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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빈곤철폐의 날, 이렇게 싸웠습니다!

 

 

 

정성철 | 빈곤사회연대에서 활동합니다. 탄산음료와 초콜릿, 운동과 키스, 담배와 데모를 좋아합니다. 술과 권위 그리고 자기소개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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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에서 정했다. 1993, 1017일은 세계적인 빈곤과 기아를 없애겠다는 대망의 포부아래 세계 빈곤퇴치의 날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 후 2000UN 총회에서 밀레니엄 개발목표를 통해 2015년까지 절대 빈곤과 기아를 대폭 감소할 것이라는 목표를 결의, ‘화이트 밴드 캠페인행사를 진행해 오고 있다. 화이트 밴드를 찬 시민들이 일정 장소에 모여 앉은 후 일제히 일어나는 퍼포먼스로 가난의 굴레에서 스스로 일어서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1017일 세계 빈곤퇴치의 날, 한국에서는 유니세프 같은 국제기구의 한국위원회와 몇몇 대규모 사회복지재단 및 단체들에서 기부금 모금 행사나 강연회 등을 진행한다. 매일 하던 사업을 빈곤퇴치의 날이란 이름을 빌어 더 크게 홍보하는 정도인데, ‘스스로 일어서라는 의미와는 다르게 굉장히 동정적시혜적으로 보인다. 모금을 요청하는 온오프라인의 홍보물이나 부스에 놓인 판넬과 리플렛 등에는 가난한 아이, 노인, 흑인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어떻게 빈곤에 처하게 됐을까, 물음표는 불필요하다. 그들이 빈곤에 처하게 되기까지 받았던 차별과 낙인의 역사는 찾아볼 수 없다. 행사를 진행하는 사람들의 실적이 될 모금액을 늘리기 위해, 모금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더 자극적으로 보이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지워졌다.

 

세상 그 누가 빈곤을 정리하고 정의할 수 있을까. 원고지 수백, 수천 장으로도 정리하고 정의 할 수 없는 게 빈곤 아닐까. 사회·경제·문화적 요소를 포함한 어렵고 복잡한 개념인 빈곤을 앞에 두고 빈곤은 바로 이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사기꾼이 아닐까. ‘가난을 거꾸로 읽으면 난가?’라는 웃을 수만은 없는 말장난처럼, 규격 없는 빈곤의 얼굴은 다양한 역사와 형태로 곳곳에, 그리고 잔인하게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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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세계 빈곤퇴치의 날행사가 진행되는 때, 우리는 빈곤철폐의 날투쟁을 전개한다. 빈곤이 모기나 파리도 아니고 퇴치가 무슨 말인가, 철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고민에서 시작된 이름일까. 1017일 빈곤철폐의 날은 한국 사회의 빈곤, 숨 쉬는 가난의 역사들이 한 공간에 모인다. 도시 빈민, 노점상과 철거민, 임차상인, 노숙인과 쪽방 주민, 장애인, 저임금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온다. 시내의 중심에 서 도시 빈민과 장애인, 빈곤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삶의 이야기를 꺼낸다. 거리를 걸으며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친다. 저 마다 요구는 다르지만, 돈 없고 힘없고 주류가 아니기 때문에 겪고 있는 삶에서의 차별과 폭력을 없애고 빈곤을 철폐해야 한다고, 인간답게 살자고 소리친다. ‘가난한 이들에게 힘을!’, 올해 빈곤철폐의 날의 기조였다. ‘가난을 없애는 가장 빠른 방법은 가난한 이들에게 힘을 주는 것이라는 말처럼, 함께 살기 위한 투쟁에 동참해 달라는 우렁찬 속삭임이었다.

 

우리가 정했다, 1017 빈곤철폐의 날. 빈곤은 일시적이고 동정적·시혜적인 구호와 원조 따위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삶의 경험적 근거와 역사가 있다. 그 근거와 역사는 말하고 있다. 빈곤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빈곤에 처한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문제를 나누고 쟁취해 나아가는 걸음에 있다고. 우리는 1017일을 빈곤철폐의 날이라 명하고 투쟁에 나선다. 올해 1017 빈곤철폐의 날은 앞서 언급했듯이 가난한 이들에게 힘을!’이라는 기조 아래 10개의 투쟁 요구를 내걸고 10월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 달간 계속됐다.

