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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 언니의 자립체험기

(그리고 박임당의 활동보조 분투기)

 

 

 

박임당 |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노들의 1년 살이를 알 듯 말 듯 한 사람.


 

박임당1.jpg

 

생존, 그것이 단연코 문제로다

 

지난 2016620일부터 45일 간 노들야학 정수연 학생의 자립생활 체험이 진행되었다. 사실 수연 언니의 자립 체험을 계획하기 전에는 나에게도 많은 꿈이 있었다. 수연언니와도 사전에 많은 이야기를 하고, 또 부모님과도 여러 번 이야기를 하고, 주변의 자립 사례들을 듣고 싶기도 했다. 정말 찰진 시간을 짜보리라 지윤(수연 언니의 또 다른 활보이자 노들야학의 교사)과 나는 그렇게 다짐했었다. 그러나 시간에 쫓겨 자립 체험 날은 다가오고 있었고, 여유를 가지고 준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지윤과 나는 부랴부랴 회의를 꾸리고, 지윤이가 어머님을 만나 언니가 어떻게 45일간 죽지 않고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받는 선에서 아주 아주 최소한의 준비만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변명을 하자면 우리는 주거를 함께 하며 활동보조를 해본 적은 없는 비숙련 활동보조였고, 또 따로 낼만한 시간의 부재로 인해 수연 언니의 욕구를 제대로 파악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잘못이지만, 일단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언니가 4월부터 기다려온 자립 체험을 미룰 수는 없었고,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난 체험이라는 건 영원히 시작될 수 없는 것 일거야라고 생각하며 애써 스스로를 자위했다.

언니는 언니대로 합법적으로 집을 나온 것 자체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실은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붕붕 떠 있는 상태인 것 같았다.ㅎㅎ (수연 언니는 아니라고 부정함.) 우선 야학에서 낮 수업과 저녁 수업 듣는 일정은 고정시켜놓고, 그 외의 밤 활동에 대해 주로 계획을 세워야했다. 여가 시간을 잘 보내는 것도 그렇지만, 사실 씻는 것이 가장 큰일이었다. 나와 지윤은 언니가 샤워를 하기 전까지 엄청나게 불안해 하다가 샤워를 마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가녀린 몸집의 언니였지만, 욕실이 방과 멀어서 씻을 때 두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학의 여성 상근자들이 돌아가며 방문해 함께 해주었다. 이에 대해 언니의 의사를 확인해보았는데, 수연 언니는 진짜 쿨했다. ‘볼 테면 보라지~’ 자유의 기운을 만끽해서였는지(나중에 물어보니 안 부끄럽고 좋았다고 함), 어쨌든 그런 점이 멋있었다.

감동적인 몇 장면도 있었다. 수연 언니를 친동생처럼 아끼는 상연이 형은 체험 첫날 언니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그러고는 나중에 따로 언니를 불러서는,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살라며 애틋한 맘을 전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통닭까지 사들려 보냈다.

어머니는 언니가 가족 아닌 누군가와 외출할 일이 생기면 자동으로 전화기에 손이 가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머니는 체험 첫날 전화를 꾹꾹 참으시고는 다음날 야학에 멀쩡하게 나온 언니를 보고 티는 안냈지만 무척이나 안도했다고 전했다(비마이너 최한별 기자의 기사 참조). 아버님은 마침 신경 계통 수술을 하시는 바람에 언니를 일주일이나 못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영상 통화를 통해 언니 얼굴을 보자마자 폭풍 눈물을 흘리셨다. 지켜보는 우리도 눈물바다. 그래도 씩씩한 정수연, 진짜 멋있었다.

