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름 123호 - [나는 활동지원사입니다] 매일 자신만의 한 걸음을 걷는 사람들 / 홍석현
[나는 활동지원사입니다]
매일 자신만의 한 걸음을 걷는 사람들
홍석현
개인적인 사정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왔을 때 우연한 계기로 ‘활동지원’이라는 일을 접하고 교육을 이수했다. 2번의 이용자와의 면접에서 거절당하고 영은씨(이용자) 활동지원 선생님의 소개로 지금까지 상우형(이용자)과 같이 활동한지 벌써 1년이 넘었다. 1년 동안의 활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투쟁’이다. 하지만 처음 이 일을 하면서 투쟁 현장을 접하며 떠오른 생각은 ‘왜 이렇게 까지 하는가?’였다.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는 ‘장애인은 연민의 대상이다.’라는 뜻이 뿌리 깊게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나의 첫 장애인 친구는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짝궁이었다. 그는 자폐성 장애인이었다. 그래서 학교에 같이 있을 때만큼은 항상 챙겨야한다는 고정관념이 생겼다. 그는 규율을 벗어나는 행동이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비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모두 비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사회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합리적인 연민’이라는 이름으로 장애인 친구들을 특수학교로 그리고 시설로 보냈다. 그 ‘합리’의 뜻을 살펴보니 “어차피 장애인은 정규수업을 제대로 따라오지 못한다.” “비장애인의 공부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서로 각자의 길을 가는 게 학업을 향상시키는데 유리하다.” “그러니 이것을 딱하게 여겨 장애인의 수준에 맞는 교육원이나 시설로 보내주겠다.”
이 말을 가만히 살펴보니 포장된 말이다. ‘그냥 나와 다른 형체와 행동을 하는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이러한 시각은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오류가 있다. 일단 장애인 친구들은 공부에 큰 방해가 되지 않는다. 그 말대로라면 하나의 반에 장애인 친구가 있었다면 학업 성적이 좋지 않아야 하는데 그 시절 우리 반의 절반은 성적 상위권 친구들뿐이었다. 장애인 친구가 짝꿍이었던 나조차도 중 1, 2학년 때보다 성적이 올랐다. 공부는 자기가 하기 나름이다. 어차피 환경을 조성해주어도 공부머리가 없거나 공부가 하기 싫은 친구들은 공부를 안 한다. 본인이 성적을 올려서 이름표 좋은 학교에 가고 싶으나 성적이 안 나오거나 또는 그런 친구의 부모들이 외부에서 핑계거리를 찾는 것뿐이다. 그리고 무언가 배움에 있어서 그 친구가 연민을 받을 부분이 뭐가 있는가? 그는 학교에서 동기들의 생년월일, 반과 번호, 역사 에서 일어난 사건의 연도 등 숫자에 관련된 것을 외우는 것만으로도 즐거운데!(그 친구는 숫자를 잘 외우는 서번트 증후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주 좋아했다.) 그럼에도 그 장애인 친구는 사회의 이 어처구니없는 합리와 연민에 놀아났다. 결국 그는 일반고등학교는 가지 못하고 특수학교로 간 것으로 안다. 내 기억으로는 그는 끝까지 “특수학교는 가기 싫다.”고 이야기 했다. 물론 그 뜻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4년 이러한 장애인에 대한 합리와 연민의 관념에 금이 가는 사건이 생겼다. 이 시절 나는 대구 중앙로 부근에서 취업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던 그날도 어김없이 공부하러 대구중앙도서관에 가고 있 었다. 그런데 도로 한쪽을 수많은 장애인들이 행진하며 투쟁하고 있었다. 장애인 한 분이 “여러분의 관심이 절실합니다. 서명 한번만 해주세요!”라며 소리쳤다. 많은 장애인이 모여서 시위하는 것에 놀라 그들이 왜 이렇게 분노하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서명을 하며 무슨 일인지 물었다. 바로 대구희망원 사건이었다.
몇 년 후 그 투쟁의 도로 위에 나 또한 이용자와 같이 걷고 있다. 투쟁을 할 때면 매번 경찰이 주위에 포 진해있다. 투쟁을 보고 지나가는 주변 사람들의 응원 도 들리고, 비아냥거림과 욕설 또한 들린다. 차로 밀어 버리려고 하는 사람도 있었으니 말이다. 투쟁이 불편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각은 이렇다. “몸도 불편한데 뭐 하러 나왔느냐? 나도 활동을 해야 하는데 방해하지 마라.” “비장애인도 사회생활을 하면 똑같이 차별받는다. 다들 참고 감수하며 사는 거다.” “국가에서 지원해 주지 않느냐? 욕심이 과하다. 장애가 무슨 벼슬이냐?” 그런데 이러한 말들을 살펴보니 ‘장애인은 연민을 받을 존재지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존재가 아니다.’ ‘나도 못하는 투쟁을 나보다 못한 사람이 투쟁을 해?’ 부정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주체적으로 삶에 투쟁하지 못하기에 배가 아픈 것이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이해할 수 없고 장애인 또한 비장애인을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장애, 비장애를 떠나 서 사람은 결코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 가깝게 가족이나 부부, 연인, 직장동료, 학창시절 친구들을 생각해보라. 그들이 전부 이해가 되는가? 최대한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거 아닌가? 다만 상대를 이해할 수 없기에 각자가 더욱 주체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우리들 중에 궁예 처럼 관심법을 쓰는 사람은 없다.(관심법을 쓰는 궁예 조차도 타인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 할 수 없으므로 주체적으로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무시하고 괄시하며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고 연민을 받으라고 강요한다면 어쩔 수 없이 투쟁해야 한다. 비장애인도 이런데 장애인이라야! 쓰러지더라도 정당하게 최선을 다해 투쟁하자. 눈이 안보이고 귀가 안 들리고 판단이 잘 되지 않고 걸을 수 없더라도 ‘나의 한 걸음’을 걷자. 이것이 1년 동안 활동지원을 하며 느낀 점이고 나에게 내린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