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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2.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너무나도 뜨거운

2020 서울형권리중심의중증장애인'

 맞춤형공공일자리 시범사업의 현장에서

 

 

 

 

박임당

노들야학에서 활동하고 있다.2020년은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라는 신사업(?)을 맡으면서,

스스로의 한계도 성장도 좌절도 기쁨도 맛보았다. 올해는 어떠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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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들야학은 엘리베이터 공사로 1층 주차장에 노란 천막을 치고 교실로 사용하고 있 었다. 여름으로 접어드는 계절이었지만, 해가 지면 쌀쌀해지던 노란천막 안에서 서울형권리중 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이하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사업계획서 마무리는 자정을 넘긴 시각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사업계획서에 으레 들어가는 내용 중에는 관련 실적을 정리하는 항 목이 있다. 노들야학이 그동안 만들어온 활동들을 통해 장애인 권익옹호와 장애인 인권강사, 장애인 문화예술직무 등을 수행하는 일자리를 운영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하기 위함이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함께한 지난 3년 간의 권익옹호일정들을 보면서, 이 권 리중심 공공일자리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투쟁의 결과로 생겨난 결실임을 눈으로 확인하고는 찡해졌던 기억이 있다.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을 위한 공공일자리 1만개 보장 고용공단 점거 투쟁, 실적 위주의 장애인 일자리의 기준을 바꿔내기 위한 故설요한 동지의 장례 투쟁 등 추운 겨울을 나며 농성장을 지키고 싸워냈던 결과물이 서울형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를 통해 첫 걸음을 내딛었던 것이다. 찡한 기분은 잠깐이었고, 투쟁의 역사를 짊어 지고 나아가야 한다는 무거운 마음이 밀려왔다.

 

 

              이것은 일자리인가 수업인가?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중증장애인이 할 수 있는 노동의 환경을 새롭게 구축했다. 연습과 노동, 지원을 결합한 것이 그것이다. 일반적인 노동의 조건 하에서도 특정한 직무를 수 행하기 위해서는 교육이나 연습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신입사원을 뽑으면 하게 되는 연수 라든지 수시로 필요한 직무 교육이라든지, 아니면 승진과 같은 것들을 염두에 둔 개별적인 학 원 수강이라든지. 노동의 과정에서 배움과 연습의 기회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중증장애인, 노동 시장에서 노동할 수 없는 자로 배제되어왔던 중증 장애인은 어떠할까. 이제 막 시작된 새로운 일자리에 고용됨과 동시에 어떤 결과물을 바로 생 산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도 안일하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기획의 단계에서부터 중 증장애인을 고용하고, 중증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조건들을 제대로 마련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 었다. 중증장애인만 고용할 수 있도록 한 일자리, 중증장애인이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과 연 습의 과정, 근로지원인을 배치하여 노동의 지원이 가능하게끔 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등 초기 조건을 열심히 세팅했다.

              물론 아주 최소한의 조건이기에 이 조건 자체로만 일자리가 안정될 수 있는 것은 아 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조건들에 대해서 함께 인식하고 더 적합한 조건을 위해 고심하고 투쟁 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교육이 왜 노동이 되는지?’, ‘이것은 수업인지? 노동인지?’와 같은 이 분법에서 벗어나 중증장애인에게 맞추어진 새로운 관점이 우리에게조차 필요하다. 다음의 대 화에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 대한 명료한 메시지를 엿볼 수 있다. 노들야학의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기록 영상을 만들어 준 민아영 감독과 노동자 황임실 님의 대화이다.

 

 

 

“보통 뭐해요?”

“화요일엔 아프리카 댄스하고요. 목요일에는 진Zine 수업해요.”

“수업이에요, 일이에요?”

“둘 다요.”

