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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수업 '이것이 수업이다' 참관기

 

 

 이예인

월, 화, 수, 목, 금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에서 일해요. 금요일 저녁에는 노들야학에서 합창수업을 해요. 요즘 합창하려고 밥을 많이 먹어요.

 

 

 

 

  지난 학기부터 야학에서 저녁수업을 하게 됐어요. 자립생활 수업이었고요. 수업에서 제가 바란 것은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처럼 기나긴 얘기를 학생분들과 이어가는 거였어요. 그런데 그렇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계획대로면 지금쯤 사과 다음 바나나 얘기가 나와야 하는데. 원숭이 얘기를 꺼내면 코끼리 얘기, 사람 얘기가 나오고. 사과를 안 좋아하는 분도 주무시는 분도 계셨어요. 거기다 낯선 곳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면 저는 얼음이 됐어요. 누가 땡을 해주지는 않았고요. 인내심 좋은 학생분들이 저를 많이 기다려주셨어요. 차츰 저는 학생분들과 어떻게 대화를 나눌지 모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러자 매일 다른 야학의 수업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전보다 훨씬 궁금해졌어요. 그런 마음으로 오래 수업을 해 오신 세 선생님의 연구수업에 갔어요. 당연하지만 세 수업이 모두 달랐지요.

 

  첫 번째 연구 수업은 국어 시간이었어요. 불수레반 국어에는 고사성어 책을 독파하고, 시험도 본다는 큰 목표가 있더라고요. 참여한 날에는 계륵이랑 연목구어라는 고사성어를 배웠는데. 두 말 다 어려웠지만 삼국지 속으로 후루룩 들어가니 힘들지 않았어요. 수업에서 들었는데 전쟁 중에는 매일 밤 암호를 바꾼다네요. 그 이야기를 듣다가 암호에 관한 딴생각에 빠지기도 했어요.

 

  그럴 수 있었던 건 성호 선생님의 여유 때문이었는데요. 느슨한 분위기에 저도 몸에 들어간 힘을 풀 수 있었어요. 평소 수업에서 제가 얼었을 때, 놀랐을 때, 힘이 없을 때 학생분들도 다 같이 느꼈겠구나. 생각하니 부끄럽고 웃기기도 했어요. 수업 중에 지영 님이 날씨나 일상의 얘기를 나눠주신 것도 너무 좋았어요. 연구수업이 끝나고 회의에서는 학생분들과 어떻게 더 오래 얘기 나눌 수 있을지 여쭤봤어요. 성호 선생님은 야학에서 쌓은 일상에서 말을 시작하게 된다고 하셨어요. 불수레반 국어 시간이 끝나고 나니 재미난 말 주고받기는 제가 당장 할 수 없는 것이더라고요. 덕분에 품고 있던 고민을 덜 미워하게 됐어요.

 

  두 번째로 간 연구 수업도 국어 시간이었어요. 청솔1A반이었고요. 소란 속에 수업을 시작하니 학생분들이 각자 다른 페이지를 펴고 계셨어요. 이날은 개별 지원 비슷한 것을 해보게 됐어요. 수업에서 주로 만났던 청솔1반 분들이 계셨는데, 국어 시간에는 또 다른 모습으로 지내시는 걸 보고 새로웠어요. 처음 뵙는 아름 님 옆자리에 앉게 됐어요. 아름 님은 받침 글자를 연습 중이셨어요. 호선 님하고 틈틈이 대화하며 아름 님과 ㄱ부터 받침을 넣어봤어요. 연구수업 이후 회의에서 의견을 나누니, 저의 소통 방식이 빡빡한 편이더라고요. 국어 시간 내내 받침 넣기를 하면서 한 번도 안 쉬었거든요. 아름 님 죄송합니다.

 

  회의에서 한 분 한 분 어떤 방식으로 수업을 하고 계신지 들어서 좋았어요. 명희 선생님은 수업에서의 개별 진도를 세세히 말해주시고. 이제까지의 국어 시간에 시도하셨던 수업 방식들도 나눠주셨어요. 자립생활 수업에서도 적절히 지원요청을 하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고. 자립생활과 국어 과목이 서로 얼마나 다른지 헤아려봤어요. 국어 수업이 더 많이 궁금해졌습니다.

 

  마지막 연구수업은 수학 시간이었어요. 불수레/한소리반요. 호연 님이 뜨개질하면서 수업 들으시는 걸 보니 마음이 차분해졌어요. 저는 분수에 대해 말할 때 분모, 분자로 부르는 이름만 알았는데요. 혜선 선생님 설명을 듣고 아랫수, 윗수라는 이름을 처음 알았어요. 딱딱해 보이는 수학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고. 수학과 어떻게 지낼 수 있는지도 들어서 좋았어요.

 

  수업에서 혜선 선생님은 계속 뭔가 전해주려 하셨어요. 아라비아 숫자로 부르는 것에 대해. 인도 숫자에 대해. 분수의 각 부분을 뭐라고 부르고 싶은지 물어보신 다음 돌아올 답을 너무 궁금해하셨어요. 답을 들으면서는 엄청 기뻐하셨고요. 그 마음이 전해지니 대답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덩달아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동안 학생분들의 말을 어떤 마음으로 기다렸는지.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잘 전했는지 스스로 묻게 되기도 했어요. 연구수업을 듣고 나서도 그렇고 지금도 잘 모르겠어서 어려우면서도 다행이에요. 같이 말하고, 듣기 위해서 역시 시간이 더 필요해요.

 

  쓰고 나니 연구 수업에 가서 제 고민만 늘어놓았던 거 같아요. 야학에 오래 계셨던 선생님들 수업에 갈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수업을 하기 전에도 수업을 하면서도. 수업 중인 교실에 앉아 있으면 학생분과 선생님 사이에 쌓인 시간과 관계를 보게 됐어요. 그러기까지 모든 수업들이 매 시간 다르지 않았을까 해요. 저도 학생분들 가까이서 그 다름을 알아가는 날들을 많이 쌓을 수 있길요. 그러기 위해 마구 끊기는 질문과 말뜻을 몰라 이리저리 헤매는 날들이 더 필요해요. 힘도 용기도 길러야 하고요. 야학 수업들 근처를 기웃거리면 언젠가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마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 어떤 이유로든 수업에서 원숭이 엉덩이 얘기를 하게 된다면요. 원숭이 엉덩이에서 사과까지 안 가고. 사과나 바나나 하나에 대해서만 진득하게 얘기하고 싶어요.

 

이예인1.jpg

2023년 2학기 불수레반 국어(천성호 교사) 연구수업 ‘이것이 수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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