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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은 사랑을 싣고

노들, 그때 그 사람들

 

 

 

 윤혜정

노들야학 동문

 

 

 

 

  며칠 전에 요양 도우미 언니가 가져다준 핸드폰을 받아보니, 노들야학의 한혜선 선생님이었어. 노들바람의 코너에 동문으로 글을 써달라는... 내가 있던 그 시절의 노들장애인야간학교(이하 노들)...

 

 

  노란들판에 들어가다

 

  1999년 5월, 노들야학과 노들인들을 처음 만난 해였어.

 

   그 당시에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새날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으며 독서모임까지 했었는데 그때 도서관 사무장이었던 김준형 선생님이 공부하고 싶어 했던 나를 다짜고짜(?) 데리고 간 곳이 아차산 언덕에 있던 노들장애인야학이었어.

 

  그때 노들은 정립회관 구관 교육관 세 칸을 사용 중이었는데, 한 칸은 교무실로, 두 칸을 교실로 쓰고 있었어.

 

  준형 선생님을 따라 들어간 교무실에는, 그 얼마 전에 새날도서관 일원으로 준형 선생님과 김희찬 사무원과 함께 참석했던 어떤 총회에서 큰 소리로 발언해서 무섭게(?) 보였던 사람(박경석 형)이 교장이라며, 역시 큰 소리로 내게 인사했고, 총회에서 이미 만나 낯익은 이진희(지금의 장애여성공감 활동가)와 김도경, 김보연, 양현준, 김기룡과 박여송, 전윤우, 최성관 선생님 등 지금은 가물가물 이름도 희미한 선생님 몇이 나를 맞아 주었어.

 

  그 당시 노들은 청솔반과 불수레반과 한소리반으로 나뉘어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준형 선생님을 따라 들어간 반이 초등부(중입준비반)인 청솔반의 수학시간이었어(아, 수학이여!). 그리고, 들쭉날쭉했던 의자와 책상들......

 

  준형 선생님은 나를 말은 못하지만, 장애는 나보다 덜한 여학생 옆에 앉혔는데, 그 여학생이 지금까지도 이정민 언니와 박주희 언니, 이시은과 나까지 든 카톡 채팅방의 방장언니인 최미은 언니였어. 나는 갑자기 노들로 끌려(?) 올라갔고, 필기도구 몇 자루와 다이어리밖에 없던 내게, 언니는 자신의 노트 두어 장을 부우욱하고 찢어주며 씩~ 웃어주더라.

 

  그리고 돌부처(?) 같은 모습으로 나를 약간 놀라게 했지만, 마음은 넓고 따뜻한 김명학 형과 윤석만 형, 이흥호와 이규식 학생, 김태균과 윤영미, 동갑내기라고 나를 많이 도와 주었던 심광보 친구와 말수는 적어도 공부 잘 했던 임은영 학생과 위에서 언급했던 정민 언니와 주희 언니와 시은, 그리고 얼마전에 하늘로 먼저 갔다는 고 권영진 학생(이렇게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까지 ...

 

  나의 노들 생활은 그 노들인(일일이 언급 못 해 드린 동문님들, 용서해 주세요)들과 함께 그렇게 복작복작 시작해서 5년 여 해를 지냈어.

 

 

  검정고시

 

  노들 하면 역시 검정고시가 먼저 떠오르지.

 

  검정고시는 중입이 5월에 한 차례였고, 고입과 고졸이 4월과 8월로 두 차례였어.

 

  나는 노들에 들어간 지 1년 만에 중입검시를 치렀는데, 감기몸살이 든 데다 아침부터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어. 걱정이 되신 엄마께서 따라나서시려는 것을 겨우 말리고, 우산은 썼으나 거의 다 젖은 채로 아현중학교에 도착했지.

 

  그런데 어머!...... 나보다 먼저 교정에 모여있는 사람들. 함께 시험 치를 학생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들과 시험을 치르지 않는 학생들까지...... 노들인들이었어. 그러고는 시험장까지 따라 들어와서 선생님들은 책상과 의자를 내 앉은키만큼 맞춰 줬고, 초콜릿과 따뜻한 커피를 따라줬어.

 

  눈물이 왈칵 솟았어. 이 사람들 아니었으면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나는 그 첫 시험에서 아홉 과목 모두 합격으로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았어.

 

  그리고, 노들에 들어간 지 석 달 만에 윤영미 학생의 몰아붙이기(?) 지명으로 학생회 총무가 되어, 세 학기씩이나 연임해서 늘 돈주머니를 차고 있었어. 총무로 지명당한 이유는 성당 청년회와 몇 개 단체에서 활동 중이었던 게 이유 같지 않은 이유였지.

 

 

  노들 봉고

 

  또 하나의 노들의 기억이 있다면 ‘노들 봉고’.

