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가을․겨울 109호 - [나는 활동보조인입니다] 조금은 다른 불안을 위하여
[나는 활동보조인입니다]
조금은 다른 불안을 위하여
정창조 | 노들야학 고장선생님 활동보조로 돈을 번다. 철학을 공부하고 있긴 한데 잘 하지는 못한다. K씨와 노는 것을 가장 좋아하며, 친구들과 서로 비방하기를 즐긴다. 팔자 좋게 여행이나 다니며 사는 게 꿈인데 그런 날은 평생 올 것 같지 않아서, 그냥 발붙이고 있는 곳에서 한 사람의 몫이라도 제대로 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철학 공부가 재미있다고 대학에 설렁설렁 눌러 앉아 있다 보니, 어느덧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가 버렸다. 나름 보람차게 시간을 보내온 것도 같지만, 뭔가 어른스러움을 내비쳐야만 할 것 같은 나이인 30대에 접어들었음에도 내세울 만한 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기껏해야 쓸데없이 길어진 가방끈 정도가 지금의 내게 남겨진 거의 유일한 자산일 터인데, 그마저도 타인들의 나에 대한 시선을 심각할 정도로 교란시키는 실속 없는 장식품 따위로 전락한지 오래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한심한 녀석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공부를 이어나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0여 년 간 게으르게나마 익혀온 유일한 기술로 겨우 얻게 된 직업은 최저생계조차 보장되지 않는 대학 시간 강사 자리 뿐. 그렇잖아도 머리도 나쁜데 생계조차 보장되지 않는다니, 공부를 지속하겠다는 나의 느슨한 열망은 늘 회의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 와중에 어느 술자리에서 노들야학 교사 유미님께 교장 선생님의 활동보조를 권유받았다. 겨우 얻은 시간 강사 자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기도 하고, 나름의 연구 시간도 보장되어야 하는 터라 매일 노동을 할 수 없는 나로서는 이 직업이 나름 매력적으로 여겨졌다. 물론 몇몇 투쟁들에서 마주한 ‘불온한’ 미래 이용자의 모습 덕분에 한편으로는 설레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정작 이 일을 시작하고 나니 이용자의 불온함은 별 걱정거리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엉뚱한 것들이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주변 사람들의 장애인 및 장애인의 삶에 대한 선입견이었으며, 동시에 이러한 ‘충분히 예측될 수 있는’ 반응들에 대해서 그들이 이해할 만한 대답들, 설명들을 미리 마련해 두지 못한 나의 게으름과 무능함이었다.
내가 활동보조 ‘노동’을 시작했다고 하자, 적지 않은 이들이 이를 단순한 무료 봉사 쯤으로 생각했다. 어떤 이들은 그 봉사가 시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속단하면서, ‘창조가 참 착한 일을 하는구나’라고 단정해 버리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나를 가엽게 여기면서 꽤 좋은 조건의 직장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물론 ‘박경석’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자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는데, 그들은 대체로 내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연행되지 마라, 돈 벌러 갔다가 벌금 맞겠구먼, 적자 노동 되는 거 아니여? 껄껄껄).
노들야학의 많은 분들께서는 (내가 괄호 안에 넣어놓은 반응들에는 일정 부분 동의하면서도) 이러한 반응들에 대해서 매우 분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나는 이러한 반응들에 딱히 어떠한 악의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저런 말을 내놓는 이들이 딱히 악인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저들은 순수한(?) 마음에서 나에게 선의를 베풀고 싶어 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에 솔직히 감사함마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선의를 내비칠 때조차도 그것은 이 사회구조의 억압적 성격을 짙게 반영하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는 법이다. 이는 특히 자신의 삶과 전적으로 유리된 것으로 가정된, 자신과 공유하고 있는 공통적 조건이나 특성조차 사고하기 힘든 타자들에 대한 태도들에서 분명히 나타나곤 한다. 그렇게 ‘철저히 타자화된 어떤 타자’, 직설적으로 말해보자면 대개는 사회적 소수자인 이 타자는 다수자들에게서 진정한 만남의 기회, 심지어는 ‘서로가 공동의 세계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상상의 영역에서조차 허용 받지 못한다.
이는 오늘날의 ‘자유롭고 평등한’,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느 ‘유사한 종류’의 불안으로 가득 찬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불안한 노동 조건, 불안한 거주 조건, 불안한 장사 조건, 불안한 노후 조건, 끊임없는 경쟁과 낙오의 연속들, 오늘의 안정된 일상이 내일 당장 보장되지 않을 것 같은 나날들 등등…. 많은 이들이 오늘날의 시대를 이렇게 표현하곤 하지만, 내 주변 상당수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들은 이 시대의 이러한 ‘일반적’ 불안들조차 함께 공유할 수 없는 이들로 여겨지고 있었다. 불안이란 그것이 어떠한 형태이건 간에 미래가 결정되어 있지 않을 때 존재할 수 있으며, 따라서 자신의 미래 가능성을 스스로 떠맡을 수 있는 혹은 실제로 떠맡고 있는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일진대, 장애인들은 애초부터 이러한 권리를 가진 자들이 아니라고 생각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상상하는 장애인의 삶이란 그저 ‘내일이, 한 달 후가, 일 년 후가, 심지어 죽는 그날까지의 일상’이 이미 결정된 삶이다. 그것도 장애인 본인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의지에 의해서 말이다.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잠을 자고, 정해진 날짜에 외출을 하고, 오늘도 내일도 1년 후도 그렇게 쭈욱. 이러한 조건 속에서 사는 이들에게 시설 혹은 좁은 방안을 넘어선 세계에서만이 주어질 수 있는 다양하고도 깊은 불안들이, 혹은 그러한 불안들을 맞서고 견뎌낼 수 있는 어떠한 단호한 의지력이나 결단력이 있다고 생각될 수 있을까?
