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준비호(2009.07) - [현장인문학] 나를 혁명하는 공부 + 집중세미나 뒷이야기
[현장 인문학] 노들+인문학=? 장애+인문학=? 노들+수유+너머=?
이런 더하기에선 대체 ‘뭐가 나올까’라는 호기심으로 시작한 현장인문학이 올해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노들에서는 올해 인문학 강좌를 ‘현장인문학 시즌 투(season 2)'라고 부르고 있는데요. 올해 인문학 강좌는 두 개 프로그램입니다.
1. 매달 첫째 주 목요일 관심 있는 ‘누구나’를 상대로 하는 월례인문학 강좌와
2. 매주 수요일엔 노들 곳곳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 책을 읽고 공부하는 집중세미나가 열립니다. 집중세미나 팀은 맑스를 공부하고 있어요.
노들과 수유+너머의 실험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을 것이라 짐작하는 바, 현장인문학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대애충이나마 알 수 있도록 전달해보려고 합니다.
[현장인문학] 노들과 수유+너머가 함께하는 집중 세미나 이야기
- 구윤숙 연구공간 수유+너머
나를 혁명하는 공부
“노들에서 집중 세미나가 있는데 네가 매니저 해라. 노들 가봤지?”
“아뇨, 꼭 한번 가보고 싶긴 했어요.”
“그래? 그럼 해.”
잠결에 받은 전화 한 통. “네"라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는데 뭔가 당한 느낌이 들었다. 난 그냥 노들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집중 세미나 매니저로 매주 가라고? 안 한다고 할까? 못한다고 할까? 하루 이틀 머릿속이 캄캄했다. 그러나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너에게 오는 모든 일은 네가 원한 것이다.” 그런 전화가 하필 잠결에 닥친 것도, 좀 힘들 것 같지만 딱히 못할 뚜렷한 이유가 없는 것도, 노들에서 공부를 한다는 게
어떤 건지 궁금했던 것도. 정말 원했던 일이 온 것일지도 모른다.
노들에서 선택한 공부는 ‘맑스’였다. 지난 일 년 간 강좌에서 소개된 많은 철학자들 중에 누굴 공부할까 고민하다 -다수결과 상관없이, 특정인의 강한 요구로- 맑스가 결정되었다고 한다. 이름은 누구나 알고 있는 “칼 마르크스” 예전에 함께 공부하던 학인이 꼭 ‘사랑스런 맑스’라고 불렀던 그 맑스다. 예전부터 궁금하긴 했었다. 이제 함께 공부할 규칙만 정하고 바로 공부로 Go, Go!!
“연구실에선 숙제 안하면 벌금을 내기도 하고, 남아서 베끼기도 하는데, 노들은 숙제를 안 해오면 어떻게 하나요?”
“봐줘요.”
내가 노들에 와서 처음 만난 충격적인 말이었다. ‘노들에 와서 공부를 하는 거니 나도 팔자에 없는 “봐주기”를 해볼까?' 잠시 고민도 해봤다. 그런데 연구실에서 배운 바로는 ‘공부는 습관을 바꾸고 몸을 바꾸는 문제'였다. 공부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나쁜 습관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갖는 것. 노들에서 하는 공부 역시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일단 지각, 결석 안하고 숙제를 해오는 게 먼저다. ‘좋은 게 좋다'고 여기며 살기 위해 맑스를 읽는 거라면 그 것이야 말로 사치고 허영일 테니. 그래서 집중 세미나의 가장 큰 공부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근데 이건 세미나가 시작되기 전부터 참석하는 모든 분들이 이미 정했었단다. 필요한 것은 이미 말했지만 아직 해보지 않은 “약속 지키기"를 진짜로 해보는 것뿐이다.
그런데 숙제는 둘째 치고 매주 책을 읽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책은 어렵고, 양은 많고, 한 줄을 읽기도 힘들다. 세미나를 함께 하는 강사(조만세. 27세의 청년백수)도 늘 그걸 고민한다. 어려운 걸 어렵게 설명하는 건 쉽다. 그런데 어려운 걸 쉽게 설명하라니. ‘더 쉽게, 더 쉽게.’ 강사는 이번 학기 내내 그걸 공부하고 있을 게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 챙기지 못하고 별로 꼼꼼하지 않은 나의 공부는 또 다른 모양이다. 세미나 성원의 이름을 매주 부르며 “숙제를 해오시오.”하고 챙기는 것. 한자리에 모여 있지만 서로의 공부는 다르다.
‘맑스’는 우리의 이런 다양한 공부에 좋은 동반자로 함께한다. 아직 맑스가 쓴 글들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다. 물론 읽었던 책들도 많은 부분이 벌써 잊혀졌다. 다만 그가 (노들과 수유의 그 많은 공간과 물품이 그렇듯이) 사적소유가 당연하지 않다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또한 (노들의 투쟁과 수유의 실험이 그렇듯이) 세상을 ‘실천과 변혁’의 문제로 보았음을 기억한다. 이제 우린 혁명에 대한 공부를 기다리고 있다. 책을 읽고, 요약문을 쓰고, 지각하지 않기 위해 조금씩 서두르면서. 그렇게 습관을 바꾸는 나를 혁명하는 공부가 되리라!
