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가을․겨울 109호 - [뽀글뽀글 활보상담소] 관계성으로 비추어 본 장애인활동보조의 빈틈
[뽀글뽀글 활보상담소]
관계성으로 비추어 본 장애인활동보조의 빈틈
장은희 | 장애여성공감 활동지원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제 활동 만 3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자연을 좋아하고, 싱그런 자연의 빛깔을 쏙 빼닮은 초록병 이슬도 좋아하는 탓에 느릿느릿 운동을 배워가는 중입니다.
1. 들어가며
장애여성공감은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에 공감하면서도 제도를 경험하는 장애인과 주변인들의 일상에 주목하며, 왜 이런 이야기들은 논의 대상에 포함되기 어려운지 질문해왔다.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관계적 특성 및 노동 특성은 현장의 갈등에 비해 공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많았고, 쉽게 논의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욕구와 권리가 충돌하며 불평등한 계약 관계에 놓인 모습만이 주로 부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장애인활동지원 현장연구와 인권의제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진행된 전수조사 설문과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의 결과를 보면, 활동보조인과 이용자 사이의 간극은 한편으론 넓게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동반자 관계로서 비슷한 차별적인 상황에 놓여 있기도 했다. 그리고 활동보조인의 노동권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장애인의 권리는 확보되기 어려우며, 활동보조인과 이용자의 활동보조 과정 중 일어나는 갈등에 대하여 개인적 관계로만 바라볼 경우 실제 활동보조제도의 취약함이나 보완점 등을 살피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제도화 10년을 맞아 장애인활동지원제도와 장애인운동을 점검하고, 재정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2. 누군가의 ‘일상을 보조’하는 업무란?
우선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장애인활동지원은 “신체적·정신적 장애등의 사유로 혼자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중증장애인에게 활동지원 급여를 제공함으로써 자립생활과 사회참여를 지원하고 그 가족의 부담을 줄임으로써 장애인의 삶의 질 증진을 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제1장 1조). 이용자 및 활동보조인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활동보조가 아주 사적인 부분인 신변보조부터 일상생활을 위한 가사보조 및 사회활동 참여를 위한 의사소통, 이동보조, 업무보조 등을 실제로 지원하는 업무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장애인활동지원 사업의 기준에 따라 서비스의 대상자는 장애등급 1~3급에 해당되는 만 6세~65세의 장애인들이다. 이 사업의 목적에 따라 활동보조는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보조하여 사회참여를 지원해야 하기 때문에 이용자의 장애 특성과 개별 환경 및 사회적 위치에 따라 보조하는 내용과 근무하는 장소나 상황이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장애인활동보조는 다른 어떤 직업보다 업무 내용의 모호함과 광범위함으로 인해 갈등의 요지가 많지만 그 원인을 규정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생활 습관의 차이가 갈등의 요소가 되는 직업군이 얼마나 될까? 습관이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정해진 틀, 옳고 그름 등의 기준을 적용하기 어려운 요소이다. 입장에 따라 갈등을 빚는 원인과 상황에 대한 해석이 다르고, 해결 방안이 다를 수밖에 없기에, 이러한 다름 자체가 활동보조 현장의 복잡성을 드러내 주는 의미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용자가 생각하는 활동보조인과의 주요 갈등 원인]
3. 노동특성으로 인해 형성되는 특별한 관계
‘몸’을 보조하거나 보조받는 관계는 존중감과는 별개로 물리적․정서적으로 밀접한 상태에 놓여진다. 활동보조서비스 이용자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보조인이 서로 경험하게 되는 ‘몸’의 보조는 그저 공적 서비스 체계 안에서 아무런 정서적 교류 없이 이뤄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몸’에 대한 보조를 주고받는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이 그것을 편하게 혹은 덜 불편하게 수행하기 위해 정서적으로 사적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은 가족보다 더 친밀하게 보이기도 하며, 실제 그런 관계를 맺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불안정한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권력이나 주도권의 이동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데, 그 때 ‘몸’에 대한 보조를 받는 이용자는 상대적으로 더 불평등한 위치에 놓이기 쉽다. 더불어 일상적으로 ‘몸’에 대한 보조를 받아야 하는 이용자의 경험은 말할 수 없는 수치심과 연관이 되어 관계의 역동성에 힘을 더하기도 한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생활이 없는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수치스러운 생리적인 욕구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 우리는 기본적인 진실, 즉 우리 몸 중 어느 한 구석도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경우만 빼고) 사적인 부분이 없다는 것을 소리 내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다. 이런 점이 사생활이 있는 몸을 가진 당신들과 우리를 구분하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이것은 너무나 의미심장한 차이다. 우리가 수치심 때문에 침묵한다면 그것은 계속 의미심장한 차이로 남아 있을 것이다. (…) 우리가 생리적 욕구에 대해 너무도 수치스러워하며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다면 어떻게 (활동보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수전 웬델, 『거부당한 몸』, 김은정 외 옮김, 그린비, 2013, 276쪽.)
