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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들책꽂이 ]

푸코도 흡족해 할 푸코에 관한 책

박정수, 《‘장판’에서 푸코 읽기》, 오월의봄, 2020

 

 

 

 

김도현

장애인언론 ‘비마이너’ 발행인이자 노들장애인야학 교사이고,

노들장애인야학 부설 기관인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이기도 하다.

《장애학의 도전》(2019)을 썼고, 《철학, 장애를 논하다》(2020)를 우리말로 옮겼다.

 

 

 

 

김도현_장판에서푸코.jpg

 

 

 

  지난 8월 중순, 국회에서는 의원 연구모임인 ‘약 자의 눈’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이 함께 주관 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전국 확대 방 안’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의 성격상 여러 정부 부 처와 지자체 관계자들이 토론자로 초정되었다. 지난 7월부터 이 사업을 처음 실시한 서울시뿐만 아니라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 공무원은 (비록 면피성 발 언일지라도) 어느 정도 긍정적 반응을 보인 반면, 한 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 연구원은 유독 회의 적이고 비판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사전에 작성된 토 론문이 자료집에 실린 이도 그가 유일했는데, 비판의 요지는 “사업의 효과성과 노동의 성과를 계측할 합 리적 기준이 없다”는 것. 더불어 이 공공일자리의 직 무 중 하나인 문화예술 활동의 경우 비장애인과 경 쟁해 전문 예술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제가 존재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날 토론회를 페이스북 라이브로 시청하면서, 나 는 얼마 전 출간된 한 권의 책을 떠올렸다. 노들장애 학궁리소 연구원인 박정수의 신간 《‘장판’에서 푸코 읽기》를 말이다. 푸코는 스스로를 철학자가 아니라 고고학자이자 지질학자라고 말했지만 철학적으로 중요한 개념을 여럿 만들어 냈다. 그 중 하나가 특정한 시대를 지배하는 선험적이고 무의식적인 인식틀 을 의미하는 ‘에피스테메’(épistémè)다. 그는 근대 인간학을 지배하는 에피스테메가 언어(언어학), 생명 (생물학), 그리고 바로 노동(정치경제학)에 대한 실증 과학적 지식이 응집되면서 출현했다고 말한다.1 장애 인공단 연구원은 장애와 노동에 대한 앎을 그날 토 론자들 중 가장 많이 축적하고 있는 소위 전문가였 다. 그리고 그 앎은 푸코의 지질학적 개념틀을 응용 하자면 ‘자본세’(資本世, Capitalocene)의 에피스 테메에 입각해 있는 것이었다.

 

 

   반면 자본세의 에피스테메에서 ‘일할 수 없는 몸’(the disable-bodied)에 불과한 이들이 노동을 권리로 주장할 때, 이는 필연적으로 그 에피스테메에 기반한 노동 개념을 탈구축하고 새롭게 재구축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즉 지금의 중증장애인 노동권 투 쟁은 거리에서 몸으로 수행하는 물리적 투쟁이기도 하지만, 치열한 인식론적·에피스테메적 투쟁이기도 하다.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된 이들은 그렇게 배제되어 있었기에, 즉 공통된(common) 삶의 경험 과 지반을 갖지 않기에, 기존의 통념/상식(common notion/common sense)과는 다른 전복적 인식틀 을 형성할 잠재력을 갖는다. 장판(장애인운동판) 활 동가는 말한다. “합리적 기준이라는 것은 이제까지 비장애인 중심, 시장 내에 있었던 사람들의 시각에 서 나온 것이지 우리의 기준이 아니다.”

 

 

   토론회를 다 보고 나서 이미 두 차례 읽었던 책 을 다시 펼쳐들었다. 미셸 푸코. 한국 사회에서 인문 사회과학 분야를 중심으로 독서를 해온 이들 중 그 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특히 장애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는 이들 중 그의 저서를 한 권이라도 들춰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 다. 그의 연구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키워드들, 즉 ‘(비)정상성’, ‘광기’, ‘수용소’, ‘생명권력’, ‘통치성’ 같 은 개념들이 장애 문제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 니 말이다. 외국의 장애학 과정 커리큘럼에서도 그 의 저서 몇 권은 거의 필수 교재로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의 텍스트 전반을 꾸준히 읽어 왔고, 그래서 푸코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느 끼는 장판 활동가들은 또 얼마나 될까? 짐작컨대 이 에 해당하는 이도 많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사정은 기실 나 역시 마찬가지인데, 현대 프랑스 사상가들의 작업 대부분이 그러하듯 그의 텍스트들도 결코 호락 호락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기 때문 이다. 이 같은 현실과 조건에서 《‘장판’에서 푸코 읽 기》의 발간은 여러모로 반갑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푸코가 살아 있고 한국어를 할 줄 알 았다면 그 역시 무척이나 흡족해 하지 않았을까 생 각한다.