[현장인문학] 집중세미나 뒷 얘기
“책을 읽어도, 읽어도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2009년 4월 22일 수요일 저녁
집중세미나 뒤풀이, 술 한 잔에 쏟아진 학인들 푸념
(편집자 고민 : 술 먹고 한 이야기를 이렇게 실어도 되려나??)
(…)
호식 : 숙제를 한 주 만에 못 해 올 것 같은 사람한테는 읽을 걸 미리 알려준다든지 하면 좋겠어.
일동 : 오~ 미리 주면 숙제 해 오는 거?
구우 : 제가 확실히 챙겨드리겠습니다.
문주 : 저는 책을 읽으면서도 이해가 안 가요. 그래도 일주일 안에 읽어야 한다는 목표가 생긴 것 같아요. 일주일 안에 어떻게든 읽어 와야 한다는 목표. 솔직히 이해가 안 가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파악이 되고 알게 되니까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열심히 읽겠습니다. 제가 숙제를 조금씩이라도 하려고 하는데 힘들더라고요. 쓰려고 해도 뭘 써야할지 몰라서 책에 있는 거 베끼는 수준밖에 안 돼요. 아무튼 열심히 하겠습니다.
병준 : 이게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수유+너머랑 저희랑 시작하면서 조율하는 게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난이도가 너무 높다보니까 텍스트를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한 번 읽어도 이해가 안 돼서 여러 번 읽어야 하고. 요번 학기는 이렇게 가더라도 다음 학기는 난이도 낮게 가면 어떨까.
호식 : 그 말에 동의! 동의!
만세 : 저도 처음에 노들에서 맑스를 한다고 하기에 놀랐습니다. 맑스 공부 자체가 지금 하는 것에서 난이도가 내려가기가 힘듭니다. 인간이 옛날 사람이고, 맑스가 당시에 현장감 있게 이야기해야 했던 부분이 있어서 어려운 건 불가피한 부분입니다.
구우 : 책 읽었을 때 모르는 건 당연한 거예요. 저도 이진경 선생님 책이나 맑스 책 모두 어려워요. 사전 세미나하고 집중 세미나 하고 나서도 갖고 가는 게 하나도 없으면 곤란한 건데…
호식 : 있어요!
구우 : 그럼 괜찮은 거죠. 나는 한 번 읽고 왜 모를까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책을 읽고 베끼면서 내용을 알아가는 거예요. 내용을 알기 위해서 숙제를 하는 것이지 난 읽고 이만큼 이해했어요, 짜잔~ 하려고 숙제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형호 : 현실적으로, 세 시간 공부하고 하나만 알아가는 건 효율성이 너무 떨어지는 것 같은데요.
구우 : 하나만 아는 것에 자족하자는 건 아니고, 하나 아는 걸 무시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너무 어려워서 쉬운 텍스트를 골라서 공부한다고 해도, 10개 배워서 10개 안다고 그게 다 기억에 남는 건 아닐 거예요. 10개 배워도 나중엔 하나 정도 기억에 남을 거예요. 공부를 그렇게 하는 것 같아요. 불교 공부하시는 분들도 보면 한 번 깨달았다고 그게 쭉 가는 게 아니라 매일 매일 깨닫기 위해 수행하면서, 그렇게 깨달으면서 간다고 하더라고요.
형호 : 왜 사람들이 쉬운 말도 있는데 어려운 말 써 가면서 그것도 베베 꼬아갖고 얘기하는지 이해가 안 돼요.
만세 : 그 사람들이 왜 그랬는지 저도 궁금한데, 이미 다 죽어가지고 물어볼 수가 없네요. 그리고 외국 사람이라서 안 죽었다고 해도 이야기하기가…
형호 : 근데 (학자들이) 자기 똑똑한 거 보여주려고 그렇게 한 것 아닌가요?
호식 : 그건 아닌 것 같아.
병준 : 근데 솔직히 ≪철학과 굴뚝청소부≫(이진경 저)도 좀 어려웠어요. 그것도 두세 번 봐야했어요.
만세 : 맑스 책이 번역된 것도 있고, 그 사람이 학계에서 놀았던 사람도 아니고 해서 그럴 겁니다.
호식 : 근데 폭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어떤 영화에서 보니까 뒤지게 패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끝나더라고요. 그 폭력이라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폭력은 안 좋다고 생각하는데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 저항 같은 걸 어떻게 해야 되는지.
일동 : 뜬금없이 왜 폭력이야기냐?
호식 : 인문학이라는 게 모든 걸 다 다루는 학문 아닌가요?
만세 : 왜 폭력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된 겁니까?