서비스 이용자이지만 ‘몸’에 대한 보조를 받는 상황에서는 이용자로서의 당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무언가 어렵고 불편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밀접한 상태에서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용자가 가족이나 사회적 관계 안에서 낮은 위치에 놓여 있을 경우, 활동보조인 역시 가족이나 주변인들로부터 차별과 배제를 같이 경험한다고 한다. 그리고 활동보조인은 본인의 자발적인 행동으로 인해 이용자에게 이로움을 제공했을 때 성취감과 삶의 활력을 얻는다고 한다. 이용자 또한 활동보조인의 가정사나 개인적 문제 등을 함께 고민하고 공감하며, 활동보조인에게 정서적 혹은 그 이상의 지지를 하기도 한다. 이처럼 활동보조를 주고받는 관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 관계이자 상호 의존하는 관계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관계의 특성과 넓은 스펙트럼에 대해 더 많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4. 제도로 인해 구성되는 현장
① 서로 눈치 보는 관계일 수밖에 없는 취약한 조건들
활동보조서비스가 놓여있는 취약한 조건은 교통비, 식사비, 개인 공간, 휴식 시간, 업무 보조 등의 일상적 문제에서 그대로 표면화된다. 활동보조인의 교통비나 식사비는 시급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활동보조인이 알아서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라고는 하지만, 현장에서는 과연 그 원칙이 얼마나 유효한가. 눈치를 보다가 결국 관계 유지를 위해 이용자가 부담하게 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그리고 이용자가 인정조사로 받은 시간은 최소한의 생활만 유지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활동보조인은 휴식 시간을 따로 마련하기가 어렵다. 이 또한 당사자들이 눈치를 보며 알아서 해야 하는 부분으로 치부된다. 휴식 시간을 확보할 수 없는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이기도 한데, 법을 준수할 수 없도록 하는 상황 자체가 부당하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렇듯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자잘하지만 필요한 요소들은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이 서로 관계 유지를 위해 눈치를 보며 어느 한쪽이 알아서 감내해줘야 하는 것이 되고 만다.
