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봄 130호 - 납작하게 보지 않기 / 민푸름
납작하게 보지 않기
민푸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2022년 노들센터는 앞으로 3년간의 중장기 사업계획을 수립하며 ‘종로구 주거권 옹호활동’을 포함했다. ‘종로구 주거권 옹호활동’은 종로구 창신동에 위치한 쪽방촌의 장애 거주민들의 주거권 보장을 통한 지역사회 완전한 통합을 목표로 한다.
중증장애인의 완전한 지역사회 통합을 위해 가장 필수적인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주거권 보장이다. UN에서 발행한 ‘적정 생활 수준을 누리기 위한 권리의 요소로서 주거권’(A/71/310, 2016) 보고서에서는 생명권과 주거권이 밀접하게 연결되어있음을 지적한다. 그간 주거권은 생명권과 동떨어진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아닌 취약 계층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적 이슈로 이해되어오곤 했다. 그러나 본 보고서에서는 “전 세계 사망의 삼분의 일이 빈곤 및 비적정 주거와 관련 있다고 추정되며, 최빈층의 생명, 안전 및 존엄에 있어 비적정 주거 및 거주지 없이 살아가는 것이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주거권과 생명권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교차할 수밖에 없는 권리임을 언급하고 있다.
이에 따라 UN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위원회는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에 대한 일반논평 4’에서 주거권을 물리적 주거지에 대한 보장을 넘어 생명권의 보장을 포함하는 정의를 채택했고, 그 정의는 다음과 같다. “주거권은 머리 위에 단순히 지붕이 있는 수준의 주거지를 갖는다는 좁은 의미 또는 제한적 의미로 해석되어서는 안되며 주거지를 단순히 하나의 사물만으로 보지 않는다. 주거권은 안전하고, 평화롭고, 존엄성을 존중받으며 어딘가에서 살아갈 권리로 봐야한다.”
그러나 현재 중증장애인에게 주어지는 주거의 선택지는 너무나도 협소하다. 중증장애인은 시설, 원가정, 혹은 거리/비주거라는 선택지밖에 주어지지 않고 있다. 중증장애인의 주거지 선택의 협소함, 중증장애인에게 적합한 지역사회 내 주거지에 대한 접근성 결여는 명확하게 정부가 중증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고 온전하게 자립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주거환경을 마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중증장애인의 주거는 ‘보호’와 ‘통제’의 맥락 아래에서만 논의되고 ‘권리’로 논의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중증장애인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 ‘보호자’가 있는 시설, 원가정 등에 머물 것을 강요한다. 중증장애인이 시설과 가정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것을 선택할 시 중증장애인의 지역사회 내 주거권에 대한 충분한 보장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더욱 취약한 주거지에 머물게 될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도 많은 장애인구가 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쪽방촌, 거리 등 비적합주거지와 거리를 오가며 살아가고 있다.
적정한 주거에 대한 권리가 장애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UN 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 자립적 생활 및 지역사회에의 동참에서 장애인이 ‘독립적으로 살 권리’와 ‘지역사회에 통합될 권리’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에 완전히 통합되어 독립적으로 살 권리의 핵심을 ‘지역사회에 통합되어 독립적으로 사는 것에 관한 일반 논평 5’에서는 ‘어떻게, 어디서,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으로 지적한다. 주목할 점은 장애인의 지역사회의 삶의 보장을 독립적인 거주지 보장에 제한하지 않고 “개인의 모든 생활 방식 즉 사적이거나 공적인 영역을 포괄하고, 장기적이거나 일상적인 루틴과 라이프스타일을 포함”하여 정의한다는 것이다. 즉 장애인에게 적정한 주거란 적정한 주거지 보장과 더불어 지역사회에서의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권리 보장까지 이어져야한다는 것이다.
본 사업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쪽방촌 거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시설인 쪽방상담소 두 곳, 그리고 쪽방촌 거주민들의 주민 자치의 구심점인 쪽방촌 주민 사랑방 두 곳과 사전 간담회를 진행하였다. 더불어 쪽방촌 거주 장애인들과 쪽방촌 거주 장애인의 가족들과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쪽방촌 거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중앙, 지방정부 차원의 공적 지원 체계 미흡함을 지적했다. 요지는 쪽방촌 거주 장애인에게는 중앙정부에서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장애인이 당연히 누려야할 최소한의 권리라는 제도적 안전망조차 작동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쪽방촌 거주 장애인이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 지원 체계 밖에 놓여있다는 대표적인 예시로 활동지원서비스 이용 현황을 들 수 있다고 한다. 대다수 쪽방촌 거주 장애인의 경우 활동지원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지 못했고, 활동지원서비스에 대해 알고 있는 주민들 중에서도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거주민은 거의 없었다. 이유는 쪽방촌의 열악한 거주 환경으로 인해 이용장애인과 활동지원사 간 매칭이 잘 이뤄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활동지원사에게 쪽방촌의 주거 환경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아 활동지원사가 연결을 해지하는 경우가 반복된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쪽방촌 거주 장애인들이 대안으로 택하는 서비스는 돌봄SOS를 통한 요양보호서비스였다. 간담회를 통해 종로구 내 쪽방촌 거주 장애인들이 돌봄SOS를 통해 요양보호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이용 경험이 있는 장애인들은 요양보호서비스 시간이 연간 60시간으로 매우 적어 이용자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에 매우 부족했다고 한다.
