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여름 127호 - [고병권의 비마이너] 우리는 ‘20년 전쟁’ 중이다 / 고병권
고병권의 비마이너
우리는 ‘20년 전쟁’ 중이다
고병권
맑스, 니체, 스피노자 등의 철학,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책을 써왔으며,
인간학을 둘러싼 전투의 최전선인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자리를 잡고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국가의 한계, 자본의 한계, 인간의 한계에 대한 공부를 오랫동안 할 생각이다.
올해는 장애인이동권투쟁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물론 이동에 대한 장애인들의 갈망과 분투가 20년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장애인이동권투쟁의 역사는 아마 장애인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을 것이다. 다만 집단적이고 대중적인 투쟁이 20년 전에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장애인이동권투쟁 20주년은 여느 기념과는 다르다. 이를테면 ‘4-19 60주년’, ‘5-18 40주년’, ‘6월항쟁 30주년’ 등과 다르다. 이동권투쟁의 20년은 기념비를 세우고 기념식을 열어온 시간이 아니다. 애초에 이 20년은 아직 기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념이란 지난 일을 기리는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이동권투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2001년이 20년째 이어지고 있다. 올해가 이동권 투쟁 ‘20주년’이라고 말하기보다, 올해로 이동권 항쟁이 20년을 경과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사실에 가깝다. 역사에 ‘30년 전쟁’, ‘백년 전쟁’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20년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년의 행사들이 모두 그랬다. 그것들은 겉보기에만 기념식이고 추모식이고 전시회였다. 실제로는 전투의 일환이거나, 전투 중 희생당한 동료에 대한 묵념이거나, 전사들의 짧은 휴식이거나, 사기 진작을 위해 내지르는 함성이다. 지금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이동권투쟁 20주년 사진전’도 그렇다. 이 ‘사진전’이라는 단어 들어 있는 ‘전’이라는 글자는 일반적 용례와 달리 ‘전투’의 의미가 담겨 있다. 즉 이 ‘사진전’은 ‘전시회’라기보다 ‘선전전’이다.
2001년 시작된 항쟁이 여태 끝나지 않은 것은 우리 사회가 지난 20년 동안 별로 이동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여전히 우리는 장애인들을 봉쇄하고 있는, 장애인 차별 체제의 ‘장기지속’ 아래서 살아가고 있다. 김순석 열사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 ‘장기지속’이라는 말을 처음 떠올렸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의 개념이다. 그는 사건의 지속 시간과 구조의 지속 시간을 구분했다. 장기지속이란 구조가 지속되는 시간이다. 온갖 사건들이 명멸하는 속에서도 오랫동안 관철되는 구조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김순석 열사가 자결한 지 40년이 지났음에도 당시의 좌절과 분노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동일한 장기지속의 시간을 살기 때문이다. ‘1980년의 서울’은 ‘2021년의 서울’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동안 여러 사건들이 있었지만 기본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장애 차별의 사회적 구조, 더 좁게는 장애인의 이동과 접근을 차단하는 봉쇄 구조가 존속하고 있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에 기시감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40년 전 김순석은 횡단보도를 이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출소에 끌려갔다. 횡단보도를 이용할 수 없게 만든 거리의 턱은 문제 삼지 않고 그가 차도로 건넜다는 사실만을 문제 삼았다. 이것이 그를 격분시켰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 횡단보도를 이용할 수 없게 만든 거리의 턱이 아니라 이 턱 때문에 횡단보도를 이용할 수 없었던 장애인에게 죄를 물은 것. 김순석은 여기서 장애를 범죄화하고 장애인을 가두는 거대한 감옥을 보았을 것이다. 그는 마치 식민지 백성처럼 서울시장에게 “우리가 살 땅은 어디입니까”라고 묻고는 자결했다.
40년 후의 서울은 어떤가. 오늘의 장애활동가들도 경찰서에 끌려가고 벌금 처분을 받는다. 버스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물론 처분은 김순석이 받았던 것만큼이나 가볍다. 그러나 또한 김순석이 받았던 것만큼이나 심각하다. 장애인을 이동할 수 없게 만든 버스가 아니라 버스를 이동할 수 없게 만든 장애인이 유죄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김순석이 장애인이 되어 공장에서 쫓겨나던 해, 경주시 5급 행정직에 합격한 정진석씨와 영남대에 합격했던 도효희 양은 장애를 이유로 합격 취소 통보를 받았다. 김순석이 유치장에서 나와 자결했던 해, 최동락 군은 장애를 이유로 동국대로부터 입학 취소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40년 후, 한 시각장애인 학생이 진주교대로부터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합격에 충분한 점수를 받았지만 대학이 성작을 조작해버렸다. 입학관리를 맡은 팀장은 입학사정관에게 장애인이 교사가 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장애인은 날려버려야 한다”고 했다. 40년 후인 오늘에도 우리는 여전히 장애인을 용납할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전쟁이 오래되면 전쟁 중임을 곧잘 잊는다. 그동안 획득한 몇 개의 고지를 가리키며 ‘세상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할 때도 있다. 그러다가 지금이 전시 상황임을 일깨우는 장면들과 마주하게 된다. 20년 전의 활동가가 20년 전처럼 버스를 세우고 사슬로 몸을 묶는 것을 볼 때, 그리고 이것이 기념식들에서 으레 재현되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실제 상황임을 깨달을 때 그렇다. 또 대학이 20년 전, 4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장애인 학생을 ‘날려버리는’ 일을 볼 때 그렇다. 지금 우리는 20년 전쟁 중에 있다. 투쟁이 없던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