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겨울 129호 - 노들야학 프로젝터는 왜 ‘향유의 집’에 다녀 왔을까 / 신재
노들야학 프로젝터는 왜
‘향유의 집’에 다녀 왔을까
<관람모드-있는 방식> 공연 후기
신재
죠스(라고 불리는 신재)
2017년 연말에도 <노들바람>에 공연 후기를 써서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들다방이 있는 4층 강당에서 했던 <연극의 3요소>라는 공연에 대한 글이었어요. <연극의 3요소>는 그 동안 연극의 주요 요소로 여겨지지 않았던 극장 시설과 공연 전달 방식의 ‘접근성’을 주제로 다루는 연극이었어요. 휠체어 이용하는 배우와 비장애인 배우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담은 연극이기도 했구요. 또한 처음으로 노들야학 프로젝터(브랜드명 : 옵티마)를 빌려서 사용한 공연이기도 했지요.
당시 휠체어를 이용하는 배우가 등장할 수 있는 극장을 구하기 어려워서 4층 강당을 극장으로 변신시켰었죠. 4층 복도에서 사람들이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극장 안으로 다 들어오 긴 했지만, 그 이전에도 그 이후로도 몸과 마음의 접근성이 이 보다 좋은 극장은 없었던 거 같아요.
다시 노들야학 프로젝터 이야기로 돌아가볼게요. 제가 함께 공연을 만드는 팀인 0set프로젝트에서는 영상을 재생하는 기계인 프로젝터를 자주 사용하는데요.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눈 이야기나 경험을 영상으로 기록해서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고 공연에서 나오는 소리들(말, 노래 등)을 문자로 전달하기 위해서 프로젝터를 사용해요. 프로젝터를 사려면 돈이 많이 들다보니 주변에 빌려서 사용할 때가 많은데요. <연극의 3요소> 공연할 때는 노들야학 프로젝터를 빌렸죠. 당시 노들야학 상근자가 프로젝터를 꺼내다가 약간 멈칫하면서 이렇게 말했던 것이 기억이 나네요.
“이거 며칠 전에 샀어요. 죠스가 처음으로 쓰는 거예요.”
새 것이어서 조심조심 감사히 사용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로 이 프로젝터는 제가 참여한 거의 모든 공연 현장을 방문했어요. 거의 매 공연 때마다 빌려 쓴 것이지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혜화동 로터리 쪽에 있는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소극장’에 방문했고 혜화역 2번 출구 앞에 있는 ‘이음아트홀’과 명동성당 근처에 있는 ‘삼일로창고극장’에도 방문했어요. 때마다 노들야학 프로젝터는 이야기, 장면, 문자를 담은 영상들을 각 극장의 벽, 바닥, 스크린 등에 밝고 선명하게 재생해 보여주었어요.
이렇게 서울 대학로, 명동에 위치한 극장 위주로 방문하던 노들야학 프로젝터가 올해는 좀 먼 곳을 다녀왔어요. 경기도 김포 양촌읍으로요. 올해 극장은 김포 양촌읍에 있는 ‘향유의 집’이었거든요. 향유의 집은 올해 4월 30일, 35년만에 스스로 문 닫은 장애인 거주시설이에요. 대부분의 집기들과 짐이 빠져나간 그곳을 관객들이 직접 방문해 구체적으로 장애인 거주시설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를 바라보고, 우리가 그동안 어떻게 있어 왔는지(앞으로 어떻게 있을 것인지) 함께 질문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준비한 공연이었어요. 제목은 <관람모드 - 있는 방식> 이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공연 소개를 아래 덧붙입니다.
“우리는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 누군가가 ‘있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있는지 알 수 없는 혹은 알고자 하지 않는 거주시설에서 살고 있고 누군가는 그 시설을 방문합니다. <관람모드-있는 방식>은 없다고 여겨졌던 사람들, 하지만 분명히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 기억, 흔적을 만나기 위해 지금은 문 닫힌 ㅁ애인 거주시설 ‘향유의 집’을 방문하는 짧은 여정입니다. 시설이 어디에 어떻게 있으며 그 안에서 사람이 어떻게 있었는지를 바라보는 ‘관람’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또한 그 물음이 우리가 어떻게 (살고)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그리하여 시설이 없어져야만 있게 될 누군가가 있음을 함께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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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의 집에 방문한 노들야학 프로젝터는 이제는 흔적만 남은 각 공간에 사람들의 이야기, 인터뷰 영상, 사진 등을 영사하기 위해 이곳 저곳을 왔다 갔다 했어요. 노들야학 프로젝터를 어디에 두고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보여줄지 결정해야 했거든요.