 

 

 

              둘 다. 이토록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를 시작하기에 앞서 준비회의를 진행하면서 이 일자리를, 이 업무를 어떻게 짤까, 어떻게 구성할 까가 고민거리였다. 장애인 일자리 중, 기존에 노동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던 것들을 노동으로 만든 사례들이 있다. 권익옹호나 동료상담 등의 직무가 그렇다. 지금은 어엿하게 노동으로 인 식하고 있는 노동들인데 반해, 이 새로운 일자리에 대해서는 우리 안에서의 설득이 필요한 부 분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시범사업으로 진행하는 기관이 잘 만들어가야 된다는 것이 가장 힘 들었던 부분인 것 같고, 지금도 계속 헤매고 있다고 생각한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 대한 고 민과 많은 시도가, 실험이 계속 필요한 것이다.

 

 

 

                어디에도 없는 면접

              새로운 일자리엔 새로운 면접이 필요하다. 시간제 일자리에 지원한 한 노동자는 심 한 언어장애가 있어 AAC(의사소통보조기기)로 면접을 준비해 오셨다. 면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소개와 일자리를 하고 싶은 이유를 정리해서 AAC를 통해 말씀해주셨다. 개인적 인 경험에서 출발해 장애인을 배제하는 사회적인 조건들을 아우르는 자기소개와 노동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부분이 멋있었고, ‘나를 뽑아준다면 노들야학에 이득이 있을 걸?’이라는 식의 자신감이 기억에 남았다.

                복지일자리에 지원한 중증발달장애인들의 경우 문화예술 직무 위주이기 때문에 노 래를 들어 보는 장기자랑의 형식으로 진행을 했다. 얼핏 보면 오디션의 형태를 상상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원 자들 안에 있는 자기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싶은지, 그것을 얼마만큼 보여주고 싶은지 위주 로 심사를 진행했다. 대체로 좋아하셨다. 적극적으로 노래 부르고 자유롭게 춤추는 모습들이 있었다. 어디에도 없는 면접이다, 이것은. 물론 중증장애인맞춤형 일자리이기에 표현이 비교적 적은 노동자들은 표현하게끔 기회를 만들고 그것을 일자리로서 구성하는 것도 사업을 담당하 는 사람의 몫이다.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모든 질문에 대답을 거의 하지 않았던 지원자도, 언어 표현이 전혀 없는 지원자도 합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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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접이 재밌었던 또 다른 이유는 면접이라는 형식을 통해 만나니 이 상황을 다 느끼 고 다르게 이해하는 모습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대체로 야학 학생이었던 분들이 일자리에 지원 해서 면접에 참여하는데, 이들이 면접이라는 새로운 구도 속에서 기존에 선생님이었던 나와 만 나니 상황을 이해하고 지원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면접관 세 명이 쭉 앞에 앉아있고, 뭘 쓰면서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듣고 하는 상황들. 중증발달장애인 지원자의 경우 이 상황 자체 는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일자리를 두고 면접이라는 과정이 있고, 면접자가 지원자를 맞이하고,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 자체를 겪으면서 면접이라는 경험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면접의 과정 자체가 일자리라는 거대한 추상적인 체계를 경험을 통해 이해할 수 있 는 단편이기도 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노동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기회를 가져보는 소중한 경험이기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경험의 기회를 만들 수 있었던 장이 권리중심 공 공일자리였던 것이다. 면접자들이 의례적인 면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직무와 장애 특성을 고 려한 맞춤형 면접을 경험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점도 특별하다.

                  

 

 

