고 탄압하는데 서울시가 앞장서고 있다. 서울시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도입 취지와 목적은 무시한 채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춰 최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을 또 다시 난도질하고 있다.

 

  서울시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변질’을 이야기하지만, 지역사회에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 참여해왔던 최중증장애인들은 서울시의 ‘변질’에 난감할 따름이다. 서울시는 지난 6월 29일 ‘2023년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일자리사업 지침 및 직무매뉴얼 안내’ 공문을 통해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직무를 변경함을 일방적으로 통보하였다.

 

 

서울시의 ‘2023년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일자리사업 지침 및 직무매뉴얼 안내’ 공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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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8일 각 수행기관 담당자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하고 의견을 모았지만, 수행기관의 요구는 일체 반영되지 않았다. 기존에 중증장애인 맞춤형 권익옹호 직무를 통해 이루어지던 일자리 활동은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권익옹호 직무 대신 최중증장애인 노동자들은 수행할 수 없는 ‘서비스업 보조’(체육시설 보조, 병원·검진센터 보조, 도서관 사서 보조) 직무를 제시하여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의 본질을 훼손했다.

 

  서울시가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직무를 훼손하는 것은 이 일자리 자체를 살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가 살해된 그 공간에는 지금까지 중증장애인이 문턱조차 넘지 못해서 배제되었던 보건복지부 모델의 서비스업 보조 일자리가 들어섰다. 서울시는 최중증장애인들이 실제로 수행할 수 없는 직무를 제시하며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을 다시 변두리로 몰아내고 있다. 우리의 삶은 어디까지 밀려나야 할까. 정치권의 칼춤에 가장 약한 이들이 먼저 베어져나가고 있다.

 

  그래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 7월 6일 공식적으로 서울형 권리중심 공공일자리가 사망했음을 선포했다. 그리고 마로니에공원 한 편에 분향소를 마련했다.

 

  ‘동행·매력 특별시 서울’을 실현하겠다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중증장애인 노동권과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과도 동행할 의사는 없어 보인다. 국민의힘의 목줄을 찬 서울시의 행정 아래 처참하게 훼손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는 더 이상 중증장애인이 설 곳이 없어졌다.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더 이상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고, 지금까지 맞춤형 노동으로 캠페인에 앞장섰던 중증장애인 노동자는 다시 길바닥에 주저앉게 되었다. 이 싸움의 시작을 알렸던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최중증장애인 노동권 사망’에 조의를 표하는 것으로 그 인사를 전했다.

 

  진보적 장애인 운동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추모하며 싸워왔다. 지금까지 누군가의 영정을 들고 싸워왔음에도, 우리는 어느새 또 다른 동료의 영정을 마주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서울시의 권리중심 공공일자리가 사망했고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이 사망했음을 알린다. 그러나 단지 그 사망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이 부활할 때까지 싸울 것이다. 그러니 우리, 마로니에공원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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