 

[20161017 빈곤철폐의 날 투쟁 일정]

- 103<2016년 세계주거의 날: 모두를 위한 주거권! 쫓겨나지 않을 권리!_쫓겨나는 사람들의 Tolk box>

- 105<쫓겨나지 않고, 내몰리지 않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 가난한 이들에게 힘을!> 1017 빈곤철폐의 날 선포 기자회견

- 1010<1017 반빈곤 연대의 날: 순화동철거민 연대촛불문화제>

- 1013<1017 민중열사 묘역 참배>

- 1015<1017 빈곤철폐의 날 투쟁대회, 반빈곤퍼레이드>

- 1022~24<1017 반빈곤 영화제: 사람이 산다>

 

[20161017 빈곤철폐의 날 투쟁 요구]

-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민중복지 쟁취!

- 노점단속 강제집행 중단! 용역깡패 해체하라!

- 선대책 후철거, 강제퇴거 중단하라!

- 허울뿐인 홈리스 복지개선, 공공주택 공급하라!

- 조물주위에 건물주, 맘편히 장사하자!

- 줬다 뺏는 기초연금, 약속대로 이행하라!

- 복지는 국가책임! 사회공공성 강화하라!

- 불평등 심화! 복지 파괴! 박근혜 정부 규탄한다!

- 세월호 진상규명, 진실을 인양하라!

-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책임자를 규탄하라!


하나의 요구로 싸워도 이길 수 있을까 말까한데 열 가지 요구라니. 심지어 노동시장과 사회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누가 보면 멍청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 하나 포기할 수 없었다. 노동자 민중들의 삶에 악영향을 미칠 사회문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극명하게 나타나며, 우리가 내 건 각각의 요구는 가난한 사람들의 지금, 현재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새 집 줄 테니 헌 집 달라는 재개발 정책은 높고 반짝이는 비싼 건물들을 세우며 투기꾼과 개발사의 이익만을 대변한다. 그곳에 살아 온 사람들에 대한 대책은 하나도 없이 거리로 내쫓는다. 평생을 거리에서 장사해 온 노점상들은 거리 미화라는 이유로 폭력적인 강제집행에 내몰린다. 노점상이 없어진 자리에는 화단이나 벤치가 놓인다. 목돈 들여 차린 가게의 상권이 뜨니 건물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쫓겨난 임차상인이 장사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불안정한 노동시장, 구멍 난 복지제도 탓에 거리에 선 노숙인들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차별과 폭력을 마주한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만들어진 사회에서 자유도 권리도 없는 시설로 쫓겨나는 장애인들에게 함께 살아갈 지역사회는 있기나 한 것일까.

 

끝나지 않았다. 빈곤철폐의 날 투쟁이 지나자마자, 동작구 이수역 앞 떡볶이 노점상에 강제집행이 들어왔다. 용산역과 남대문시장에서도 노점상들이 싸우고 있다.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과천 철거민은 10년 째 건설사 삼성과 싸우고 있다. 신수동 철거민은 대책 없는 개발 악법을 반대하다 구속됐다. 장애인들은 이동권 쟁취를 위해 성남시청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 농성은 5년을 바라보며 계속되고 있다. 어느 새 11월 말, 겨울 냄새를 맡으니 날 선 바람과 추위를 마주할 가난한 사람들 얼굴이 스친다. 날씨와 기온마저 불평등한 사회에서 유난히 더운 여름을 견뎌냈을 사람들, 겨울은 또 어떻게 견뎌내야 할까. 올 동짓날에도 진행될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 가난의 끝에 무연고로 죽어간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살아 있는 가난의 역사를 계속해서 폭력적으로 숨기고 지우려 시도하는 사회에서, 1017 빈곤철폐의 날 투쟁만으로 빈곤을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더 아름다운 연대를 꿈꾸며, 지금은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겠다. 가난한 사람들이 여기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함께 살자고, 외치고 행동해야겠다. 누군가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누구의 권리도 보장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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