탈쪽방화 정책의 일환으로 실행되고 있는 공공임대주택으로의 주거 이전 또한 미흡했다.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주한 쪽방 거주민들은 새로운 거주지에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쪽방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공공임대주택 주변에 탈쪽방 이후 주거민들의 안정적인 지역사회 통합을 지원할 커뮤니티와 서비스 체계가 전무하기 때문에 쪽방촌 내 형성되어있는 주민들 간 사적 지원 체계 및 쪽방상담소, 사회복지관 등과 같은 복지시설을 이용하고자 다시 쪽방촌으로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서울시는 해마다 서울 시내 주요 쪽방촌 5곳을 중심으로 쪽방촌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실태조사는 비장애인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서울특별시 자활지원과에서 제공한 ‘2018-2020 서울시 쪽방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쪽방촌 거주 장애인에 대한 조사는 ‘건강 및 의료’ 부분에서 1) 장애 여부, 2) 장애 등록 여부 정도로만 다뤄지고 있다. 추가적으로 열람할 수 있었던 ‘2019 서울시 쪽방 밀집지역 건물실태 및 거주민 실태조서 결과 보고서’에도 위 두 가지 항목 이외에 1) 장애 유형, 2) 장애인 미등록 사유 등 기초적인 정보만을 제공할 뿐 쪽방촌 거주 장애인의 실태에 주목하고는 있지 않다. 실제로 ‘쪽방촌 거주 장애인의 삶에 대한 연구’에서도 “쪽방촌 사람들의 삶을 빈곤 및 생활실태의 측면에서만 분석하였을 뿐, ‘신체적 정신적 손상’으로서의 장애가 사회환경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초점을 두지 못하였다”며, 특히나 “쪽방 거주민의 생활이나 건강상태를 언급할 때에도 ‘장애’라는 용어보다는 ‘만성질환’ 또는 ‘건강상의 문제’라는 용어로” 장애를 주목할 뿐, “쪽방촌 장애인의 삶에 장애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다루지 못했다”고 기존 연구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전지혜, “쪽방 거주 장애인의 삶의 경험에 관한 연구”, 2015)
이렇게 비장애인 위주로 쪽방촌 실태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쪽방촌 거주 장애인에 대한 과소재현은 쪽방촌 거주 장애인의 삶을 ‘장애와 빈곤의 악순환의 굴레’로만 평면화시킨다. 장애는 빈곤을 유발하는 요인이므로 빈곤의 최전선인 쪽방촌으로의 유입을 촉발하고, 쪽방촌 내 질병, 손상, 장애 악화에 취약한 주거 환경에 놓이게 되는 장애인들은 더욱 빈곤해지며 사회적으로 배제된다는 연쇄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평면적인 분석은 쪽방촌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이 당면한 삶의 문제를 만성적인,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인식하게 하고 쪽방촌 거주 장애인들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어떤 사회, 문화, 경제, 정책적 대응 방안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상상력을 축소시킨다. 그러나 쪽방촌에는 여전히 장애인들이 살고 있고, 이들의 주거권을 효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공적/사적 지원 체계들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한 더욱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에 노들센터는 경청에서부터 다시 시작해보고자 한다. 쪽방촌 거주 장애인들을 장애와 가난의 굴레에 갇힌 복지정책/복지서비스의 수혜자로 보는 것도 아니고, 굴레에 갇혔기 때문에 일시적인 지원의 수혜자가 되는 것이 최선인 이들로 보는 것도 아니고, 탈쪽방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인 이들로 보닌 것도 아닌 방식으로 경청해보려고 한다. 이는 쪽방촌 주거 장애인을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빈곤과 장애라는 두 소수자성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는 교차하는 억압과 차별의 전문가로 그들을 인정하며 그들 스스로가 직면한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빈곤과 장애라는 두 소수자성이 교차하는 지점의 당사자들이 그들이 생각하는 주거권은 무엇이며, 그 주거권을 권리로서 보장받기 위해 필요한 제도, 서비스, 물적/인적 자원 등은 무엇인지 스스로 발굴하고 쟁취하며 그를 통해 스스로 변화시킨 지역사회에서 주거권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모하는 활동을 전개해나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