 

  전동휠체어가 보급되고, 장애인 콜택시가 굴러다니는 요즘도 장애인 이동권은 절실하고 어려운 문제지만, 그때는 중증장애인이 수동휠체어로, 혹은 보행으로 이동하기란 참으로 힘들고 위험한 문제였어. 그리고 그 아차산 언덕.

 

  그런데 그 즈음에 노들에서 구입한 것인지, 기증을 받은 것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학생들의 이동을 위한 승합차가 생겼고, 우리는 그 승합차를 ‘노들 봉고’라고 불렀어. 그 ‘노들 봉고’에 ‘노들장애인야간학교’라는 글자 테잎을 천종민 선생님이랑 붙이며, 기뻐했던 기억이 나네.

 

  그 뒤로 승합차 한 대가 더 들어와서, 학생들의 등하교를 도왔어. 운전은 양현준과 한마루와 최병선(최진석으로 개명했대) 등 선생님들 몇이 돌아가며 했어.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집회와 서명전

 

  지금도 뉴스 등 보도 프로그램에서 보고 있지만, 그 시절에도 이동권 집회와 서명전을 했어.

 

  천주교 단체에서 활동 중이었던 내 이상과 맞지 않아 집회는 잘 안 나갔지만, 매주 토요일에 혜화동 마로니에공원 앞에서 진행했던 서명전은 거의 매주 나갔어. 총무로서 서명전 참여 교사들과 학생들의 간식과 식사를 챙기기 위해서였다지만, 그게 내가 할 수 있었던 참여 방법이었지.

 

  지금도 교통 약자에 대한 관심은 그저 장애인들이 벌이는 이슈(?)에 불과하지만, 그때는 더 그랬어. 엄마랑 함께 지나던 아이가 경석이 형을 가리키며, "엄마, 저 아저씨 이름이 ‘이동권’이야?" 하고 묻더라는 말까지 나왔었으니까.

 

  복잡하고 시끄러운 주말의 도심 공원 앞에서, 무심하게 혹은 시끄러운 소음 듣듯이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해 서명을 해주세요! 엘리베이터 설치를 위해 서명을 해주세요!"를 외치며, 선생님들은 이리저리 뛰며 서명을 받았고, 경석이 형과 학생들은 선생님들이 데려오는 사람들을 설득하며 서명을 받아냈어.

 

  그때마다 받은 질문, "왜 장애인 몇 사람들 때문에 세금을 낭비해야 하나요?"

 

  그 무지하고 황당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대답했어.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는 장애인 몇 사람만을 위한 세금 낭비가 아닙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된다면, 연세가 많아서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은 물론이고 유모차에 아기 태우고 다니는 엄마들과 짐차 끌고 다니면서 장사하시는 상인들도 보다 편하게 다닐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정치인 나리들의 월급 조금이라도 줄여 주신다면 세금 낭비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어느 날은 우리말이 서투른 외국 남자가 관심을 갖고 다가왔어. 아마도 한국의 장애인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었나 보지. 그 모습에 경석이 형은 모른 척 고개를 돌리고, 옆에 있던 미은 언니는 뒤로 도망가 버리고 ......

 

  서투른 영어 단어를 조합하고 손짓해 가며, 그 외국인에게 서명을 받아냈어.

 

  그 외국인이 서명하고 간 후에 경석이 형과 미은 언니가 박수를 치고 엄지를 보이며 웃었고, 나는 두 사람을 흘겨보며 함께 웃었던 적도 있었어.

 

 

  노들 행사

 

  노들의 대표적인 행사라면 <해오름제>와 <노들 일일호프>, <개교기념 행사>. <노들인의 밤>일 게야,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해오름제>는 한 학기의 개학식으로, 새로운 집행부 소개와 함께 각 반들의 다과회로 진행했던 행사였어.

 

  <노들 일일호프>는 노들의 기금 마련을 위한 행사였고. 노들 호프를 위해 노들인들은 각자 능력(?)껏 티켓을 팔았어. 나도 포콜라레(마리아 사업회=가톨릭 단체) 친구들이 많이 팔아 주었어.

 

  그리고 호프가 열리는 날에는 노들인들 너나 할 것 없이 일찌감치 호프장으로 모여, 전날에 장을 보아두었던 안주 재료를 다듬었어. 나도 날달걀을 깨뜨려서 모으고, 파를 다듬고 함께 했지.

 

그러다 교사 총무였던 도경 선생님이나 진희 선생님, 홍은전 선생님이  "혜정이 언니, 카운터로 나오세요" 하고 부르면, 그때부터는 티켓과 돈과 주문받은 거 정리가 시작됐어.

