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봄 126호 - 세종시 누리콜투쟁에서 이동권투쟁으로 / 강태훈
세종시 누리콜투쟁에서
이동권투쟁으로
강태훈 |
안녕하세요. 저는 세종시 특별교통수단 "누리콜" 노동조합 지회장 강태훈입니다. 2021년은 저에게 뜻깊은 해입니다. 누리콜이 10년 만에 공공운영 되었고,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2021년 4월 28일 창립총회를 거쳐 15번째 지부로 탄생하는 해입니다. 앞으로 세종장차연의 공동대표로 활동하게 되었는데요. 그 첫 시작을 <노들바람>과 함께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장애인 비하 그리고 노동조합 설립
남반구에 봄이 오는 시기, 뜨거운 햇살이 한풀 꺾이고 북반구에는 가을이 시작되죠. 바람은 시원해지고 햇살은 따듯해지고 하늘은 높고 말도 살찌는 9월의 가을이 시작되기도 전, 세종누리콜에서 근무하는 5명의 장애인 운전원에게 찾아온 해고 통보는 뜨거운 여름을 참고 지나온 보람 없이 뜨거운 겨울을 예고했습니다.
세종 건설교통국 교통과 담당 공무원은 2019년 9월 5일 누리콜 운전원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고 세종교통공사 이관을 통보하며 ‘장애인은 운전직에 접합하지 않다.’ ‘장애인은 채용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는 말로 장애인을 비하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정부 지침에 따라 형식적인 종사자 의견 청취가 목적이었고 반영할지 말지 여부는 지자체가 알아서 하면 되는 전형적인 절차였습니다. 결국 종사자 전원을 판갈이 하려는 계획이고 그중 장애인을 제일 골칫거리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장애인 운전원을 중심으로 2019년 9월 24일 공공운수노조 산별노조에 가입하고 교통약자이동지원차량세종지회(이하 누리콜지회)를 설립했습니다. 당시 종사자는 총 26명(팀장 1명, 관제 2명, 운전원 23명)이었습니다. 노조를 결성한 후 교섭노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고 과반수인 14명의 조합원이 필요했습니다. 저의 관점에서 세종지체장애인협회(이하 지장협)는 수구 보수 단체이고 장애인을 이용해 공공성을 사유화하는 대표적인 적폐 사이비 단체입니다. 노조를 설립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거품 물고 달려들 것이 자명했기 때문에 간부들이 운전원을 한 명씩 비밀리에 접촉하여 설득했고 15명이 조합에 가입하게 되었죠. 지장협에 노동조합 결성을 통보하자마자 협회장으로부터 협박 전화가 오고 사측은 측근을 동원해 조합원을 회유했습니다. 다행히 공고기간 동안은 탈퇴자가 없었고 법적 지위를 인정받는 교섭노조를 완성했습니다.
사측 편에서 조합 탈퇴를 진두지휘하는 측근이 중도장애인이었고 최후까지 누리콜의 공공운영을 방해했습니다. 안타깝지만 그와 동조해 조합을 탈퇴하는 장애인도 있었고요…. 장애인이 장애인을 차별하는 장들의 싸움은 지장협에서는 새롭지 않고 그들이 제일 잘하는 것이지만 차별에 중독된 당사자가 자신이 입는 피해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이 조금 슬프게 다가왔습니다.
그들에게는 누군가 자신을 대신해 권리를 주장하고 요구하는 것이 처음 보는 생소한 것이고 믿기지도 않았을 거예요. 왜냐하면, 세종시 장애인 단체들은 장애인의 권익과 권리를 위해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고 장애인을 내세워 시에서 받아오는 예산이나 수익사업의 이권을 지역 장애인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고 차별로 줄 세우는 방식으로 권리를 통제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 했습니다. 사이비죠...
여기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의 권리를 요구하는 행동이 불편하고 그런 행동은 시혜와 동정을 베풀어준 사람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88년도도 아닌데….)
