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봄여름 134호 - [나는 활동지원사입니다] 평범한 일상 그 어딘가에서 / 임미자
나는 활동지원사입니다
평범한 일상 그 어딘가에서
임미자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는데, 친구의 꼬임에(?) 활동지원사 일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지금은 천직이라 생각하고 있다.
오랫동안 하던 일을 정리하고 잠깐의 휴식을 갖고 있던 시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일을 다시 해야 하는 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불안한 마음을 털어놓으니 ‘장애인 활동지원사’라는 직업이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자격증을 따기 위한 교육도 어렵지 않고, 시간도 일하고 싶은 만큼 해도 되는 프리랜서라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해 주었다. 놀면 뭐하나 싶어 친구가 보내준 사이트 주소를 타고 들어가 활동지원사 교육 일정을 확인하고, 겁도 없이 전화를 걸어 신청하고 교육비를 결제했다. 그러고 나서 고민이 많아졌다. ‘주변에서 장애인을 본 기억도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나?’, ‘사고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지?’, ‘지금이라도 취소할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며칠을 고민하던 중 문득 얼마 전 읽었던, 미국의 장애인 운동가 주디스 휴먼의 자서전 『나는, 휴먼』(사계절, 2022)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당신이 일터에서 우리를 볼 수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물리적으로 그곳에 접근할 수 없거나 고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면 버스나 기차와 같은 대중교통수단이 접근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식당이나 극장에서도 우리는 같은 이유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신은 일상생활에서 우리를 어디에서 보았는가.”
생각해 보면 한국의 장애인 등록 비율은 전체 인구의 5퍼센트가 넘는다고 하는데, 여러 이유로 일상에서 장애인을 마주할 기회가 매우 적었다. 당장 내 경우를 생각해 보더라도, 길거리나 나의 생활공간에서 장애인을 만난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 100명 중 5명이 장애인라고 하는데. 분명 사회 어딘가에 같이 존재하고 있고, 각자가 소유한 시간은 모두 공평한데, 왜 나의 일상 속에서 장애인을 만나기가 어려웠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당탕탕 조금은 심란한 마음을 누르고 사단법인 노란들판에서 진행하는 활동지원사 교육을 5일 동안 받게 되었다. 교육이 진행되는 동안 은혜 받은(?) 사람처럼 마음이 이상하게 부풀어 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약간의 자신감도 생겼다. 이후 실습을 마치고 이용자분과 인연을 맺어 지원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두렵고 겁이 났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사실 활동지원사는 내게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 장애인을 일상생활에서 만나본 경험이 거의 없어, 나의 지원 행동 하나하나가 적정한지, 과한지, 부족한지 고민이 되었고, 혹시라도 내 나름대로는 잘하려고 하는 일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많기도 했다.
내가 처음 만난 이용자분은 내 또래인 52세 여성이었다. 건강이 좋지 않고 갱년기 증상으로 무기력하고 우울감도 있어, 밖으로 움직이거나 무엇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해 보였다. 이용자분의 건강 상황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염려가 지속되는 일상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지원을 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제주도로 함께 여행을 갈 기회가 생겼다. 이용자분에게 기분 전환도 되고, 나에게도 이용자분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일 것 같았다. 이런저런 기대감과 약간의 걱정도 공존하는 얄딱꼬리한(?) 마음을 안고 일행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제주도에 도착한 첫날은 무리하지 말자며, 식사를 하고 숙소 주변을 사박사박 산책하는 일정으로 시작했다. 다음날 감귤 밭에서 진행하는 감귤 따기 체험에 참여했다. 모두 즐거워하며 감귤을 따고 있는데, 이용자분은 따는 체험보다 먹는 데 집중하고 있었고 그 모습이 조금 귀엽게(?) 느껴졌다.ㅎㅎ 과질 만들기 체험해서도 몇 개 만들다가 손에 끈적이는 엿이 묻는 게 싫은지, 다른 사람이 만드는 모습을 눈으로만 감상했다. 돌고래를 볼 수는 있는 요트를 탔을 때는 무서움을 느끼는 듯했다.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눈으로만 고래를 찾아 바다만 바라보다 돌고래는 만나지 못하고 육지로 돌아왔다.
이후 체험형 미술을 즐길 수 있는 아르테 뮤지엄, 수많은 해양 생물이 살고 있는 아쿠아플라넷에서는 호기심 어린 미소를 짓는 모습을 자주 보였고,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걸 신기해하는 듯했다. 제주도에서의 모든 시간들이 이용자분을 더 알아가고, 함께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한결 즐겁고 편안해 보이는 이용자분을 보며, 활동가들의 진심어린 관심과 배려, 정확하고 확실한 상황 판단에 이용자분을 지원하는 나 역시 감사함과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닌,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위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모습들을 마주하게 되는 시간들이 반복되었다. 그 내용을 좀 더 잘 알고 싶어 도서관에 가서 이런저런 책들을 읽어 보기도 하고 먼저 일을 시작한 선배들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제대로 지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있는 중인데 여전히 나에겐 어렵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세상 곳곳에서 변화를 꿈꾸며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 오늘의 모습으로 변했다는 것을 알고 부끄러움을 느꼈던, 활동지원사 교육에 참여했을 당시 강의실에서의 그날이. 지금이라도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그리고 이분들이 평범한 일상을 누리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동등하게 참여하고, 선택하며, 자기결정을 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지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혹시 천직이었나? 아님 천직이 되었나?^^
이번 제주 여행에서 이용자분도 나도 여러 즐거운 경험과 함께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모두 건강하고 무탈하게 일정을 잘 마무리할 수 있어 좋았다. 여행을 다녀온 후 이용자분과의 관계가 훨씬 더 자연스러워지고 있어, 긴장된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되어 더 좋았던 여행인 것 같다. 이제는 일상으로 복귀하여 오늘도 이용자분과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 출근하기도 하고, 크고 작은 일들을 마주하며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모든 공간에 나도 함께 하면서 감사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