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름 123호 - [노들아 안녕] 지원주택 여섯 달, 노들야학 두 달~ / 이인혜, 임소라
[노들아 안녕]
지원주택 여섯 달, 노들야학 두 달~
이인혜, 임소라
글을 쓴 사람은 인혜 씨의 조력자 임소라(프리웰지원주 택센터 오류권역)입니다.
2020년 6월 5일 금요일, 오전 11시 즈음 인혜 씨와 인터뷰한 내용이고 인혜 씨와 주고받은 대화내용에 비언어적인 표현과 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조력자가 추가하였습니다.
인혜 씨는 저를 처음 만난 날 지원주택으로 이사오기 10일 전, 저에 대한 호칭을 ‘언니’라고 불러주셨고 지금도 투닥거 리는 자매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내용 에서 편한 호칭과 말투가 오가는 점이 혹 불편하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
소라 인혜! 인혜 학교 가잖아. 노들야학!
인혜 응!
소라 거기서 잡지, 잡지가 무슨 말인지 알아?
인혜 (고개를 절레절레)
소라 노들야학에서 있는 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서 책을 만든대.
인혜 응
소라 그 책에 인혜 이야기도 넣고 싶대. 인혜 사는 이야기랑 사진이랑 노들에 보내도 되겠어?
인혜 (고개를 끄덕이며) 응!
<노들바람>에 인혜 씨가 섭외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인혜 씨는 흔쾌히 수락해주었고 노들에서 전해 온 질문에 맞춰 인터뷰를 시작했다.
소라 인혜는 어떻게 지원주택에 오게 됐어?
인혜 ○○언니가 싫어서. ○○언니가 때리고....
○○언니는 지원주택에 오기 전 체험홈에 같이 살았던 분이다. 인혜 씨가 지원주택(신정동, 오류동, 장안동) 중 오류동을 선택한 것은 ○○언니와 떨어져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언니의 다소 큰 목소리와 말투가 인혜 씨에게는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소라 ○○언니랑 살았던 곳은 체험홈이잖아, 그룹홈인가? 체험홈인가?
인혜 체험홈
소라 그럼 인혜는 체험홈하고 지금 지원주택하고 어디가 더 좋아?
인혜 여기(지원주택). 체험홈, ○○언니!
인혜씨는 이사 온 지 6개월이 지났는데도 아직 ○○언니가 미운 것 같다.
소라 ○○언니 때문에 체험홈이 싫다는 거지? 그럼 체험홈에 ○○언니가 없으면 어디가 더 좋아?”
인혜 아(참)~ 여기.
소라 지원주택이 뭐가 좋아?
인혜 선생님~
소라 우리들이 좋다는 거지? 그리고 또? 또 뭐가 좋아?
인혜 방
소라 인혜 방? 방 어떤 게 좋아?
인혜 사진
소라 인혜 방에 사진이 걸려있던데, 그게 좋다는 거지?
인혜 응!
소라 인혜 씨는 방에서 뭐하고 지내?
인혜 이거 있잖아. 이거. (인혜 씨가 집게손가락으로 직선모양을 그린다.)
소라 그게 뭔게? 언니 잘 모르겠는데..
아~ 누르는 거~~
언니 잘 모르겠어.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해줘봐
인혜씨는 ‘이 답답한 사람아!’라는 눈빛을 보내곤 핸드폰에서 사진을 찾아준다. 씨디플레이어 사진이다.
소라 아~~ 씨디플레이어. 노래 듣는다고?
인혜 응!
소라 인혜야. 다음에는 씨디플레이어라고 말해주면 언니가 빨리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길면 씨디라고 말해주면 어때?
인혜 씨~디~
만난 지 얼마 안된 인혜 씨는 지금보다 더 말수가 적었다. 아니, 하고 싶은 말은 많았던 것 같지만 본인이 직접 표현하는 것보다 주변 사람들이 인혜 씨가 하고 싶은 말을 알아봐주길 원했던 것 같다. 그건 아마도 인혜씨가 말을 해도 금방 알아듣지 못했던 사람들과의 경험 때문이라 추측해본다. 인혜 씨가 좋아하는 색을 ‘분홍색’이라고 직접 말하는 것보다 ‘인혜 씨 분홍색 좋아해? 싫어해?’라는 질문에 “응” 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더 빠르고 서로가 부담스럽지 않은 상황이었을 것 같다.
소라 씨디플레이어로 무슨 노래 들어?
인혜 ....
소라 인혜 찬송가 듣지 않아? 난옥언니(지원주택 룸메이트)가 매일 들으시는 노래 같은 거.
인혜 응
옆에 있던 지수(인혜 씨를 지원하는 코디네이터)가 한마디 거든다.
지수 인혜 씨, 트로트도 듣지 않아요?
인혜 응
지수 가요는? 아이돌이 부르는 노래는?
‘아이돌’ 인혜 씨에게는 참 낯선 단어인 듯하다. 한참 아이돌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지수가 인혜 씨 씨디 중에 동방신기 씨디를 본 것 같다고 한다.
지수 인혜 씨, 동방신기도 아이돌이에요.
인혜 씨가 고개를 젓는다. 인혜 씨가 맞다. 동방신기는 이제 아이돌은 아닌 것 같다.
소라 인혜 오늘도 학교 가지?
인혜 응
소라 오늘 학교 가면 뭐해?
인혜 아직(몰라)
지수가 인혜 씨가 노들에서 받은 시간표가 있다고 한다.
소라 시간표 받았어?
인혜 응
소라 인혜 시간표 보면 학교에서 뭐하는지 알 수 있어?