물론 나는 혹자들이 ‘불안을 먹고 사는 사회’라 설명하곤 하는 오늘날의 체제를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불안이라는 것이 인간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수백 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차원에서 오늘날의 사회가 문제인 것은 단순히 이 사회가 구성원들의 ‘불안을 먹고 사는 사회’이기 때문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특정한 한 형태의 불안 속에 모두를 밀어 넣고선 이를 통하여 다른 불안들의 무한한 가능성들을 애초부터 불가능하게 만드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불안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을진대, 한 종류의 불안이 너무 강력하다면, 혹은 한 인간에게 주어진 특정 불안이 다른 불안들의 마주침을 철저히 방해하고 있다면, 다른 불안들은 그 인간의 삶 속에서 그 가능성 자체가 허용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때로는 ‘한 불안’이 다른 ‘불안들’을 억압한다. 내일 당장의 생존과 경쟁에서 낙오할 것 같다는 불안에 늘 시달릴 수밖에 없는 이들이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물음’과 ‘진정 좋은 삶,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 ‘근원적인 존재에 대한 물음’과 ‘사회의 변혁과 관련된 물음’이 던져주는 무거운 불안들에 빠져들기란 얼마나 힘든 일이란 말인가?―그러나 불가능 하지는 않다.
그런데 상당수 비장애인들의 상상 속에서 장애인들 ‘일반’의 불안은 한국 신자유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 ‘일반’의 불안보다도 훨씬 더 작은 범위로 축소되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집 밖으로조차, 시설 밖으로조차 나설 수 없는 대다수 장애인들의 상황을 고려해볼 때, 이러한 상상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장애인들 역시 ‘효율성’이라는 명목 아래 갇혀 살 수 밖에 없는 경우가 허다하기에, 그들 역시 분명 이 신자유주의 사회의 피해자들일 터이지만, 신자유주의적 불안을 누리는 것만큼은 그들에게 애초부터 허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고작 그 정도의 불안, 즉 비장애인들에겐 일상 그 자체인 불안들도 허용되지 않는데, 장애인이 니체를 읽고 사회에 저항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한 모습인가? 특정 불안에만 과하게 시달리고 있는 터라 비장애인들도 그렇게 살기가 힘든데, 어디 감히 장애인이 그런 사치를 누린단 말인가.
활동보조 노동을 시작할 때 쯤, 노들야학 홍은전 선생님의 「강가의 사람들」(『한겨레』, 2016. 9. 12.)이라는 칼럼을 보았다. 거기에는 활동보조인제도가 ‘중증장애인의 일상을 열어주는 것’, ‘그들을 자기 인생의 주체로 만들어주는 것’이라 쓰여 있었다. 그런데 일상이 열린다는 것, 그리고 주체로 살아나갈 수 있다는 것은 사실상 불안을 마주하고 그것과 끊임없이 투쟁해 나가야 하는 책무를 떠안게 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 아닐까? 국지적인 한 형태의 불안을 먹고사는 이 신자유주의 사회의 현실을 마주하고, 그것을 넘어서 더 다양하고 더 깊은 불안들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그러한 ‘자유롭지만 더 고통스런 세계’로의 뛰어듦.
나의 이용자는 ‘행복’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몇 년 전 『지금이 나는 가장 행복하다』는 제목의 책을 쓰시더니, 최근에는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툭 하면 ‘요새 행복하시죠?’라 묻곤 한다. 그러나 사실 그는 언제나 불안해한다. 하긴 머리에 협상, 점거, 장애해방, 투쟁, 후원(금 받아내기), 심지어 혁명으로 가득 차 있는 이가, 일상적 담화에서 끊임없이 개그 거리를 생산해 내고자 욕망하고, 얼마 전 산 최신형 노트북을 모든 자리에서 자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가 불안해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일 게다. 그러면 그가 입에 달고 사는 ‘자신은 행복하다’는 선언은 거짓말인 걸까? 누가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혹시 그는 자신이 그 불안들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 때문에 행복한 것은 아닐까? 나의 이용자는 자신이 불안을 느낄 수 있는 권리 자체를 매순간마다 행복하게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내 이용자가 더욱 더 자신이 매진하고 있는 종류의 불안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최대한 보조하고 싶다. 즉 언제나 그가 불안해하길, 심지어 지금보다 더 불안해하길 바란다. 그리고 지난 두 달 여 간의 시간은 활동보조라는 나의 노동에 대해 어떤 확신을 갖도록 해주었다. 즉 나의 이용자에게 주어지는 불안을 그 자신이 마음껏 맞부딪힐 수 있도록 다른 국지적인 부분에서 발생하는 어떤 불안들―특히 비장애인들은 일상 속에서 도무지 겪을 수도 없고, 그러기에 이해하기도 힘든 특정 불안들―을 일정 부분 해결해 줄 수 있는 노동이어야 한다는 확신을 말이다.
유난히 이동이 잦은 이용자가 자신의 ‘과도한’ 불안을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그가 비장애인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고자 할 때 생각지도 않는 불편함들을 최대한 덜 겪게 하기 위해, 나는 올 겨울에 시간이 나는 대로 운전 연습을 해볼까 한다. 그러나 지켜지지 않는 약속이 되면 어떻게 하지? 그때가 되면 “나는 당신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동정심 넘치는 착한 ‘봉사자’가 아니라, 돈을 받고 일하는 ‘이기적인 노동자’”임을 강조하며, ‘무능하고 높은 성과를 창출할 능력이 없는 이의 노동권도 소중하다!’는 되도 않는 근거로 변명거리를 늘어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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