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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들판의 꿈, 이루어지다?
네 번째 공장 이전을 하며...



박 시 백 | 노란들판 10년차 디자이너- / 맥주 500cc 5잔 이상부터 내면으로부터 끓어오는 에너지로 필이 충만한 춤을 추는 이 / 스트레스 상황에서 가끔 사나운 모습을 보이지만 마음은 여유롭고 싶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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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노란들판의 새 공간



노란들판이 새 공간을 얻었다.
어쩌다 보니 노들야학을 알게 되었고 저쩌다 보니 노란들판에 오게 된 것처럼, 그렇게 월세를 미리 알았더라면 구경할 엄두도 내지 않았을 이 공간에 어쩌다 들어오게 되었고 두 번에 걸친 가격 협상을 통해 계약까지 이어졌다. 처음으로 인테리어공사라는 것을 진행한 덕분에 내년이면 10년차인 노란들판에 이제야 ‘우리의 공간이구나’싶은 그런 공간이 생겼다.


최초의 시작은 광진구 군자동에서였다.
2006년 초,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시 노들야학 상근 활동가였던 ‘이알찬’이 ‘돈’을 버는 현수막공장, 노란들판을 만들었다. 초기에는 일도 적고 인원도 적었던지라 점심식사를 교대로 요리해서 먹었다. 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안 계신 틈을 타 친구들을 불러 밤새 건전하게 놀고 나서 아침에 의욕적으로 퓨전요리를 해주었었다. 그들의 표정에 다시는 도마를 잡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후로 처음 해보는 요리에 모두들 맛있다고 해줄 만큼 군자동 노란들판의 분위기는 가족적이었다. 이 때 개인적으로 하루에 택배 10개 이상(5개를 넘기기 힘들었음)과 평균도 아닌 단 한 번이라도 월 매출 5천만원 이상 달성(월 평균 매출 2천만원을 못 넘겼던 때)의 꿈을 꾸었다.


두 번째 사무실은 구의동에 얻었다.
아차산 등산로가 바로 옆에 있는 공기 좋고 조용한 곳이었지만 창립 멤버 둘을 떠나보내야 했던 아픈 곳이기도 했다. 잔소리는 전문이지만 운영에는 자신 없었던 나 또한 고민이 많았으나 ‘안민희’를 비롯한 소중한 사람들이 빈자리를 채워주어 함께 노란들판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되었고 출력기계를 추가로 구입하는 등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하루에 택배 10개 이상을 보내면 전 직원에게 ‘빕스’를 쏘겠다고 객기를 부린 지 몇 개월도 안 되어 빕스에 가야했다. 누구는 여자 친구를 데려왔다. 구의동에서 4년을 보내는 동안 시민·사회·장애인단체의 노란들판에 대한 팬덤은 굳건해졌다. 다만 광진구의 시장 환경은 군자동에서와 다를 게 없었다. 고용노동부의 5년차 인건비 지원 종료를 앞두고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인원 감축 없이 살아남으려면 매출을 늘려야만 했고 돌파구를 찾아야했다.


2012년 4월,
광진구를 뒤로 하고 사회적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성북구(장위동)로 과감하게 이전했다. 지하철역에서 거리가 멀고 재개발 예정지에 속한 오래된 건물이지만 그동안의 공간 중에서 가장 넓은 곳이었다. 소원이었던 회의실도 생겼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연 매출 5억원을 돌파했고 실사출력 외에 인쇄출판디자인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하루에 택배 10개 이상 보내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또 다시 객기를 부렸다. 5일 연속으로 10개 이상 보내면 빕스를 쏘겠다고 했다. 보름도 안 걸렸다. 그날 굳이 택배로 안 보내도 될 것을 보내는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었지만 받아들였다. 한 번이 아니라 월 평균 매출로 5천만원을 넘기게 되었다. 매출이 늘어남에 따라 인원도 점점 늘었다. 최근에는 장애인계와 특별한 연관이 없는 비장애인을 채용하는 등 노란들판의 스펙트럼은 넓어지고 있다. 재개발이 확정됨에 따라 새로운 공간을 알아봐야 했다. 장위동 건물은 이번에 이주한 건물의 인테리어공사 비용과 그 외 이주비용까지 이주보상비로 챙겨준 마지막까지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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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노란들판의 새 공간 모습이다. 벽에 책장이 설치된 좋은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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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파티션이 쳐진 사무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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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쾌적한 사무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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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넓찍한 회의 공간



2015년 8월,
노란들판은 네 번째 공간인 성북구 석관동 사무실로 이전했다. 돌곶이역에서 도보 3분 거리라는 점이 참 좋다. 아직은 분위기가 낯설어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큰 공사는 끝났지만 아직도 사무실 꾸미기는 진행 중이다. 이사와 맞물려 투표로 세 명을 복지위원으로 선출하고 예산 500만원을 배정하여 쓰레기통에서부터 시작하여 안마기까지 직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선별하여 구입하고 있다. 오후에 택배가 올 때마다 오늘은 어떤 물건이 왔을지를 기대하며 포장박스를 뜯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일 년 내내 복지위원회를 돌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공간에서 이제 무엇을 꿈꿔야 할까.
빕스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빕스를 간다는 것은 내게 노란들판의 성장을 의미하는 거였다. 단순히 외형적 성장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노란들판은 일반기업과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사회적기업이고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회적기업 중에서도 또 다른 노란들판만의 가치를 지켜왔다.


의외로 노들 내에서 노란들판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부족함을 느낀다.
노들바람 소식지 첫페이지 하단에 적혀있는 노란들판의 뜻풀이처럼 나는 ‘대안적 세계’를 멀리 있는 꿈으로 생각하며 일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지난 9년 동안 노란들판은 단순히 ‘돈’을 벌었던 것이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땀을 흘리며 ‘노동’을 하는 곳, 즉 노란들판 자체가 대안적 일터였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세심한 배려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누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들보다 더 땀을 흘려야 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만 넘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새로운 공간에서 맞는 또 다른 10년의 키워드는 결국 ‘사람’, 결국 ‘우리’가 될 것이다. 함께 천천히 걸어왔다. 요즘 나는 노란들판 홍보 브로슈어에 있는 문구인 ‘모두를 위한 들판, 노란들판’을 생각한다. 그 문구의 ‘모두’는 지금까지 그 길을 같이 걸어 온 노란들판의 한 명 한 명을 뜻하는 것이고, 그 길에 함께할 이를 뜻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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