 

 

   이 책은 목차에서 잘 드러나듯 푸코의 이론과 여 러 저서들, 즉 《말과 사물》(1장), 《광기의 역사》와 《정신의학의 권력》(2장), 《비정상인들》과 《감시와 처 벌》(3장), 《생명관리정치의 탄생》(4장), 《성의 역사》 와 《진실의 용기: 자기와 타자의 통치》(5, 6장)를 구 체적인 장애 사안―장애등급제와 서비스지원 종합 조사표, 사법 입원과 치료 감호, 장애인 시설과 특수 학교, 산전 검사와 신우생학, 성년후견인제도, 자립 생활과 탈시설 등―과 연결 지어 유려하고 흥미로우 며 알기 쉽게 풀어나간다. 이를 통해 그는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심해에서만 신비로운 빛을 발하는 해 파리처럼, 운동하는 삶 속에서만 특유의 광기 어린 신비를 발하는 푸코의 담론을 만날 수” 있도록 해준 다.2 그런데 이 책은 그 내용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측면에서도 ‘푸코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푸코는 1975년 《감시와 처벌》 출간 후 이루어진 로제 폴 드루아(Roger-Pol Droit)와의 대담에서 “나에게 글 쓰는 일이 재미있는 경우는 수단이나 전 략, 정찰 등의 명분으로 오로지 투쟁의 현실과 결합 되는 경우에 한해서”이며, “내 책이 메스나 폭약, 아 니면 지뢰를 파묻는 갱도 같은 것이 되어서 조명탄 의 불꽃처럼 한 번 사용된 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 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3 그리고 자신의 저작이 “생 산자의 소유를 벗어나 누구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들고 다니면서 쓸 수 있는 연장통”이 되길 바랐다.4 책의 곳곳에서도 언급되어 있고, 디디에 에리봉이 집필한 푸코의 전기 《미셸 푸코, 1926~1984》(그린 비, 2012)를 읽으면 더 생생하게 기술되어 있는 것처 럼, 푸코는 결코 책상물림의 지식인이 아니었다. 자 신이 천착했던 섹슈얼리티, 광기, 감옥 등에 대한 담 론을 무기로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거리로 나 섰던 열정적 실천가이기도 했다. 《‘장판’에서 푸코 읽 기》의 저자 박정수도 일차적으로 연구자이지만 동시 에 활동가를 지향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런 활동가적 지향과 태도가 있었기에, 그러나 또한 오랫동안 푸코와 인문학 연구를 해온 내공이 바탕이 되었기에, 이처럼 멋지고 스마트한 새로운 ‘연장통’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지금까지 나는 이 책을 세 번 읽었다. 2018년 상반기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책과 동명의 타이틀을 단 강좌가 진행되었을 때 강의 원고로 한 번, 책이 정식으로 출간되기 전 초고로 한 번, 그리고 추천사에 가까운 이 서평을 쓰기 위해 다 시 한 번. 그러나 아마도 나는 이 책을 내 책상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들춰보며 수시로 써먹게 될 것 같 다. 원래 연장통이라는 건 그렇게 쓰이는 법이므로. 나뿐만 아니라 장애인운동을 비롯한 소수자운동을 하는 다른 활동가들에게도 이 새로운 연장통이 그 처럼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1 박정수, 《장판에서 푸코 읽기》, 30쪽.

2 박정수, 《장판에서 푸코 읽기》, 17쪽.

3 ichel Foucault & Roger-Pol Droit, “je suis un artificier”, Michel Foucault: entretiens, Odile Jacob, 2004, p. 105.

4 Michel Foucault, “Prisons et asiles dans le mécanisme du pouvoir”, Dits et ecrits 2, 1974, p.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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