인혜 몰라... (인혜 씨의 목소리가 점점 목구멍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소라 시간표가 어렵지?
인혜 응
소라 그래, 그럴 것 같아. 시간표는 오늘 학교에서 뭘 하는지 학생들한테 미리 알려주는 거야. 준비를 해야 하니까. 학교에서 행진한다고 하는데 인혜가 원피스를 입고 가면 불편하잖아?
인혜 맞어
소라 그러니까 오늘은 뭘 배우는지, 어디를 가는지 미리 알려주는 거야.
인혜 아~
소라 인혜는 시간표가 필요한 것 같아? 아님 그냥 학교 갔을 때 오늘 뭐하는지 알면 돼?
인혜 있어~
소라 필요하다는 거야?
인혜 응
이제 인혜 씨의 계획이 무엇인지 물을 참이었다. 그런데 ‘계획’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고민이 된다.
소라 인혜가 몇 살이지?
인혜 ......몰라...
나이를 물을 때마다 인혜 씨는 ‘난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로 지수를 쳐다본다. 이제 야학도 다니고 만나는사람들이 많아지면 나이에 대한 질문을 받을 텐데.. 인혜 씨가 또 위축될까봐 걱정이 된다. 인혜 씨 명함에 나이도 넣자고 말할 껄 그랬나 싶다.
소라 인혜가 언니보다 (손가락 세 개를 펴며) 세 살 어려. 그래서 서른 다섯이야.
포스트잇에 ‘35’라고 글씨를 써서 인혜 씨에게 보여주었다.
소라 인혜야 이거 봐도 외우기 어려울 수 있잖아. 그리고 서른 다섯이 좀 발음이 어렵긴 한데. 한번 언니 따라해볼래?
인혜 응
소라 인혜 씨,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인혜 서른.. 다..섯
소라 그래 인혜가 지금은 서른 다섯인데 내년에 또 내년에 그리고 할머니가 되면 나이가 많아질 거야.
‘할머니’라는 단어에 픽 웃는 인혜 씨.
소라 인혜는 내일, 다음 주에, 내년에, 또 할머니가 되면 뭐 할지 생각해 본 적 있어?
인혜 아~~ 모르겠어.
소라 그래? 아직 인혜가 생각해 본 적이 없구나? 그럼 앞으로 한번 생각해 보면 어때?
인혜 ......
또 인혜 씨 마음 속의 ‘위축이’가 꿈틀거린다.
소라 그럼 인혜는 학교에서 배운 것 중에 뭐가 제일 재미있어?
인혜 ...몰라...
소라 말해주기 싫어?
인혜 응
소라 언니랑 지수가 인혜처럼 야학을 다니는 게 아니니까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너무너무 궁금해!
인혜 .....
소라 요즘은 어디서 해? 저번에 주차장에 천막 있던데.
인혜 2층
전에 찍어둔 천막사진을 보여주자,
인혜 아, 노래 부르고...
소라 여기서 노래 배웠구나?
인혜 응
소라 재미있겠다. 노들에 가면 인혜 씨한테 반갑게 인사해주는 사람은 있어?
인혜 응
소라 친구야?
인혜 응
소라 이름은 알아?
인혜 몰라
소라 같이 공부하는 사람이야? 같은 반?
인혜 응
야학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길 살며시 꿈꿨던 코디들이 집중한다. 그 시선을 부끄럽지만 한편으론 즐기듯이 인혜 씨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아직 친구의 이름도 모르고 핸드폰에 사진 한 장도 없다. 그래도 벌써 친구도 생겼다니! 인혜 씨가 멋져보인다.
소라 선생님들은 잘 해줘?
인혜 응
소라 누가? 저번에 인혜 자립파티 때 온 사람?
인혜 응, 선생님
그리고 인혜씨가 자립파티 때 노들야학 천성호 님과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소라 이 선생님이 제일 잘해주시는 거야?
인혜 응
소라 거기서 매일 밥 먹잖아. 밥은 맛있어?
인혜 응
소라 어떤 반찬이 제일 맛있었어?
인혜 생선...하고... (손으로 쌈을 싸먹는 듯한 포즈를 취한 뒤) 이거 먹는 거. 똑같애.
소라 뭐가 똑같아? 집에서 먹는 거랑 똑같아?
인혜 응
소라 그래서 맛있다는 거야? 맛없다는 거야?
당연한 걸 묻는다 라는 듯이 인혜 씨가 깔깔거리고 웃는다.
소라 왜 언니는 집밥이 맛없어서 물어보는 건데? 인혜는 집밥이 맛있어?
인혜 응!
인혜 씨가 지원주택에 온 지 이제 6개월, 그리고 노들야학에 다니게 된 지 두 달째이다. 인혜 씨가 지원주택에 이사 온 뒤, 본인의 이름을 묻는 질문보다 더 많이 들었던 것은 “지원주택에 사니까 좋아요? 뭐가 좋아요?” 라는 질문이다. 2개월 전만 해도 인혜는 똑같은 나의 질문에 “좋아. 그냥...” 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오늘의 답은 ‘방, 사진, 씨디플레이어’.
지난 주,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만난 베이지색 원피스를 입은 인혜 씨가 참 예뻤다. 집에서 후줄근한 트레이닝복을 입던 모습을 자주 봐서 그랬을까? 아님 대학로라는 풍경에서 만났다는 감성이었을까?
우리 인혜 씨..
우리 인혜가 지하철을 타고 대학로에 가고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어제보다 더 풍부해지는 오늘을 매일 매일 맞이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