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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감정, 시간, 사랑

 

 

 

 이지훈

노들야학에서 환대받는 사람

 

 

 

 

  월요일 오후 5시 무렵, 어느 교실에 사람들이 하나둘 드나듭니다. 누군가는 떠들썩한 인사를 건네고, 또 다른 누군가는 조용히 주위를 둘러봅니다. 자리를 잡습니다.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와 휠체어의 각도를 조절하는 소리가 교차합니다. 함께 듣고 싶은 ‘신청곡’을 제안하는 당찬 목소리도 이따금씩 들려옵니다. 오늘은 무엇을 하느냐는 물음이 어김없이 싹트고, 그것은 비밀이니 말해줄 수 없다는 대답 역시 지칠 새 없습니다. 웃음일지 탄식일지 모를 무엇인가가 짧게 진동합니다.

 

  이때 이곳에서 어떤 말들이 탄생합니다. 그것은 입과 손, 그리고 여러 몸짓과 더불어 잇따라 이어집니다. 학생들은 한 사람 한 사람씩 대화를 이끌고, 교사는 한 단어 한 단어씩 그 자취를 따라갑니다. 저마다의 삶이 오롯이 담긴 말들을 뱉고, 잇고, 나눕니다. 교실은 소란과 더불어 분주해지기도 하고, 주저와 함께 고요해지기도 합니다. 괄호를 품은 하나의 문장만이 덩그러니 있던 칠판의 큰 화면에는, 점점 글자들이 한가득 들어찹니다. 이렇게 ‘우리’의 ‘글’은 차곡차곡 쌓여 나갑니다. 노들야학 글쓰기 수업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이 열띠게 펼쳐놓는 ‘이야기’가 말이지요.

 

  우리의 글은 힘이 가득합니다. 홀로 손으로 적어야만 한다는 기존의 글쓰기 문법을 힘주어 거부하고 있기에 단단하고, ‘이런 것’이 과연 글이 될 수 있을지를 거듭 자문하면서도 ‘이런 것’이야말로 글이 된다는 사실을 힘 있게 공표하고 있으므로 당당합니다. 이렇듯 교실에서 싹트는 글과 힘을 만나다 보니, 어느덧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여기 두 권의 책이 있습니다. 함께 써내고 해냈던 것들을 모은 문집이자, ‘감정’과 ‘시간’을 향한 이채로운 궁리가 담긴 기록입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자신의 감정과 시간을 부단히 만났던 학생은 작가가 되었고, 그 만남의 순간을 천천히 뒤따르던 교사는 엮은이가 되었습니다. 『들썩이는 감정들』과 『시간을 짓는 시간』, 이 두 권의 책은 우리의 글, 힘, 자랑입니다.

 

  지나온 1년을 돌아봅니다.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받은 수다한 선물들이 떠오릅니다. 좀처럼 정연하게 풀어놓을 수 없는 애정 서린 말, 대화, 표정, 움직임 들이 있었습니다. 교실의 다채로운 풍경도 잊히지 않습니다. 떠들썩한 환희로 가득 들어차는 때가 있는가 하면, 무엇인가 찜찜한 분위기만이 남을 적 역시 자주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까닭을 알 수 없는 불안과 우울을 맞닥뜨릴 적마다 글쓰기 수업만을 기다립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풀어놓는 말에 주의를 잘 기울여보자는 제안을 저보다 앞서서 꺼내는 학생들은 저를 더 잘 살게 만듭니다. 매주 교실에서 성실히 움트는 말, 대화, 문장 들이 그러하듯, 교실 밖 우리의 삶도 오래도록 함께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참, 2024년 1학기 글쓰기 수업은 시간을 옮겨 목요일 저녁 7시 30분부터 이루어집니다. 교실은 보다 넓어졌고, 수업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학생들도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이때 이곳에서 우리는 이제 ‘사람’을 공부합니다. 지구에 존재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지금 현재의 ‘나’라는 사람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씁니다. ‘누구’의 ‘어떤’ 사람들이 등장할지는 아직은 잘 모릅니다. 종전처럼 함께 뱉고, 잇고, 나누다 보면 조금씩 알게 되겠지요. 앎을 위해 글쓰기 수업은 다음과 같은 물음으로 막을 열었습니다. “나에게 힘을 주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1년 동안 글쓰기 수업을 맡아온 저는 이미 서둘러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지훈1.png

2023년 1학기 노들야학 글쓰기반 문집 『들썩이는 감정들』

 

 

이지훈2.png

2023년 2학기 노들야학 글쓰기반 문집 『시간을 짓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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