 

 

언니만 살지 말고, 나도 같이 살자

 

그러나 어찌 좋았던 것만 있으랴. 이 지면을 빌어 이용자 정수연의 행태를 낱낱이 고발하겠다. 음하하. 우선 스케줄 조정 건. 앞에서 말했듯 언니가 샤워를 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필요했고, 그래서 샤워를 아침에 할 것인지 저녁에 할 것인지 정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정해서 상근자들과 스케줄을 다 맞추어 놨는데, 돌연 술을 자시겠다고 한다. , 이럴 수가. 다시 연락을 돌려서 시간 약속을 잡거나 취소하거나, 언니와 협상을 한다. , 그 다음날도 언니는 술 약속이 잡혔다. 또 상근자들을 만나서 시간을 조정한다. 나는 미숙한 활동보조인, 하루 종일 바짝 긴장하고 있어서 너무 피곤하다. 술자리에 있기 힘들다. 그런데 나는 활동보조인. 술자리에 간다. 아 피곤해. 왜 계획을 자꾸만 바꾸는 것인가 나의 이용자여.

개인적으로도 고민이 많았다. 나에게는 활동보조인이라는 이데아가 있었다. ‘활보는 전지전능해야 한다!’ 나는 정수연을 하나도 다치지 않게 할 거야. 나는 정수연과 한 번도 갈등을 겪지 않을 거야. 나는 신체 활동에 능하니까 수연을 잘 보필할 수 있어. 나는 정수연의 인권을 존중할거야. 그러나 인간은 육체의 동물이지만 정신의 동물이기도. 저런 생각을 갖고 활동보조를 하다 보니 내 인권은, 내 멘탈은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떤 활동보조인이 되어야 할까? 이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평상시에도 자주 생각한다. 활동보조인 혹은 조력자로서 나는 얼마만큼의 개입을 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정말 그 사람의 자립에 힘이 되는가? 오히려 나의 능숙함이 그 사람의 자립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고민들이 증폭되는 기간이었다.

 

 

정수연의 그 다음은?

 

준비해보자. 아니 준비해 보겠다. 그 과정에서 질문들은 조금씩이라도 해결되지 않을까? 왜냐하면 자립을 준비하는 일은 적절한 활동보조인을 구하고 여러 사람과의 소통 과정과 몇 가지 절차가 필요한 일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립인으로서의 정수연, 그리고 활동보조인으로서의 박임당의 정체성과 성장을 찾아나가는 길일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도적 토대이다. 24시간 활동보조서비스와 생활비를 위해 필요한 수급권 혹은 노동의 문제, 이 모든 지점에 싸움터가 포진해 있다는 것이다. 아찔하다. (부디 다음번엔 정수연 자립기로 만나 뵐 수 있기를!)

 

[정수연 자립체험 본인 막간 인터뷰]

 

임당: 술 매일 마셔보니 어때?

수연: 힘들다.

 

임당: 치킨도 매일 먹었잖아, 어땠어?

수연: 좋았다.

 

임당: 10분 만에 고가의 옷을 휙 골라서 샀잖아, 좋았어?

수연: !

임당: 근데, 스님 옷 같다고 엄청 놀림 받았잖아.ㅋㅋ

수연: ㅋㅋ

 

임당: 언니가 하루 스케줄을 마음대로 정해보는 건 어땠어? 그리고 초반에 정했다가 중간 중간 계속 바꾸기도 했었잖아.

수연: 좋아.

임당: 근데 난 엄청 피곤했다. 언니가 일정 바꾸면 사람들 연락 돌려서 다 조율하고근데 사람 마음은 원래 다 그런 거잖아? 이러기로 했다가 저러기도 하고. 그건 참 당연한건데.

 

임당: 언니가 야한 영화 꼭 보고 싶다고, 그래서 같이 아가씨봤잖아. (여러분, 제가 쐈습니다. 물론 할인은 정수연 찬스.)

수연: 너무 안 야했다.

 

임당: 언니가 나 순이 여사(수연 언니 어머니)보다 밥 잘한다고 그랬지?

수연: !

임당: 어머니가 그 뒤로 자꾸 나한테 급식 메뉴 상담하자 그런다.

 

임당: 평원재 사람들이랑 몇 번 어울렸잖아. 어때? 같이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아?

수연: ! 좋아.

 

임당: 활동보조인이랑 같이 사는 건 어땠어? 앞으로 자립하게 되면 가족이 아니라 활동보조인이랑 사는 거잖아?

수연: 살 수 있어.

 

박임당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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