 

  초반에는 그래도 여유가 있어서 나를 찾아온 친구들을 맞아서 얘기도 할 수 있었어. 그러고 있으면 경석이 형이 "혜정 언니 친구들이구나!" 하고 반겨주며 얘기도 함께 나누기도 하고......

 

  그러다 오후가 되면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밀려오고, 그야말로 정신없이 일을 했어. 카운터 사람들 먹으라며 파전 한 장 부쳐다 주면, 홀서빙하던 교사들이 "누나, 배고파요!" "언니, 저 한 입만요" 아무래도 그들이 더 배고플 테니까, "어, 드세요" 하다 보면 접시는 금방 비어버렸어. 내 파전!!!

 

  그렇게 정신없이 일하다 사람들이 조금 뜸할 때면, “언니, 잠깐만 나와서 쉬세요" 하고 나를 테이블에 앉히고, 파전 하나와 함께 맥주 한 잔을 따라주는 거야. 정신없이 일하다 마신 그 맥주 한 잔은 정말 맛있고 시원했던 기억으로 남아있어.

 

  <노들 개교기념 행사와 체육대회> 노들의 개교기념일은 8월 8일로 기억하는데, 맞는지 모르겠네. 그 무렵의 토요일로 날을 잡아서, 집행부는 계획을 짜고, 동문들에게 초대 연락을 돌리며 준비를 했어.

 

  몇 년도였던가, 한 해는 나를 준비팀장으로 몰아(?)세운 거야. 아니, 그때 학생총무는 시은이었고, 나는 부회장이었는데 말이야. 그리고 한진구 학생이 회장이었고, 교사집행부도 있는데, 준비팀장으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고, 박수로 준비팀장으로 세웠어. 그러고는 교사 가운데 막내였던 한윤경 선생님을 보조(?)로 붙여 주더라구. 그때는 내게 핸드폰이 없었기에, 나와 그때그때 소통을 위해서였지.

 

  이제서야 고백하는데, 행사 준비를 하던 하루는 하도 혜정이를 찾길래, 그때 행사 장소로 빌렸던 정립회관 강당의 커튼 속에 숨어서 깜빡 눈을 붙이기도 했어. 

 

  <노들인의 밤>은 노들을 후원해 주는 후원인들을 초대해서, 공연도 하고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자리였어. 그때도 음식을 차리며, 노래 수화와 합창 연습을 하고...... 

 

  한 해는 태애경 선생님의 리드로 꽹과리와 징, 북 세 개와 장구 세 개로 교사와 학생들이 8인조 사물놀이팀을 조직해서 신나게 북을 두드린 적도 있었어. 그 사물놀이팀은 이듬해 장애인차별철폐의날을 앞두고 일주일 동안, 혜화동과 광화문 등을 다니며 공연도 했었지.

 

 

  노들 ...... 그 후

 

  2003년 초에 나는 노들에 들어간 지 5년 만에 나왔어. 그러고는 여전히 <포콜라레> 활동을 하며, <장애여성공감> 소속의 장애여성 극단 <춤추는 허리> 배우로 입단해서 공감 사무실에서 상근까지 했어. <춤추는 허리>의 공연 때는 노들인들도 와서, 안민희 선생님이 곰돌이 인형의 핸드폰 고리 선물도 주며 응원해 주더라구.

 

  노들이 아차산 언덕에서 혜화동 마로니에공원 뒤편에 있는 건물에 자리 잡은 지금도 행사가 있는 날에는, 명학이 형이나 혜선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와. 지난가을에도 혜선 선생님의 행사 소식을 받고, 오랜만에 마로니에공원으로 나들이를 했어.

 

  두 차례의 목디스크 수술과 8개월의 재활훈련과 코로나 감염으로 2주간의 격리 등으로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날들 ......

 

  몇 해 만에 다시 받은 초대가 참 반갑고, 나를 잊지 않고 불러 준 게 고마웠어.

 

  다시 만난 노들인들과 사진도 찍고, 혜선 선생님과 은영이가 사 준 아메리카노와 떡볶이와 닭강정도 먹으며, 나도 후원금을 핸드폰으로 쏴(?) 줬어. 그러고는 옛 시절의 그 얘기들에 젖기도 했지.

 

  이리 일하고 저리 뛰며, 의견 충돌로 씨름하다가도 금방 함께 웃었던 그 시절과 그때 함께 했던 사람들...... 너무 힘들어서 주저앉아 울고 있으면 등을 어루만져 주던 그때 그 사람들......

 

  지금도 나를 기억해 주는 노들인들이 있어서, 나의 노들생활 5년은 헛되지 않았음이야. 그리 생각해도 될까?

 

2024년 2월 3일 자정 넘어서 윤혜정 마침.

 

 

윤혜정1.jpg

2002년 상반기 해오름제

 

 

윤혜정2.jpg

2023년 노란들판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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