                  노동자 정체성 확립하기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동자 26명이 다 선발되었다. 이제 계약서를 잘 쓰고, 출근과 퇴근을 잘 하는 일이 시작된다. 이제 막 생애 첫 일자리를 가지게 된 중증장애인 노동자에게 권 리중심 일자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대부분 야학 학생들이 이 일자리에 지원했기에, 수업시 간보다 일찍 야학에 나오는 것 말고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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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면접을 수행한 것만으 로도 다른 체계로 들어가는 관문을 통 과한 것이다. 그리고 계약서를 작성하 면서 노동자로서 일자리의 수행 기관 인 노들야학과 정해진 계약 기간을 가 지고 직접 계약을 맺었다. 계약한 노동 자로서 출근과 퇴근시간이 정해져 있 고, 지역사회에 그 일자리로서의 역할 이 생겨나고, 지역사회와 연결망을 갖 는다. 같은 업무를 하는 동료들이 생기 고, 근로지원시간과 근로지원인이 생 긴다. 이런 것들이 달라진 부분이 아닐 까. 실제로 시간제 일자리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은 모두 이것이 학교에 오는 것이 아니라 일자 리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노동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증 발달장애인이면서 시설 거주 중이거나 이제 막 탈시설 한 노동자 위주로 구성 된 복지일자리의 경우는 어떨까. 출퇴근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기본일텐데,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코로나19 등으로 휴업이 잦아서 실행을 많이 해보지는 못했지만 아이디어 차원에 서 논의를 많이 해보았다. 출근하면 출입증을 목에 걸자, 출퇴근 OMR카드를 찍자 등 여러 가 지 방안이 나왔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우리가 생각한 아이디어들이 기성 사회의 출·퇴근 인식 방식인 것 같기도 했다. 뭐가 있을까? 사진을 찍어서 매일 남긴다는 이야기도 했었고.

                  노동자가 되어 직무를 수행한다는 것에는 의례나 추상적인 요소들이 많아서, ‘오늘 내가 일을 했구나’하는 인식이 이런 출·퇴근을 인식하는 행위와 바로 연결되도록 하는 지점이 어려운 것 같았다. 일을 하면 월급을 받는다는 것 역시 어려운 개념이다. 월급을 받으면 월급을 쓰기 위해서 쇼핑을 다함께 가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인식이 되었을까. 개별 노동자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올해도 역시 노동이라는 개념 자체를 경험을 통해 인식하고 선호를 가져 보는 방식의 지원을 계속적으로 해나가려고 한다. 이 과정 역시 노동이다!

                  한편으론 중증 발달장애인이지만 지역사회에 살면서 관계망을 형성한 노동자는 다 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노동자는 이전에도 계속 일을 하고 싶었다. 가족과 주변에서 이 사람에게 일을 하면 좋겠다는 지지를 보내주었고, 관계망에 있는 사람들이 다양한 직업 세 계에 속해 있었고, 그들과 만나고 오가면서 일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경험을 통해 습득해 온 분 이었다. 그래서 일을 시작하고 가장 달라진 노동자이기도 했다. 일을 하게 된 것에 대해 너무 기뻐했고, 가장 적극적인 노동자가 되었다. 사업 담당자인 내가 출근하면 밝고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출근 도장을 꼭 찍는다. 혹시나 내가 바빠서 인사를 못하고 빠르게 지나갔다면, 적 극적으로 불러서 인사를 한다. 사실 인사 자체는 안 해도 그만인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스 스로의 노동에 대해 적극성을 표현하고 소통하려는 모습이 좋았다. 중증 발달장애인의 경우에 도 경험의 차이가 변화된 상황을 인식하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 게 되었다. 다양한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자원이 필요하다는 생각, 무엇보다 탈시설·자 립생활을 통한 지역사회에서의 삶이 절실하다고 여긴 경험이었다.

 

 

 

                ‘이것도 노동이다!’ 노동 생산물의 외화와 거리 캠페인의 과제들

                이제 실패담이다. 물론 앞선 시도들도 그렇게 성공적이었냐고 하면 그렇다고 하긴 어려울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일자리는 좌충우돌의 시범사업 상태인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협력단장님이자 야학 교장인 박경석 선생님이 지난호 <노들바람>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하 UN CRPD)의 내용을 지 역사회 시민들에게 알리는 노동을 통해,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UN CRPD 민간홍보대사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주요한 업무이다.