향유의 집은 지하 1층, 지상 3층의 본관과 별관이 있는 큰 규모의 장애인 거주시설로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방들이 쭉 이어져 있는 형태의 건물이에요. 이렇게 큰 공간을 극장으로 사용한 것은 처음이었어요. 건물의 크기도 크기지만 35년 동안 각 공간에 담긴 이야기들, 우리가 함께 들어야할 이야기들이 컸기 때문에 어디에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담아야할지 고민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많은 기록들 중에서 거주시설에서 보호와 관리라는 이름으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폭력과 그것을 용인한 시설 내 외부의 구조, 사회적 인식 등 함께 생각해보아야하는 말들을 고르려고 노력했던 거 같아요. 그 덕에 노들야학 프로젝터도 1층 방 바닥에 설치되었다가 2층 방 천장에 매달렸다 하느라 고생을 좀 했어요.
향유의 집에서 30년을 거주한 양0연님이 기억하는 화장실 하나를 가운데 둔 두 방에서의 생활 모습, 20년 일한 직원 김0순님이 들려준 시설 비리에 맞서 싸웠던 경험, 14년 전 향유의 집을 처음 방문한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활동가가 목격한 복도 풍경과 시설 안에서 또 다시 누군가를 가두고 배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독방과 칸막이에 대한 이야기, 거주인들이 모여서 티비를 보는 휴게실이었지만 거주인 중 누군가 죽으면 시체실로도 사용되었던 2층 왼편 첫 번째 방에 대한 기억, 올해 3월 ‘아듀 향유의 집’ 파티를 할 때 거주인과 직원들이 지하 강당에 모여 나눴던 이야기들이 누군가의 음성으로, 영상으로, 글씨 스티커로 공간 곳곳에 담겼어요.
그리고 공연 기간 내내 격일로 출연한(관객들에게 향유의 집을 가이드해준) 예전 거주인이자 현재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인 김동림(노들야학 학생이기도 하시죠.) 님과 한규선 님의 인터뷰 영상을 두 분이 자립 직전까지 거주했던 방 벽 한켠에 재생했지요. 노들야학 프로젝터는 한규선 님이 자립 직전까지 거주했던 2층 오른편 세 번째 방에 설치되었던 걸로 기억해요. 한규선 님이 현재 자신의 집 거실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그가 자립하기 직전까지 살았던 방 벽 한켠에 영사했어요. 노들야학 프로젝터가 전했던 한규선 님의 이야기 중 일부를 여기에도 담고 싶네요.
“나는 사실 시설에 있으면서 하루도 긴장하지 않은 날이 없었고. 그건 사실이었고. 그게 시설 밖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집인데 왜 긴장하냐고 하는데. 거기에서는,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20년 동안 방 안에서도 긴장했어요. …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시설이라는 데가 경제적인 논리로 따졌을 때 엄청 효율적인 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과연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어요.”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고 그 밖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는 그 문이 닫혀야만 시작될 수 있는 이야기인 거 같아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마주치지 않았다고,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다고 해서 없는 사람, 없는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시설이 있는 한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거 같아요. 함께 있는(살아가는) 방식은 시설이 없어져야 비로소 생겨날 수 있겠지요.
노들야학 프로젝터가 향유의 집 2층 방 벽에 영사한 ‘과연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어요.’라는 한규선 님의 말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제 안에 담아두려고 해요. 더 알고자 하고 더 궁금해하고 더 움직이기 위해서요. 아마 그 과정에서 또 다른 공간을 찾아가 그동안 없다고 여겨졌던 이야기들을 전하기 위해 또 다시 노들야학 프로젝터를 빌리겠죠?! 미리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