복잡 미묘한 ‘관계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활동보조의 현장이 ‘사적으로 좋은 관계’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음을 직시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을 공적 관계로 설정하고자 하는 것은, 제도의 공백들로 인해 사적 영역에서 해결되는 것이 많다는 문제의식이 있었고, 이를 공적 관계로 드러냄으로써 문제 해결을 하고자 함이었다. 이런 식의 문제들을 어쩔 수 없는 사적인 관계로 이야기 할 경우 일상적인 문제들은 개인의 책임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② 장애인식개선 교육 및 자기역량강화 교육 체계의 부재
보건복지부의 관리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활동보조인 양성과정은 양적 성장만 이뤘을 뿐 내실 있는 교육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는, 양쪽 집단 모두 장애인활동보조가 전문적인 기술 외에도 인권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이 필요하고 요구되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현재 활동보조인이 되기 위해 이수하는 40시간 기본교육만으로 이러한 역량을 충분히 갖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를 이용하는 주체로서의 이용자에 대한 교육도 마찬가지로 절실하다. 이용자는 본인의 권리와 책임에 대한 교육을, 그리고 자기역량강화를 위한 교육을 받음으로써 제도를 활용하여 안정적으로 독립생활을 유지하고, 제도의 발전을 위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집단적 교육이 어려운 재가 장애인들과 장애인에게 주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가족 등 주변인들을 위한 정부 차원의 교육 시스템은 현재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③ 활동보조 현장에서 만나는 인권침해사례들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인한 장애를 지닌 이용자들의 입원 계속 기간 제한에 따른 활동보조서비스 중단, 그리고 메르스 사태 시 활동보조인 없이는 일상생활 유지가 안 되는 이용자에게 자가 격리라는 무책임한 방침을 내린 것은 인권침해의 한 예이다. 또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기 어려운 활보수가 책정으로, 중개기관을 위법적 상황에 처하게 하고 동시에 활동보조인의 노동권을 열악함 속에 방치하고 있다. 그리고 부정수급 관리라는 명목 하에 이뤄지는 이용자, 활동보조인, 중개기관에 대한 무분별한 개인정보 조사는 정부기관의 심각한 권력 남용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제도의 빈틈에서 생겨난 문제점들에 대한 개선 방안 및 예방책들을 논의하기 위한 책임 있는 정부기관과의 소통 채널이 불분명하고, 이를 요구하고 있음에도 수용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5. 코디네이터: 장애인활동보조의 빈틈을 운동과 연결하는 통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코디네이터는 누구보다 장애인의 삶을 가깝게 만난다.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을 위한 상담, 연계, 모니터링을 진행하면서 접촉면이 가장 넓기도 하다. 또한 업무적 특성으로 인해 장애인의 일상 속에서 수시로 벌어지는 차별과 인권침해 상황을 접하게 되지만, 코디네이터들이 민감성을 갖고 활동보조 현장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권 의제들에 집중하기에는 어려운 업무구조라 할 수 있다.
장애인활동보조가 제도된 후 정기 평가와 과도한 부정수급 관리 체계 도입 등은 코디네이터의 업무의 기능화 및 획일화를 가속시켜왔다. 코디네이터는 정기 평가와 수시로 행해지는 점검에 대비하기 위해 당장 주어진 행정 및 사무 업무 외에 활동보조 현장에 관심을 쏟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편으로는 수익률의 감소와 수익에 비해 개입하고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아 복지관이나 자립생활센터가 중개기관을 반납하는 사례도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 현장을 중요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인가? 제도화 투쟁 자체도 중요하지만 제도화 이후 장애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장애인의 삶을 제도가 구획하거나 통제하는 것, 그것을 지원하는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을 우리는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애인활동지원 사업은 기관의 수익률이 아닌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운동으로써 존재해야 하고 장애인단체들은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놓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장애인활동보조라는 현장의 최일선에서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을 만나고 있는 코디네이터들을 기능화된 인력으로 치부할 것인지, 아니면 자립생활운동의 활동가로 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진지하고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자립생활센터의 네트워크에서도 평가 점수를 잘 받기 위한 정보교환을 넘어, 제도가 중개기관을 어떻게 길들이는지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6. 나가며
이 글에서는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의 흐름 속에서 이용자와 활동보조인, 기관과 코디네이터, 정부가 이미 인지되고 있는 일상적인 문제들을 사적인 문제로 치부하거나 혹은 어쩔 수 없다며 애써 모른 척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을 제기 하였다. 명문화된 법에서 활동보조인은 장애인의 ‘일상을 보조’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은 결코 가볍지 않으며, 일상이 이어져 삶을 이루기 때문에 일상의 문제는 오히려 처절하다.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치부해버린 것들을 논의의 중심부로 소환을 하고자 하는 이유는 일상의 문제는 정치적인 것이며, 제도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가 장애인의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해왔지만, 다양한 생존의 조건들을 충분히 고민하고 반영했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이미 가시화되어 있는 일상의 문제를 어떻게 제도와, 또 자립생활운동과 연결시킬 수 있을지 구체적인 고민이 시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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