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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속의 한줄기 어둠 CDC디자인학교!

 

 

박시백 │ 글 첫 줄에 나오듯이 12년차 노란들판 디자이너.

노란들판에서 맥주맛을 아는 유일한 존재. 시크한 따스함을 추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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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노란들판에서 꼬박 12년을 일하고 있는 장기생존자이다. 노란들판이라는 자동차에 탑승한 다섯 번째 멤버였을 때만 해도 어디로든지 멀리 벗어나고 싶은 도망자의 심정이었고 적당한 때 내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적당한 때... 이곳에 속해온 세월과 함께 샛노랗게 물들어버린 탓인지 그 적당한 때는 아직까지 오지 않았다. 뒷좌석에 앉은 불청객이 언제든 차문을 열고 내리면 된다는 가벼운 마음을 버리고 운전대를 잡아야 할 상황을 맞이하기까진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짙게 물들기 전이던 그 시점이 가장 적당한 때였다.

 


매해 많은 사건, 사고와 사람이 들고 났다. 일 년. 또 다른 일 년. 기쁜 순간과 힘든 순간을 함께 겪으면서 그렇게 십 년 넘게 달려왔다. 일도 사람도 풍성해졌고 그에 따라 노란들판은 나날이 성장했다. 순이익은 낮지만 매출은 꾸준히 늘어났고 우리에게 맞는 속도로 시스템을 갖춰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나에게 탈이 났다. 여전히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 좋지만 그 일에 지쳤고 여전히라고 하기엔 열정과 에너지가 바닥남을 느꼈다. 무엇보다 바닥을 드러낸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고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지금이 내릴 때이다.’결과적으로, 나를 계기로 장기근속자 휴직제도가 생겼고 내가 첫 타자가 되었다. 어차피 무급휴직제였고 내 입장에서는 안 돌아와도 고만이었지만 노란들판에대한 애착은 쉽게 탈색하기 힘든 성질의 것이었고 그것을 알고 있는 노란들판의 신의한 수였던 것이다.

 

다시 결과적으로, 작년에 사용한 5개월간의 휴직 기간동안 가장 좋아하던 유럽의 한 도시에서 20일 넘게 원 없이 지내다 오는 등 잘 쉬고 돌아와서 잘 일하고 있다. 내게 놓여 있던 것으로부터 벗어나 있음으로써 나를 돌아보고 다시 힘을 낼 수 있게 한 충전의 시간이었다. 그런 힘을 받아 올해 3월부터 6개월 과정으로 노란들판 내부 직원을 대상으로 ‘CDC디자인학교’를 열었다.(CDC: C100 DESIGN CENTER) ‘디자인적인 사고와 시각을 가지는 인생의 디자이너 되기’라는 수업목표로 2주마다 업무시간 이후 2시간 30분 정도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학생은 총 6명이다. 노란들판에 출근한 첫 날부터 몇 년간, 나는 디자인을 가르쳐야 했는데 내가 가르친 건 디자인이 아니었고 ‘툴’이었다. 일을 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왜?’라는 생각이 들 겨를이 없게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빨리 가는 길을 알려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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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들판은 학교가 아니고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취할 수밖에 없었던 방식이었으나 디자인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 점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다. 언젠가 완전히 다른 접근으로 디자인교육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왔었고 이번에 실행에 옮긴 것이다. 올해는 기초디자인 ‘점을 찍다’ 과정으로 말 그대로 기본기를 다지는데 주안점을 둔다. 나름 대학교 수업처럼 기초디자인, 발상과 표현, 사진의 이해, 타이포그라피 기초 등의 과목을 이론보다는 실기 위주로 순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첫 수업 때 서로가 서로를 통해 배우자고 얘기했다. 매번 주어지는 과제를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발표하고 피드백하는 시간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나 또한 그들에게 배우고 있다.

 

얼마 전, 내 생일 때 학생들이 티셔츠를 선물로 줬다. CDC 로고를 넣어서 단체로 티셔츠를 맞춘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깜짝 선물이었다. 모두들 내 이름으로 삼행시를 써주기까지 했다.(개인적으로 노란들판 사람들 생일 때마다 단체톡방에 이름으로 삼행시를 써줬었다) 내년에도 CDC수업을 한다면 모집광고에 활용할만한 아래와 같은 훌륭한 삼행시도 있었는데 개중에 F학점을 두려워하지 않는 삼행시도 있었다.(박카스! 시금치? 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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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 박팀장님의


시 : 시디씨를 만난 건


백 : 백야 속의 한줄기 어둠

 


내일도 수업이 있다. 이번 과제는 ‘발상과 표현’ 과목 마지막 과제인 ‘길’이다. 길을 자유롭게 표현해오는 것이다. 누구는 글자로 길 모양을 만들어 올 것 같고... 누구는 미로를... 누구는 갈래길을... 가수 길을 그려올까 봐 걱정되는 사람도 있다. 모든 길에는 시작이 있다. 막다른 길이 나와도 다시 돌아서는 순간 시작이다. 없던 길을 만드는 시작도 있다. 계속 가도 좋고 가다 멈춰 서서 머무르는 것도 좋다. 멈췄다 다시 가는 것도 시작이니까. 그렇게 나는 다시 시작했다. 너무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CDC디자인학교에서 디자인을 만난 여러분은 완벽한 디자이너는 아닐지 몰라도 이미 인생의 굿디자이너입니다.” (졸업식 때 할 말을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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