                  UN CRPD는 장애인의 권리를 국가와 시민이 보장해야 한다고 천명하는 수십여 페 이지에 달하는 법전과도 같은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내용 자체를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 참여하는 모두가 알고 직무를 수행하기는 진짜 어렵겠다는 감이 왔다. 그런데 우리끼리 알고 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시민들에게 알려내고 홍보해야 하는 것은 정말 더 어려운 일이었다.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권리중심공공일자리협력단에서 함께 UN CRPD의 중요한 항목을 뽑아 간단하게 설명한 홍보 책자를 만들었다. 홍보 책자를 시민들에게 나눠주면서, UN CRPD를 국가가 이행하도록 하는 서명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거리 캠페인을 나갔다. 페스티벌 행사에 ‘이것도 노동이다’ 부스를 차렸다. 하지만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다가와도 난감했다. 이 일자리를 담당하는 야학의 상근자들은 UN CRPD 교육도 받았다. 그런데 시민들 에게 말로 설명하려니 너무 어려웠다. 어색한 시민과 나 사이의 공기가 흐르고 더듬더듬 자신 감 없이 이야기를 하고 일자리를 소개한다. 바쁘게 홍보책자를 받아서 돌아서는 시민의 등. ‘근 데 이거 내가 하는 게 맞는 건가?’ 우리 노동자들은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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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 CRPD가 우리의 현실하고 뭔가 거리감이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우리의 노 동 혹은 삶과 완전 다른 것이라서가 아니라 추상적인 권리의 언어이기 때문이고, 우리는 바로 여기에서 경험하는 자들이고 이런 것들이 있어서다. 홍보책자를 들고 시민들한테 나눠주고 서 명도 받아야 하는데, 뭐라도 간단히 말을 한마디 해야 할 텐데 내용도 어렵고, 언어장애가 있고 발달장애가 있는 노동자들이 수행하기에 이러한 캠페인의 일반적인 형식이 적합한지 그것 자 체에도 의문이 갔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방향성이 노동자에서 시민들, 지역사회로 나가는 방향이 라는 것이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UN CRPD를 직접 알린다. 알리려고 나왔다. 이런 것 자체가 중요하기에, 노동자가 참여하여 노동할 거리를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다. 중요했지만 어려웠고, 대책이 없었다. 복지일자리 노동자들이 대거 부스에 나와서 함께 했는데, 더욱 더 혼란이었다. 다행히 홍보 책자 표지가 흰 바탕에 제목 외에는 비어있어서 표지에 멋있는 그림, UN CRPD 진 Zine을 만들었다. 문화예술 직무와 권익옹호 직무의 만남이었을까. 각자의 그림을 그려서 책자 를 전시하기도 하고. 원하는 시민들은 그림이 그려진 책자를 선택해서 가져가기도 했다.

                  이후 거리 캠페인을 평가하면서 이것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우리의 일자리 활동으로 구성을 하는 아이디어가 더 필요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UN CRPD가 중요하고, 우리 가 하려는 모든 구체적인 사안들에 베이스인 건 맞다. 이것을 그 자체로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 만, 효과적인 홍보를 위해서는 우리의 구체적인 경험들을 잘 알리는 방식이 필요했다. 장애인 의 노동할 권리를 표현하기 위해서 이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자체가 왜 필요한 지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일자리가 왜 필요한지 말하고, 말하기 위해 우리의 언어 혹은 언어가 아닌 방식의 수단을 찾고, 지역사회의 시민들과 만남의 경험이나 장을 만드는 것 자체 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진행 중인 고민이다.

 

 

 

                  탈시설·자립생활을 지지하는 일자리

                  사실 모두가 이 노동을 할 필요는 없다. 중증장애인이나 중증발달장애인에게 더 필 요한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탈시설·자립생활을 준비 중인 사람들에게도 필요하다. 올해 노들야학에서 일자리에 참여하는 노동자 중에 탈시설을 한 사람이 3명이나 된다. 자립생활센터의 지원과 시설과의 연계 등 여러 가지 요건들이 탈시설을 할 수 있게끔 지원을 했지만,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 참여하게 된 것도 자립생활의 든든한 지지 요인이었다.

