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봄 122호 - 코로나19, 우리를 훑고 지나간 바이러스와 그 여파... / 김필순
코로나19, 우리를 훑고 지나간 바이러스와 그 여파...
김필순 | 코로나로 많은 일정이 사라졌지만 입안 바이러스 혓바늘과 전쟁 중
1월이 끝나고 2월이 시작되는 일요일 저녁 노란들판 운영위원회 단톡방이 매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주중부터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 발생으로 돌아오는 월요일 시작되는 활동지원사 교육을 연기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리고 노들야학은 겨울방학을 마치고 몇 년만에 준비한 반별 배치고사와 해오름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의견이 분분하던 중 종로구 관내에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 3번째 확진자와 접촉한 6번째 확진자, 혜화로타리 인근 명륜교회 교인.
대항로 인근 지역 확진자 발생으로 순식간에 활동지원사 교육과 노들야학 개학은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그러고 나니, 명륜교회? 노들센터 자립생활주택과 가까운 명륜교회? 장기형님 거기 다니지 않나? 빠르게 입주자들이 다니는 교회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여성주택 혜미 님이 6번째 확진자가 참석한 주일 오전예배에 참석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우선 혜미 님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보건소에 연락해 혜미 님이 6번째 확진자의 접촉자 26명에 포함되는지 확인했다. 일요일 저녁시간이었는데 위급상황이라 보건소 전화통화는 가능했고 다행히 혜미 님은 접촉자에 포함되지 않았다.
다음날부터 빠르게 확인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먼저 당사자인 혜미님에게 본인의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당분간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 지내야한다는 이야기를 전달해야 했고(자체 자가격리), 예배에 동반하지 않는 다른 활동지원사에게 해당 사실을 알리고 동의하에 혜미 님의 지원을 요청해야 했고, 예배에 동반한 활동지원사에게 자가격리 수준의 활동을 제안해야 하는데 이것이 참 애매했다. 접촉자로 분류되지 않은 활동지원사에게 일을 쉬면서 자가격리를 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본 활동지원사는 평소에도 외출 시 마스크를 쓰고 다닐 정도로 안전의식이 매우 강한 분이라 스스로 건강을 체크하고, 폐쇄된 명륜교회까지 찾아가 교회CCTV를 통해 해당 예배시간에 확진자와 혜미 님이 앉은 자리 위치까지 확인하는 수고를 해주셨고 그제서야 우리는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어려웠던 것은 예배에 동행한 활동지원사는 주말에는 혜미 님을, 주중에서 최중증장애인이 기O 님을 지원하고 있기에 혹여나 혜미 님과 활동지원사 누구라도 확진자나 접촉자가 되면 혜미 님과 함께 살고 있는 주택입주자, 활동지원사, 코디네이터는 물론 기O 님을 지원하는 나머지 활동지원사, 그 가족, 그 가족의 요양보호사,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상근활동가, 그리고 그 상근활동가와 함께 근무하고 밥 먹는 대항로 활동가들까지... 예상되는 파장은 상상하기조차 싫은 상황이었다.
우리는 혹시 모르는 위험 대책을 위해 종로구청을 통해 ‘바이러스 검사’를 받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증상은 없지만 혜미 님과 연결되는 사회적 접촉자 수가 너무 많기에 불안감을 해소하고 싶었다. 공적체계 안에서 요청하면 좀 더 쉽고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싶어 구청에서 보건소에 검사문의를 했으나 발열, 가래 등의 증상이 없는 경우 ‘검사 불가’라는 답변뿐이었다. 이 와중에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위로라고는 14일 자가격리 기간의 절반이 지났다는 사실 뿐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혜미 님과 활동지원사의 건강상태를 꼼꼼히 확인하고, 하루 3번 체온을 측정하고, 소독제와 마스크를 좀 더 충분히 챙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시간이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뿐.. 이 과정에서 지난 메르스 사태 때 보건복지부에 요구한 장애인 감염병 안전 대책‘이 생각났다. 메르스 사태로 생존을 위협받았던 장애인의 소송으로 이어진 이 요구에 법원은 복지부에 ‘장애인 감염병 안전 대책을 만들라’라는 강제조정안을 결정했지만 복지부는 조정의사가 없다며 끝내 조정을 거부했다. 2016년 메르스를 지나 2020년 신종바이러스 코로나가 발생했는데 그 사이 복지부는 감염병 관련 그 어떤 가이드라인도 만들지 않았다.
노들센터는 혜미 님 사례를 바탕으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에 기자회견을 제안하였고 2월 중순 함박눈이 내리는 날, 광화문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코로나19 장애인 지원 및 대안 부재 복지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혜미 님은 이날 해당 사태의 당사자로 참여하여 자체 자가격리 기간의 심정을 전달했다. “15일이나 집에만 있었더니 너무 답답했습니다.... 위험한 상황에서 저는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고 또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립생활주택에서 생활하고 있고 노들야학에도 다니고 있는 이혜미입니다. 저는 주말에 교회를 다닙니다. 그 교회에 신종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있어서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 자가격리가 필요하다고 했고, 마스크와 손소독제, 체온계도 주셨습니다. 저는 10일 넘게 15일이나 집에만 있었습니다. 집에 계속 있었더니 너무 답답했습니다. 함께 사는 동생들은 일도 하고 바람도 쐬러 나갔습니다. 저는 부러웠습니다. 저는 집에서 책 보고 핸드폰을 했습니다. 너무 심심했습니다. 점점 머리도 아파왔고 어지러웠습니다. 나가고 싶었어요. 집에 있는 동안 괜찮아서 저는 이렇게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활동보조 선생님이 안 계시면 활동이 어렵습니다. 활동보조 선생님도 함께 고생하셨어요. 위험한 상황에서 저는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고 또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제가 상황을 알아차리고 잘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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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은 가난한 사람에게 평등하지 않다. 재난은 장애인에도 평등하지 않다. 코로나19 발생 39일째, 어제밤 대구에서 장애인 확인자가 나왔다. 하지만 병상이 없다는 이유로 자가격리를 통보받고 그와 밀접접촉자로 분류된 비장애인 활동가가 방호복을 입고 24시간 생활지원을 하고 있다. 하루종일 밖에 나갈 수 없는 이 상황을 지적장애인 확진자에게 쉽게 설명해야 하고, 세끼 식사와 낮시간을 비롯한 24시간을 비장애인활동가 한 명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발열과 호흡곤란 정도를 표현하기 어려운 지적장애인 당사자는 답답할 것이고, 그의 건강상태를 꼼꼼히 확인해야 하는 지원자는 확진자와 매우 밀접한 접촉을 할 수밖에 없다. 방호복 하나로 오롯이 이 상황을 감당해야 한다.
장애인 감염병 관련 대책을 세우라는 우리의 목소리도, 법원의 강제조정도 무시했던 복지부는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이렇게 무지하게 이 사태를 맞이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복지부는 책임져야 한다. 더는 죽고 나서 살려 내라는 말을 하지 않도록 우리사회는 장애인과 감염병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