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가을 128호 - 자립생활을 알려주마 완전한 독립의 꿈 이루어지길... / 김미영
자립생활을 알려주마
완전한 독립의 꿈 이루어지길...
김미영
‘쓰엥님’보다 ‘언니’가 되고 싶은 센터판 활동가
‘고기를 잡으러 강으러 갈까요,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요~♪♪’ 밖으로 나와 신난 원주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생각으로 노래를 불렀다. 힐긋 한번 바라보더니 신난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노래를 같이 부르기 시작한다. 우리(원주님, 희숙님, 그리고 나)는 시장으로 나들이를 가는 중이다.
무슨 생각이 그리 많은지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느릿하게 걷는 희숙님과 문 밖만 나오면 신난 원주님과의 걸음 속도는 다르다. 나는 손을 잡아달라는 희숙님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걷다가 앞서나간 원주님이 걱정되어 함께 가자고도 하고 노래도 불러보았지만 원주님은 멈출 생각이 없다. 그래서 ‘원주씨 희숙씨가 같이 가자는데요~?’ 라고 말하니 그제서야 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기다린다.
(사진 설명: 활동지원사 선생님들과 시장다녀오는길)
내심 서운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장에 도착해 평소에 두 분이 다니던 반찬가게를 구경하는데 사장님이 알아보고 오늘은 무엇을 사러왔냐고 물으신다. 알고보니 두 분은 이미 시장 반찬가게 단골이었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 떡가게를 지나고 있는데 원주님이 ‘나 떡 좋아해’ 하면, 희숙님도 ‘나도 떡 좋아’ 라고 한다. 과일가게에 가서도 원주님이 먼저 오렌지를 고르니 희숙님도 오렌지를 한봉지 집어 들고 ‘나 이거’ 나에게 내밀며 본인이 고른 것을 꼭 사야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오늘은 오렌지를 사기로 했다.
외출전 지도로 위치확인
원주님이 먼저 골랐고 같은 오렌지이며 나중에 나누어 먹을 거라고 설명을 하며 원주언니가 고른 걸로 하자고 하니 오렌지를 꼭 잡고 본인이 고른 것을 사야한단다. 난감했다. 이를 지켜본 과일가게 사장님이 ‘언니가 양보해요’ 하신다. 그건... 쫌 아닌데.... 하지만 혹시... 원주님 얼굴을 바라보는데 대뜸 ‘네~’ 라고 대답한다. 찜찜함이 남았지만 이쯤에서 타협(?)하고 과일을 살 수 있는 것이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 원주님에게 ‘고마워요~’ 하니 또 ‘네~’ 한다. 그렇게 두 분과 함께한 첫 시장나들이는 우려했던(처음 지원이라 속으로 무지 긴장함) 사고 없이 서로 손잡고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요~♪♪’를 부르며 주택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센터에서 일한 지 한달쯤 되었을까..... 처음 주택을 방문했을 때 원주님이 먼저 웃으며 인사를 해 주었고 처음보는 내가 신기한지 왔다갔다 하며 나를 관찰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찡끗 웃어보였다. 거실에서 퍼즐을 하고 있었던 희숙씨는 한번씩 힐끔힐끔 처다보는 것으로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원주님은 내가 주택에 방문하면 바로 나와 웃으며 반갑게 맞아주지만 희숙씨는 방에서 나오지 않아 얼굴이라도 보고 오려는(코로나 방역 지침 때문에 요즘은 문앞에서 인사만 하고 온다) 나와 밀당을 자주한다. 성격도 좋아하는 것도 참 많이 다른 원주님과 희숙님은 센터판에서 지원하는 자립생활주택의 입주자이다.
요즘 원주님과 희숙님은 주택에서 미리 마을지도를 보고 주택의 위치와 만나는 장소를 익히고, 혼자 나와(지원사 선생님이 뒤에서 보이지 않게 밀착 지원) 동네에 있는 시장이나 편의점에 가서 원하는 물품을 사가지고 중간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활동지원사 선생님과 만나 주택으로 돌아오는 연습을 하고 있다. 시장에 들러 반찬도 사오고 산책도 하면서 동네 카페에도 들러 좋아하는 달달한 커피도 먹으며 쉬엄쉬엄 골목길을 익히기도 하고, 시각자료를 통해 화폐의 모양이나 단위들을 공부하기도 한다. 특히 희숙님은 한글을 쓰고 읽기에도 도전하고 있다. 얼마전에는 함께 생활하고 있는 지원사 선생님에게 자신의 언어로 편지를 써 주어 모두를 감동시키고 놀라게 했다.
원주님과 희숙님이 센터판과 인연이 되어 자립생활주택에서 생활하게 된 게 2020년 7월, 내가 센터판에 들어와 활동가가 된 게 2021년 2월. 나보다 선배다. 하지만 올해부터 두 분이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 취업하여 센터판에서 급여를 받으며 일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우린 같은 해에 입사한 동기이기도 하다. 서로가 다른 인생의 서사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센터판에서 밥벌이를 하는 우리는 같은 노동자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두 분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손가락이 좀 오글거린다. 다른 호칭은 없을까.... ‘언니’는 안될까....? 고민중이다.
원주님과 희숙님은 매일매일 하루 일정을 설명해 주시며 정성을 다하는 활동지원사 선생님들과 함께 새로운 것을 연습하고 익히고 도전하며 최선을 다해 생활하고 있다. 또한 익숙한 지역에서 생활하면서 점차 발을 넓혀가고 있고, 미래를 위해 저축도 하고 남들처럼 생활비도 스스로 준비할 수 있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서 일하며 독립을 꿈꾸고 있다.
‘동정의 땅에서 권리의 들판으로!’ 이 말이 참 좋다. 멋지다. 희숙님과 원주님도 장애인이기 때문에 관리받고 동정받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권리를 찾아 자립주택에서 건강하게 생활하다 완전한 독립의 꿈을 이루길....
그나저나 원주님이 제일 좋아하는 쌀국수를 먹기로 약속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언제 만날 수 있을까.... 보고싶다.
희숙씨가 활동지원사 선생님에게 쓴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