                  일자리가 있어 소득이 보장되고, 근로지원을 받게 되면서 지원 서비스 받는 시간이 늘어난다. 급여가 보장되고, 수급자의 경우는 소득이 급여에 상응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증가한 다. (일자리를 가지고 급여를 받으면 생계 수급비가 일부 삭감되기 때문) 시설에 거주하는 수 급자라면 급여 전액을 받고 저축할 수가 있다. 자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자립해서도 매일매일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것, 일자리를 통한 지역사회 관계망 역 시 형성된다. 노동을 통해 자신의 작업을 외부로 내보냄으로써 지역사회에서 노동자의 역할을 가진다. 일자리 참여 노동자들의 작업물인 공연이나 전시 혹은 권익옹호 업무들을 계속 유형 화하고 외화하는 작업을 일자리에서는 집중해서 하게 된다. 이것들을 지역사회에 소통하고, 기 록으로 잘 남아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것 자체가 탈시설·자립지원에 필요한 기반인 것 이다. 이처럼 의미 있는 부분과 실질적인 부분이 다 있지만, 실제로 노들야학이 노동자의 자립 과정에서 지원 기관의 하나로서 입주위원회에 참석하기도 한다. 자립한 노동자의 집들이도 초 대받았다. (코로나19 때문에 무산되었지만...) 결국 이런 것들이 모여 자립의 힘이 되는 요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도 노동이다’ : 놀랍고도 어려운 과제

                  사업에 참여하는 기관 지원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노동자의 어떤 것을 잘 발견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담당자가 판을 짜더라도 노동자에게 역할을 지정하고 배정해주는 방식이 아닌, 그 사람의 고유한 것, 그 사람의 특별한 것을 관찰하고 발견해내서 반영하는 것이 중요 하다. 발견된 것을 더 잘 보여줄 수 있게 판을 짜는 역할이 지원자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것만 으로도 몹시 어렵다. 지역사회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더 만나고 싶고, 더 잘 만날 수 있는 장소와 방식을 고르는 것들이 중요한 것이다.

                  물론 담당자 몇 명이 이를 다 해낼 수는 없다. 실례로 노들야학에서 문화예술 직무를 수행하는 복지일자리 분들이 자립생활을 그린 진Zine 온라인 전시 퍼레이드를 진행한 적이 있 다. 일자리 강사로 활동하고 계신 분들이 가진 자원이나 상상력, 관계망에 기대있는 멋진 이벤 트였다. 더 많은 자원과 관계망이 있을수록 노동자들은 노동의 경험을 더 풍부하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권리중심 일자리는 노동의 개념 자체를 뒤집는 노동이다. 그래서 사실 그렇게 생각 하면 되게 무겁다. 되게 잘 만들어야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얼마 전에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관련으로 다른 기관에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강의를 하러 갔었다. ‘문화예술 직무가 어떻게 노 동이 되는가’라는 주제로 강의를 요청받았다. 노들야학의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이 일자리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자들조차 의구심을 가지고 듣는 모습들이 있었다.

                  그러한 반응들 속에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아주 새로운 개념이고 그리고 만들어 가야 하는, 어떻게 보면 미완성이지만 어떻게 보면 도전의 영역이 많은 노동이고, 우리 안에서 도 많이 설득이 되어야하는 노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력이든 실패든 실험이든 계속 겪어 야 하는 것이다. 그것들을 마음껏 해볼 수 있을 만큼의 예산이든 시간이든 충분히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예산을 지원하고 위탁을 주는 서울시와 같은 곳이 스스로 이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를 기존의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이 노동을 평가하지 않으려는 노력 역시 같이 가야 한다.

 

 

 