어설픈 투쟁, 작은 승리
공공운수노조에서 만들어준 피켓 한 장을 들고 세종시청 앞으로 갔습니다.
당시 요구는 1. 장애인을 비하한 공무원의 사과, 1. 재발방지대책 마련, 1.누리콜 공공성 강화, 1. 종사자의 100% 고용승계였습니다.
처음에는 말이 잘 나오지 않았지만 세종시청을 향해 생목으로 터져라 소리치고 구호도 외쳤습니다. 그 모습이 딱해 보였는지 정의당에서 앰프를 빌려줬고 조합원 한 분이 작은 북도 빌려와 두드리면서 조금씩 형식(?)을 갖추고 선전물도 만들고 서명도 받으면서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사측의 방해도 본격화되었지만, 투쟁 현장에 나가면 마음이 놓였습니다. 얼마 후에는 아무것도 않고 있으면 불안하고 매일 아침 시청으로 출근하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는 노동조합 15인의 힘으로 다 이룰 것 같았죠...^^
그렇게 일인시위도 하고 피케팅도 하다보니 시위에 참여하는 조합원이 몇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위에 참여하는 조합원은 1~2명, 오는 사람만 오고 지쳐갈 즈음 언론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정의당이 성명을 내고 공공운수노조가 시와 접촉하면서 실무자와 협상이 시작되었죠.
하루가 다르게 말이 바뀌고 지루한 과정이었지만 기자회견, 피케팅을 이어갔습니다. 출투 19일차에 다음과 같은 약속을 받아내고 시위를 중단했습니다. 1. 비하 발언을 한 당사자가 비하 발언을 한 장소에서 공개 사과, 1. 서비스개선 및 장애인 인권 교육 강화, 1. 지체장애인협회가 1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한 후 21년 교통공사로 이관, 1. 노동자 고용승계를 협약서에 명문화, 1. 2021년 교통공사 이관을 위해 노동조합과 협상한다. 그렇게 2019년 투쟁은 작은 승리를 쟁취하고 일단락되었습니다.
지장협의 반격
2019년 작은 승리로 조합원은 서로 격려하며 기뻐했습니다. 그 기쁨도 잠시, 비장애인에 의해 장애인 조합원이 지체장애인협회 사무실에서 폭행을 당하고 늦은 입사자를 대상으로 갑질을 벌이며 지장협과 뜻을 같이하는 사측 동료들의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2020년 투쟁의 밑그림을 그리고 요구사항을 좀 더 명확히하여 2021년 누리콜의 공공운영, 서비스개선, 차량증차 요구안을 만들고 동력을 모을 즈음, 코로나 정국도 시작되었죠...
교통공사 이관을 위한 협상도 무기한 연기되고 지장협측의 집요한 탄압이 들어오자 조합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조합원은 ‘우리 고용승계만 요구하면 될 것을 왜 누리콜을 공공운영하라고 하나’ 하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조합 간부들이 낮과 밤으로 설득하고 탈퇴한 조합원을 다독이면서 버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조합원은 한자리수로 줄었습니다. 동시에 지장협측은 탈퇴한 조합원을 끌어들이며 비노조원들을 세력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조합은 쪼그라들고 공공운영에 반대하는 비조합원을 중심으로 갈등이 시작되었죠.
판을 키우자
조합의 힘이 떨어지고 투쟁할 동력을 찾지 못하며 방황하던 시기 조합을 위해 밤낮으로 조언을 아끼지 않던 누리콜지회 법률자문위원의 제안으로 누리콜 비상대책위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세종지역 8개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충남세종지역본부를 축으로 대책위원회를 만들기로 하고 누리콜 이용자 모임인 ‘누리콜 이용자연대’를 발족시켰습니다. 여기에 누리콜 가족대책위원회와 누리콜지회를 포함한 12개 단체의 연합으로 ‘세종시 교통약자 이동권 보장 및 공공성 강화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구성하고 2020년 7월 23일 출범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누리콜 공공화, 서비스개선을 위한 공대위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공대위가 출범한 이후 실무자 회의 3차례, 건설교통국 국장 2차례 면담하는 성과가 있었지만 지장협이 소속된 세종장애인연합회가 토호세력과 견고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었고 협상은 진전 없이 자리를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축적한 힘은 컸습니다. 공대위도 조금씩 동력이 소진되고 있었습니다.
