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봄 130호 - [교단일기] 장애인노동자가 어떨 때 힘든가를 묻고 해결해나가기 위해 / 정우준
교단일기
장애인노동자가
어떨 때 힘든가를 묻고
해결해나가기 위해
정우준
언젠가 또 복직할 야학 휴직교사이자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왜 ‘노동과 건강’ 수업이었나?
2021년 2학기, 특활수업으로 ‘노동과 건강’ 수업을 진행했다. 장애인야학에서 ‘노동과 건강’ 수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던 것은 달라진 야학의 풍경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학생 분들에게 인사말처럼 물었던 ‘요즘 잘 지내?’라는 말에 대한 답이 변했다. 전장연과 야학의 투쟁으로 공공일자리가 하나 둘 생겼고, 학생 분들이 야학, 법인, 센터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대부분 수십 년간 일을 ‘못하고 있다가’ 일이라는 새로운 조건 속에서 경험하는 삶과 다른 관계에서 만나는 활동가나 학생과의 관계가 궁금했다.
달라진 풍경만큼이나 눈에 들어왔던 사건이 있었다. 바로 2020년 발생한 고 김재순 노동자의 사망이었다. 광주 폐기물업체 조선우드에서 일하던 지적장애인 청년노동자 김재순은 일을 하다 파쇄기에 끼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매해 발생하는 800여명의 산재사고사망 노동자 중 하나였지만 유독 ‘장애인’ 단어가 신경 쓰였다. 관련해 몇 번 글을 쓰기도 했고, 관련한 자료도 찾아보았지만 야학 교사이자 노동자 건강권 활동가로서 무언가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문제의식으로 그치지 않고, 수업까지 하게 된 것은 불순하고, 불가피한 의도 때문이었다. 2021년 장애인 노동자 건강 관련 사업을 아름다운재단 지원 사업에 넣었다. 장애인 노동자는 얼마나 다칠까? 비장애인 노동자에 비해 차별이나 신체적·정신적 차이로 인해 또 독특한 건강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 때마침 민주노총에서 장애인 조합원 연구가 있었고 전장연과 다른 단체 등에서도 장애인 노동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시기였다. 하지만 애초 만나고 싶었던 민간기업 노동자나 장애인 노동자 건강과 관련된 데이터 접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마침 특활수업 제안이 와서 덜컥 수업을 하겠다고 했다. ‘노동과 건강’ 수업의 시작이었다.
‘노동과 건강’ 수업, 처음 만나는 일의 세계에 대한 고민 나누기
불순한 의도 때문이었을까, 수업이 쉽지 않았다. 수업에 참여한 학생 13명 내외 중 노동경험이 전혀 없는 분도 계셨고, 현재 공공일자리 등으로 일하고 계신 중증장애인 학생 분들은 노동시간이 너무 짧았다. 공공일자리 특성상 하는 일들이 비장애인 노동자와 너무나 달랐다. 또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로 신체적 건강요인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끼임, 베임, 넘어짐, 떨어짐과 같은 비장애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과도한 노동시간에 따른 과로와 오랜 직업력으로 인한 질병 등을 나눠봤지만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순 없었다. 장애인 노동자 비장애인노동자가 겪는 어려움에 부가해 독자적인 건강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가설로 수업을 계속 나아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수업은 그래서 금방 바뀌었다. ‘건강’이라는 범주를 좀 더 크게 잡아 일을 하다 발생하는 관계에서의 스트레스와 차별과 같은 요소를 더 묻기 시작했다. 기존 학생-교사(상근자), 학생-학생과의 관계와 다르게 노동자-노동자의 관계로 만날 때는 다르지 않을까라는 문제의식에서였다. ‘한국인 직무스트레스 측정평가’를 하며, 일을 할 때 들었던 생각들을 물었다. 일의 만족도는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 갖고 싶은 직업을 묻고, 그 직업과 현재하고 있는 일의 만족도와 일의 차이를 묻기도 했다. 하지만 예상했던 답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막 시작한 일에 대단히 만족도도 높아 더 많이 일하거나 얼른 일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갖고 싶은 직업과의 간극이나 기대와의 어긋남을 묻기도 했지만 축구선수, 의사, 검사를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이야기를 더 나아가기 어려웠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들었던 고민들이 제법 나오기도 했다. 누군가는 일을 하다 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다고 답했고, 누군가는 업무의 자율도가 너무 높아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며 고민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한 고민이 들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나 제도적인 해결책을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처음 접해보는 일의 세계에서 들었던 고민들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함께 이야기 나눴던 것은 일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장애인과 산재노동자에 대한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장애와 장해는 같은 말일까? 장애등급은 있는데, 장해등급은 어떨까? 장해급여는 장애연금과 다른가. 왜 산재노동자들은 장애등급을 받아도 야학 학생 분들과 만나기 어려울까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손상을 입은 자’, ‘장애인’ 범주에 함께 있지만 서로 다른 두 집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또 장애인에게는 장애인의 날과 세계장애인의 날이 있듯 산재노동자에게는 4월 28일 세계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이 있다는 사실을 나누기도 했다.
장애인노동자가 어떨 때 힘든가를 묻고 함께 해결해나가기 위해
‘노동과 건강’ 수업은 2021년 2학기, 한 학기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수업에서 부족했던 이야기는 때로는 장애인 일자리 사업을 함께하는 교사들이나 전장연 노동권위원회에 묻기도 했다. 하지만 수업을 하며 장애인 고용률이 20%에 불과한 지금. 여전히 일을 하는 인원이 턱없이 적고, 비장애인과 다른 일을 하거나 다른 일을 창출 해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한 ‘장애인의 노동과 건강’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을 내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점차 차별을 넘어 장애인들이 일의 세계로 나아가고, 우리가 점차 장애인 노동의 새 길을 만들어내는 상황에서, 노동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의 문제와 더불어 노동하는 장애인이 겪는 다양한 이야기에 조금 더 귀기울여야 하는 상황은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한 기사에서 “장애인 노동자는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보았다. 스스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어렵거나 이야기할 수 없는 조건에서 일하는 많은 장애인들이 있다. 비록 노동과 건강 수업은 ‘조기종영’되었지만 수업을 시작으로 노들야학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과 장애인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들이 장애인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다양한 개선에 기입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