                  계속 일하고 싶은 노동자들

                 아무튼 노들야학은 길게는 몇 년간 중증발달장애인, 탈시설 혹은 시설 거주 장애인 들을 만나면서 이 만남과 관계를 외부로 소통하고 알리고 내보내는 방식을 계속 고민을 해왔 다. 이게 어쨌건 늘 성공적인 것도 아니고, 이번 일자리를 진행하면서도 계속 실패한 과정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거기서 반짝였던 것들을 골라내서 살찌우고 하는 시간들이 아주 느리고 길게 이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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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런 시간을 가져오지 못한 기관들은 이제 막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를 통해 그것을 시행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막막한 순간이기도 한 것 같다. 권리중심 공공일자 리도 마찬가지의 지속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시설에 거주하는 중증발달장애인 노동 자의 경우, 아예 일자리든 지역사회 관계망 속으로든 들어와 보지 않은 분들이 이 일자리를 통 해서 변화한다? 이 변화를 얼마 만에 발견하고 알려낼 수 있을까. 이 노동을 함으로써 지역사 회에 주체로 서는 것이 필요하다면 누군가에게는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긴 시간이라는 것은 긴 시간동안 일자리에 참여하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고, 그만큼의 예 산이나 시간을 확보해주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섣부르게 결과물을 요구하지 않는 것일 거다. 이러한 방향성으로 가야할 것 같다.

                  지난 12월 일자리가 계약 종료를 앞두고 노동자들은 수시로 나에게, 다른 사람들에 게 물었다. 일을 내년에도 할 수 있는 것이냐고. 내년에도 꼭 하고 싶다고. 마치 취업 청탁을 받 는 사업주의 곤란한 마음이 잠시 들었지만, 뒤이어 이 일자리를 내년에도 잘 받아서 수행할 수 있게, 2020년의 노동자들이 잘 이어서 참여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해야 한다는 무거움이 밀려왔 다. 2020년 6개월의 기간을 가지고 시행한 일자리는 12월 31일을 끝으로 계약 종료가 되었고, 노동자들은 퇴직금도 실업급여도 받지 못한 채 2021년의 일자리 시행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 다. 코로나19로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시행 시기를 줄타기 하고 있지만, 좀 더 안정적 인 노동 조건으로 하루 빨리 시행하여 다 같이 또 북적북적 혼돈의 시기로 들어갔으면 좋겠다.

