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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인 사회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DP행진

 

 

우정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동권위원회.

 

 

 

 

우정규_비장애인사회와.jpg

 

 

  #소개글

 

  서울이 너무 싫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좋아서 서울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진보적 장애인운동 속에서 뜨거운 마음으로 차갑게 분노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늘 마음만 더 앞서 늘 고민이 많다. 우정규는 좋은 활동가가 되고 싶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와 Disability Pride 행진

 

  2020년 7월부터 서울에서 출발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이하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지금 중증장애인 노동권에 대한 패러다임을 흔들고 있다. 장애인은 노동할 수 있는 존재일까 아니면 노동할 수 없기 때문에 장애인이 되는 것일까.

 

  인간을 능력을 기준으로 줄 세운다면 장애인은 그 줄의 꼬리의 끝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산업화 이후 장애인이라는 존재는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능력에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사회는 장애인을 맘편히 두고 나아간다.

 

  능력중심으로 세워진 그 줄의 꼬리 끝 어딘가에 중증장애인이 한가득 있다. 그래서일까 장애인에 대한 주류사회의 인식은 보호·재활·수용의 인식이 그 중심에 있다. 그러니 비장애인이 주류인 사회에서 무능력한 이들이 집과 시설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그 인식을 흔들어 두는 행위가 된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비장애인 주류사회가 중증장애인에게 씌워둔 보호·재활·수용 등의 인식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이다. 나아가 사람이 사람으로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최초의 신호탄이 되었다. 비장애인이라고 능력주의 사회에서 자유로울까. 단언하건대 아니다. 그리고 그 압박은 조만간 장애/비장애 구분없이 인간의 숨통을 조여 올 것이다.

 

  능력중심으로 세워져 있는 긴 줄에 서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4차 산업혁명과 동시에 기계에 밀리기 시작했다. 그 싸움을 가장 취약한 중증장애인이 먼저 시작한 것이다. 이미 비장애인도 그 밑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인간이기 위해 노동하려 한다.

 

  권리중심공공공일자리는 ‘노동’을 비장애인의 전유물로 남겨두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은 직무를 통해 그 저항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2014년에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장애인권리협약에 따른 대한민국 정부의 국가보고서를 심의하면서 다음과 같은 권고를 하였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장애인의 권리를 어찌 보장하고 있는지에 대한 국제적인 성적표에 이러한 내용이 있다.

 

“대한민국은 구조적이고 지속적으로 공무원, 국회의원, 언론, 일반 대중을 상대로 장애인권리협약(CRPD)의 내용과 목적을 공론화하여 교육시키지 못하였다. 이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인권의 담지자로서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는 인식제고 캠페인을 벌일 것을 권고한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노동은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대한민국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권고한 내용인 장애인권리협약을 중증장애인 노동자가 직접 홍보하는 것이다. 중증장애인이 수행할 수 있는 ‘맞춤형’ 직무로 그들이 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여 중증장애인의 존재 그 자체로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자 한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중증장애인 노동자가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를 모니터링하며, 협약 속의 권리가 현실에서 이행될 수 있도록 ‘권리를 말하고, 권리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는’ 일자리다. 장애인권리협약의 내용이 그 활동이 되어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를 만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 Disability Pride 행진이다.

 

  수십에서 수백 명에 이르는 중증장애인이 모여서 도로를 행진할 때, 지금까지 중증장애인의 존재를 투명인간으로 여기던 비장애인 사회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원래 대한민국에 장애인은 많다. 하지만 그들이 길거리에 나와 함께 거리를 거닐며 구호를 외칠 때 중증장애인의 존재가 비로소 지역사회에 보이게 된다. 그러니 행진하는 것이 중요한 노동이 된다.

 

 

 #함께 행진하는 사람

 

  나는 그 짧은 행진에서 우리의 해방을 느낀다. 탁 트인 도로에서 우리의 권리를 외치며, 우리의 존재를 알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 운동에서 요구하는 다양한 권리들이 있다. 그 권리들은 동시에 차별의 역사를 뜨겁게 담아낸다. 이동권, 노동권, 탈시설과 자립생활권리, 평생교육권, 건강권 등 외칠 목소리가 너무나 많다. 우리에겐 더 많이 외칠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Disability Pride 행진을 통해 이 외침을 비명이 아니라 환호로 남겨둘 수 있게 된다. 차별의 고통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해방을 향해 나아가는 환호로 남겨둘 수 있도록 우리의 속도로 힘차게 행진한다.

 

  그러니 천천히 즐겁게 함께 행진하자. 과거 그대들의 비명이 환호가 될 수 있게, 해방으로 나아가자. 나는 그 곁에서 잠시 속도를 맞추는 것으로 충분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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