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봄여름 104호 - 판사님, 난 수업해야 한단 말이에요.
사건의 중대함
재판장에 들어가니 검찰은 “사건의 중대함, 도주의 위험, 재범의 위험” 등의 이유로 나를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도 구속영장을 보고서 사건의 중대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송국현 동지가 활동보조가 없어 화재에 미처 대비하지 못해 죽었던 이사건은 그들이 나를 구속시킬 이유였던 ‘중대함’보다 훨씬 더 큰 ‘중대함’일 것이다. 20년 넘게 시설에 갇혀 살다가 자유를 얻은 지 고작 6개월. 송국현 동지가 꾸었던 자그마한 꿈들은 6개월 만에 산산이 조각나서 불에 타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 사건의 중대함과 도주, 재범의 위험으로 인해 구속이 되었다. 구속된 후 유치장에서 이틀을 지내고 12월 2일 구치소로 이송이 되는데, 몇몇 동지들이 힘내라고 남대문서에서 아침부터 날 기다리고 있었다. 힘내라고, 기죽지 말라는 동지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다.
하루 두 번의 꿀 같은 바깥 공기
처음에 구속되었을 땐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다. 하루 한두 번 짧게 바깥 공기를 맡을 수 있는데, 운동할 때 그리고 면회하러 갈 때였다. 나는 행복하게도 매일같이 많은 동지들이 면회를 와 주셔서 매일 두 번 외출을 할 수 있었다.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수형번호를 부여하는데, 맨 처음 내 수번은 네 자리의 숫자였다. 교도관이 내 번호를 부르며 면회를 하러 가래서 나갔는데, 내 번호를 아무리 찾아도 전광판에 나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공안사범이라고 교도소 측에서 수번을 바꿨던 것이다. 나중에는 109번이 내 수번이었는데, 공안사범은 대부분 세 자리의 숫자로 수번이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또 몇 번은 내가 면회할 방에 들어갔는데, 5분을 기다려도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면회하는 자리에 남은 시간이 보이는데, 이 숫자가 내려갈수록 너무 초조해졌다. 왜 안 들어오냐고 교도관에게 따졌더니 휠체어 동지들이 오셔서 면회하기 좋은 자리로 배치해줬다고 했다. 이렇게 휠체어 동지들이 면회를 올 때마다 나는 가장 좋은 자리에서 면회를 할 수 있었고, 면회 오신 한 분 한 분 너무 고마웠다. 10분이지만 그 시간이 너무 소중했고, 그것이 안에서 잘 버틸 수 있는 튼튼한 원동력이 되었다. 야학에서는 대부분의 학생들과 교사들이 탄원서를 써주었다고 들었다. “박승하은 제(죄)가 없습니다.”, “박승하를 둘랴(돌려)주세요.”라는 자필 탄원서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들었다. 많은 동지들과 함께 운동한다는 것이 이렇게 자랑스럽고 뿌듯할 수 없었다.
땅바닥 동지들
한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 나는 구치소 안에서 ‘장애인 혼거방’에 있었는데 우리 사동 운동시간에 조덕배* 씨를 보게 되었다. 나는 그가 누군지 잘 모르는데, 유명한 사람이라고 전해 들었다. 그때 그가 나에게 맨 처음엔 반말을 하며 뭐하다 들어왔는지 물어봤다. 짜증을 살짝 섞으면서 노들야학 교사라고 했더니 그 다음에 만날 때부터는 “박 선생님~” 하면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느 날, 그가 나에게 “박 선생 단체에 ‘땅바닥’이라는 단체 있지 않나?”라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을 말하는 것이었다. 박장대소를 하며 “발바닥이라는 단체에요. 그 단체 알지요. 친해요.” 했다. 나중에 발바닥 동지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더니, 조덕배 씨 면회라도 한번 가야하는 것 아니냐며 서로 웃곤 했다.
첫 심리 이후 바로 선고 공판 날짜가 잡혔는데, 두 번 다 나는 싹싹 빌고 반성했다. 반성한 결과 나오게 되었는데, 그날 너무 많은 동지들이 함께해주어서 너무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법원에서 출소를 하는데 내 짐이 법원으로 도착하지 않아 아버지와 많은 친구들이 내 옷을 사러 다녔다. 법원 근처에 옷을 살 곳이 없어 결국 난 내 후배 바지와 남방을 입고 나오게 됐고, 그 친구가 집에 가야해서 다른 친구가 우여곡절 끝에 사온 수면바지를 입고 출소를 하게 되었다. 그 꼴이 얼마나 웃겼는지 사진 찍는 사람도 웃고 나도 웃고 다들 웃었다.
노들야학 덕분에 수형생활을 잘 했고, 또 잘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노들야학 덕분에 내가 사는 의미와 내가 투쟁하는 의미를 잘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항소심 선고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마침 그날이 내가 수업 하는 요일이다. 판사님, 날 구속시키지 마요. 난 수업해야 한단 말이에요.
*조덕배 씨는 <꿈에>,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 같은 노래를 부른 가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