                  물적 조건들이 구성이 되어야 새로운 고민과 활동이 시작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권 리중심 공공일자리를 전국적으로도 많이 확대를 했으면 좋겠다. 서울지역에서 그동안 일하지 않던 260명의 장애인이 일자리를 얻은 놀라운 일이다. 지역에 있는 장애인들은 노동으로부터 지역사회의 삶으로부터 더 많이 소외되어 있을 것이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가 전국으로 확대 됐을 때, 물적 기반을 토대로 장애인의 노동과 지역사회에서의 삶에 관한 새로운 고민과 조건 이 싹틀 것이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가 잘 확대될 수 있게, 모두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 한편 으론 먼저 수행한 서울지역의 기관들이 좋은 본보기가 되어서, 멋있는 모습들을 보여주어야 하 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선 나부터 잘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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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9 2020년 겨울 125호 - 3.권리중심 공공일자리를 둘러싼 논쟁은 더 확장되어야 / 정창조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3.권리중심 공공일자리를   둘러싼 논쟁은 더 확장되어야    : &lt;‘권리중심 공공일자리’란 무엇인가&gt; 차담회를 마치며         정... file
738 2020년 겨울 125호 - [형님 한 말씀] 2020년을 보내면서 / 김명학                           [형님 한 말씀] 2020년을 보내면서...           김명학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2020년 한 해가 서서... file
737 2020년 겨울 125호 - 평등한 밥상과 코로나19는 공존할 수 있는가? / 박임당         평등한 밥상과 코로나19는 공존할 수 있는가? : 2020 학생무상급식기금마련 평등한밥상 후기       박임당 노들야학에서 활동 중. 제 아무리 코로나19가 ... file
736 2020년 겨울 125호 - 비대면 시대를 맞이한 노들야학 체육대회 / 안연주         비대면 시대를 맞이한 노들야학 체육대회     안연주 하루종일 망고만 보고싶은 망고누나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노들에는 많은 변화... file
735 2020년 겨울 125호 - 현수막공장 노란들판에서 안부를 전합니다 / 진영인             현수막공장 노란들판에서 안부를 전합니다           진영인 공장에서 지각을 몇 년 담당하다가 얼마전에 지각대장 자리를 조상필에게 넘겨주었습니... file
734 2020년 겨울 125호 - 누구도 남겨두지 않으려면 / 박은선                 누구도 남겨두지 않으려면 리슨투더시티와 노들야학이 진행한 ‘장애포괄 재난 워크샵’을 통해 본 장애와 재난           박은선 리슨투더시티 디... file
733 2020년 겨울 125호 - [고병권의 비마이너] 상원 의원과 전역 하사 / 고병권               고병권의 비마이너 상원 의원과 전역 하사         고병권 맑스, 니체, 스피노자 등의 철학,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책... file
732 2020년 겨울 125호 - [노들아 안녕] 그동안 없었던 수많은 질문과 느낌표가 생기다 / 양지연           노들아 안녕 그동안 없었던 수많은 질문과 느낌표가 생기다     양지연                                  안녕하세요,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서비스지... file
731 2020년 겨울 125호 - [노들아 안녕] 낯설고 처음 접해보는 일들에 적응 중 / 허지혜         노들아 안녕 낯설고 처음 접해보는 일들에 적응 중     허지혜              안녕하세요!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권익옹호 팀에서 일하고 있는 허지혜입니... file
730 2020년 겨울 125호 - [노들아 안녕] ‘무용(無用)’한 것을 고민하는 사람들 /김윤교                 노들아 안녕 ‘무용(無用)’한 것을 고민하는 사람들     김윤교             무용(無用)하다는 말은 가히 폭력적입니다. ‘쓸모없다’는 표현을 無...
729 2020년 겨울 125호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동권위원회를 소개합니다 / 김상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동권위원회를 소개합니다             김상현 저는 끌려와서 가만히 앉아있는 노동권위원회 공동위원장입니다. 이 글도 이현아...
728 2020년 겨울 125호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탈시설위원회 간사를 맡았습니다 / 김지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탈시설위원회 간사를 맡았습니다     김지윤 장애와 법을 공부하는 전직 노들야학 교사                          긴긴 코로나 &am...
727 2020년 겨울 125호 - [교단일기] 나는 ‘야매’ 선생입니다 / 정민구         교단일기 나는 ‘야매’ 선생입니다         정민구 타로반 ‘야매’교사 정민구(재밌게 사는 게 인생 목표입니다)                  나는 타로카드를 정식으... file
726 2020년 겨울 125호 - 박희용의 노동, 탈시설 + 근황 / 정종헌       박희용의 노동, 탈시설 + 근황 노들야학 청솔1반 박희용 인터뷰         진행, 정리 :정종헌 노들야학 교사. 내 삶의 답을 탐구하고 있다. “보이는 희망은 ... file
725 2020년 겨울 125호 -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놀이터, 통 합 놀 이 터 만 들 기 / 김필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놀이터 통 합 놀 이 터 만 들 기           김필순 통합놀이터 법개정 추진단                   페이스북을 하다보면 가끔 외국의... file
724 2020년 겨울 125호 - [욱하는 女자] 누구를 위한 인도...???? / 박세영               욱하는 女자 누구를 위한 인도...????                     박세영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활동가. 완벽함을 좋아하지만 누구도 완벽한 사람이 없다... file
723 2020년 겨울 125호 - 치맥데이는 치맥데이일뿐, 오해하지 말자~♬ / 권민희         치맥데이는 치맥데이일뿐, 오해하지 말자~♬         권민희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게 아쉬운(?!) 바쁜 매일매일을 활동하는 센터판 사무국장 권민희(and ... file
722 2020년 겨울 125호 - 장애인파워싸커대회 우승을 꿈꾸며...^^;; / 조재범                   장애인파워싸커대회 우승을 꿈꾸며...^^;;               조재범 파워싸커가 패럴림픽 종목이 되길 고대하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조재범    ... file
721 2020년 겨울 125호 - [뽀글뽀글 활보 상담소] 밥 값, 누가 내야 하냐고요? / 서기현           뽀글뽀글 활보상담소 밥 값, 누가 내야 하냐고요?         서기현 장애인자랍생활센터판                 왜 이 어렵고 민감한 얘기를 굳이 하려드는가...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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