세종시장이 면담을 거부하고 더 이상의 대화도 의미 없다는 판단을 했고 2020년 8월 6일 출근 피케팅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타오르지 않는 불씨를 지키기 위해...
출근 피케팅을 시작하고 30일째 되던 날 시장실로 무작정 쳐들어갔습니다.
누리콜 운전자 2명이 발달장애인여성을 성추행한 사건을 지장협과 세종시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시장을 만나지 못했지만 경제부시장을 만날 수 있었고 교통과 과장이 긴급 호출되서 면담이 이뤄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경제부시장은 책임지고 성범죄사건을 조사하겠다는 약속이 있었지만 결국 성범죄를 저지른 운전원의 사직서를 처리해주었고, 다른 한 명은 지금도 누리콜을 운전하고 있는 황당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죠...
전장연과의 만남 그리고 이동권 투쟁
표류하는 배가 전장연을 만나던 날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2020년 9월 4일 세종시 국토부를 방문 중이던 박경석 대표를 만나게 되었고 세종시누리콜 투쟁은 이동권 투쟁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꺼져가던 작은 불씨는 커다란 횃불의 마중물이 되었고, 서 있는 자리가 보이는 것도 다르게 한다는 말처럼 전장연을 만나고 부터 이동권 투쟁의 한가운데로 빠르게 이동했습니다.
박경석 대표는 세종시 상황을 이미 이해하고 있었고 해법도 이야기 했습니다. 해법은 단순했어요... 그런데 그게 답이었죠.
“투쟁하면 되죠. 같이 투쟁합시다.”
이후 공대위의 요구안을 8가지로 세분화하고 공공운영 방안 자료집을 만들어 요구사항을 명확히 했습니다. 그리고 박경석 대표는 세종시와 단 두 차례 협상을 통해 7가지 요구안을 단박에 타결시켰습니다. 2달여 투쟁하면서 엄두도 내지 못했던 성과를 3주 만에 해결하는 것을 보면서 많이 놀라기도 했습니다.
남은 한 가지는 누리콜의 공공운영, 교통공사 이관만 남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세종시는 공공운영의 걸림돌로 누리콜 종사자의 고용승계와 교통공사가 누리콜 운영을 거부한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세종시와 운영책임이 있는 지장협이 모든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이죠. 공대위가 그 안을 받지 않을 것을 알고 교통공사가 누리콜 운영을 거부하는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공공운영이 안 되는 이유로 언론플레이를 했습니다.
전장연과 함께 건설교통국을 점거하고 민간위탁 동의안 의회 처리를 막아내고, 세종시청을 점거하고 시장을 두 차례 만나고, 천막을 치고, 투쟁선포 기자회견과 전국대회를 7차례에 걸쳐 치르는 동안 참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노동조합의 시각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투쟁 방식과 탈시설권리, 최중증장애인 노동권, 이동권, 건강권, 자립생활권리, 발달장애인권리, 평생교육권 등의 의제를 선점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을 보면서 장애해방운동의 방향성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장애해방운동은 딱딱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놀고 즐기고 어울리는 속에서 나의 장애를 해방시키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오늘로 출퇴근 선전전 108일차, 천막농성 99일차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동지들이 투쟁의 불모지였던 세종시 농성장을 방문하고 연대하며 이 투쟁을 이끌어 주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21.3.22) 누리콜 수탁기관이 세종도시교통공사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공대위가 요구한 8대 요구가 대부분 수용된 날이기도 하지만 아직은 자축보다는 지역의 장애인들과 연대하고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래서 자축은 잠시 미루고 의미 있는 성과를 쟁취한 후 다시 만나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