호식 : 난 폭력 당했고, 폭행했어요. 슬픈 이야기일 수 있지만, 장애를 갖고 있는 것에 대해서 가족에게 폭력 당했다고 봐요. 그 폭력에 견딜 수 없어서 술 취한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봐요, 항상. 항상 술이 내 인생에 전부라고 보는 경향 있어요.
유미 : 가족이 폭력을 행사하면, 가족에게서 벗어나면 되지 않나?
우준 : 지금은 독립했잖아요.
호식 : 지금은 못 본 척하는 게 더 큰 폭력일 수 있지. 옆에 있어도 없는 것처럼. 난 그런 폭력을 겪고 있고, 겪었고, 겪을 거야. 이 집안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모르겠어.
만세 : 그런 걸로 외로워할 틈 없이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가족 외적인 관계에서 즐거움을 찾는 겁니다.
혜선 : 호식이가 인문학 처음 시작할 때 인문학 덕분에 의욕적으로 됐다고 했던 게 있잖아.
호식 : 인문학이라는 게 진짜 좋아요. 저한테 희망 안겨줬고 어떻게 보면 불행을 안겨준 거예요.
유미 : 무슨 불행?
호식 : 숙제!
일동 @$#%@#$!
진희 : 호식씨가 습을 바꾸면 삶이 바뀔지도 몰라요. 인문학과 더 사랑에 빠져도 될 것 같아요.
만세 : 공부하는 게 되게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내용은 3개월 있으면 다 까먹을 거고, 그 중에서 자기 삶에 중요한 거 몇 개 기억하겠죠. 데리다가 이런 말을 했어요. 공부 하는 건 답만 구하는, ‘어디에 복종해야 하나’를 찾는 것에서 벗어나는 거라고. 그러면 자기 삶이 온전하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걸 연습하기 위해 공부하니까, 내가 처한 상황을 다르게 보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서 공부하고 숙제하는 거니까 열심히 공부하시길.
혜선 : 민구가 그만 두겠다고 했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집중세미나팀은 나름 위기 넘긴 것 같은데, 그 결과가 대충, 숙제 안 해도 괜찮다, 이런 식으로 정리된 것 같아요. 저도 개인적으로 여기서 뭘 해야 하는지 깨달은 게 이번 주, 저번 주 같아요. 야학 특징이 자기가 아는 부분 나오면 ‘아~ 너무 쉬워’, 반대로 모르는 게 나오면 ‘어려워. 나 몰라. 말 시키지 마.’이런 식이잖아요. 배움에 대해서도 그런 태도 가졌던 것 같아요. 맑스 배운다고 내가 많이 알고 많이 가져가고 그런 것 아닌 것 같아요. 책이 쉬웠으면 잘 했을까요? 어려워서 숙제 못했다고 말 안했으면 좋겠어요. 호식이나 형호씨나 책 읽기 힘들고 그런 걸 아는데 우리 서로가 그런 부분을 잘 챙겼어야 했는데, 잘 못했던 것 같아요. 호식이 숙제하기 어려운데 같이 하는 방법을 고민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호식이나 형호씨가 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지요. 앞으로 이런 것 잘 하면 좋겠어요.
호식 : 사전 세미나 두 번 정도 하면 어떨까?
일동 모두 놀람. ㅎㅎㅎ.
만세 : 사전 세미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요?
진희 : 제가 호식씨와 같은 조인데요. 솔직히 저는 집중세미나도 인문학 강좌처럼 강사가 먹여주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준비하고 그래야 하는 거예요. 사전 모임에서 호식씨 챙겨줘야 하는데 저도 그때서야 막 요약하고, 요약은 한 두 분 정도 해오시고 그러니까 사전 세미나가 효력을 발생하지 못 하는 것 같아요. 다른 일에 치여서 자료 잘 못 보는데, 그래서 제 작전은 수업에 충실하자 예요. 전 단 한 줄을 못 외워요. 호식씨가 지금 의지를 갖고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저도 이해가 잘 안 되는데 반복하니까 뭔 말인지 알겠고 그래서 결석 안 하기, 수업 열심히 듣기로 작전을 세웠어요. 저는 사고하는 틀을 깨고 싶었는데 깰 방법을 몰랐어요. 맑스 공부하면서 반성하게 되고, 가끔 저한테 확 꽂히는 것들이 있어요. 맑스를 공부하고 있어도 자본주의를 잘 모르겠고, 자본주의에서 살 수밖에 없는데 저는 길들여지지 않는 질서를 만드는 데 고민이 있었어요. 맑스는 준비를 좀 해서 천천히 만나고 싶었는데 맑스를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공부하면 할수록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구나 하는 생각해요. 내용에서 오는 감동이 있고.
호식 : 근데 숙제가 좀 괴로운 게 있어요.
만세 : 평소에 안 하던 거 하면 힘들 수밖에 없어요. 오늘 이야기 많이 들었으니까 문제 없애는 방향을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