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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끝이 미완인 이유

 

 

고 병 권 | 오랫동안 연구공동체 수유너머에서 밥 먹고 공부해왔으며, 이번 여름부터 무소속 연구자로 살아가고 있다. 노들야학에서 철학교사로 지내왔고 최근에 잠시 휴직한 상태. 그동안 밀린 공부도 하고 이런저런 활동으로 자기 충전 중!

 

 고병권1.jpg

사진 : 고병권 선생님 

 

1.

지난 8월 10일은 야학에서 내가 맡은 사회1 과목의 종강일이었다. 학사일정상의 종강이기도 했지만 내 개인 사정으로 잠시 교사직을 내려놓기로 한지라 이 날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종강이었다. 공식 과목명은 ‘사회’였지만 내 수업은 야학에서 철학 수업으로 통했다. 그전에는 불수레반(중등과정) 국어를 맡았는데 다른 반과 달리 불수레반의 국어는 철학이었다. 그러고보니 대학에서 철학과 수업도 거의 듣지 않았고 철학에 관한 어떤 학위도 없지만, 야학에서 지난 몇 년 간 나는 철학 교사 행세를 한 셈이다.


한 학기의 수업, 지난 두 학기 동안 진행했던 작가 루쉰 읽기가 끝나고, 지난 몇 학기 이어온 철학 교사직을 멈춘다는 생각에 이날 수업에서는 쓸 데 없는 힘이 들어갔다. 강의를 시작하는데 말이 좀 꼬이기 시작했다. 오늘이 종강이고, 루쉰이 어떻고, 개인사정이 어떻고 횡설수설하고 있는데 수업을 듣던 상연 씨가 불쑥 물었다. 삶이란 무엇이냐고.


순간, 상연 씨가 철학 수업에 참석한 날이 떠올랐다. 작년 불수레반 수업을 하던 중 청솔반(초등과정) 선생님의 사정이 생겨 합반 수업을 하게 되었다. 그는 그날 불수레반 철학 수업에 들어온 청솔반 학생 중 한 사람이었다. 그날 수업이 끝났을 때 복도에서 내게 물었다. 지금,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는,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그때 나는 두 마리 중 한 마리를 잡아오면 답을 말해주겠다고 했다. 그는 웃으며 철학 수업을 계속 듣게 해달라고 했다. 내 수업이 불수레반이 아니라 전체 선택 수업이 된 계기 중 하나는 분명 그날 청솔반과의 합반 수업이었다. 그런데 내 철학 수업이 잠시 끝나는 이 날, 그는 다시 급습하듯 물었다. 삶이란, 생이란 무엇이냐고.

 

2.

이날 내가 준비한 루쉰의 글은 그가 죽기 한두 달 전쯤 쓴 것이다. 두 편의 글을 읽었는데, 각각 「“이것도 삶이다”…」와 「죽음」이었다. 루쉰이 자신에게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예감하면서 쓴 글인데, 두 편 모두 지난 1년간의 루쉰 읽기를 끝내는 데 적절하다고 생각해서 골랐다.


첫 글 「“이것도 삶이다”…」에서 루쉰은 자신이 오랫동안 앓은 뒤 새롭게 보인 일상에 대해 말했다. 정말이지 한동안은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았고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마디로 말해 무욕의 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했다. 아마도 이런 게 ‘죽음에 이르는 첫걸음’이 아닐까, 그는 그렇게 썼다. 그런데 잠시 몸이 호전되니 물 도 마시고 싶고, 방에 있는 책 더미나 벽에 눈길이 가더라는 것이다. 평소에는 휴식삼아서나 보던 것들, 삶에 별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문득 크게 와 닿았던 모양이다.

 

물을 마시고 음식을 먹고 사랑하는 이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루쉰은 대단한 전사(戰士)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그냥’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사라고 해서 수박을 쪼갤 때마다 ‘조각난 조국’을 떠올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냥, 맛있게 수박을 먹으면 그만이지, 위장 장애를 불러올 생각을 수박에 덧씌울 필요는 없다. 수박 한 조각 편히 못 먹는 사람이 무슨 체력으로 적과 싸우겠는가. “전사의 일상은 매사가 눈물겹도록 감동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도 눈물겹도록 감동적인 부분과 관련이 있다. 그것이 실제의 전사이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루쉰의 급진성에는 초조함이 없다. 그는 단호하지만 묵묵하고, 오히려 단호하기에 여유가 있다.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 평범하고 소소한 것들을 가리키며, “이것도 삶이다”고 말하는 대목은 뭉클하다.


두 번째 글 「죽음」은 그가 의사에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들은 후 유언장을 쓰는 기분으로 짧게 쓴 것이다. 가족에게 일곱 가지 당부 사항을 적었는데, 이를테면 아내에게는 장례를 치르며 돈 한 푼 받지 말 것, 곧바로 관을 땅에 묻어버릴 것, 나를 잊어버리고 각자 하던 일이나 신경 쓸 것, 어린 아들이 재능이 없으면 소소한 일로 생계를 꾸리게 하고 문학가나 예술가 노릇은 하지 말게 할 것 등이다. 그리고 어린 아들을 향해서는 “남이 너에게 해주겠다는 말을 참말로 여기지 말라”든가, “남의 이빨과 눈을 망가뜨려놓고서 보복에 반대하고 관용을 주장하는 사람과는 절대로 가까이 말라”든가 하는 당부를 적었다. 모두 루쉰다운 유언이다. 마지막에는 이런 말도 적었다. 유럽인들은 임종 시에 모든 은원을 정리하며 서로 용서하고 용서를 구한다는데 나는 어찌할까. “결론은 이렇다. 나를 미워하라고 해라. 나 역시 한 놈도 용서하지 않겠다.”이 역시, 루쉰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 두 편의 글을 읽고 나서 나는 학생들에게, 죽음을 예감했을 때 무엇을 하겠냐고 물었다. 영애누나와 유리 씨는 ‘실컷 여행을 해보고 싶다’고 했고, 준수 씨는 ‘해보고 싶은 일을 맘껏 하겠다’고 했다. 의견들이 모두 비슷했다. 가만히 생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사람은 없었다. 사는 동안 해보지 못한 일들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살아왔다’는 말에는 ‘못해본 일이 너무 많다’는 뜻이 담겨있다. 이들 학생들에게 나는, 죽음은 너무나 억울한 일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죽음에 대해 물었는데 이토록 삶에 대한 갈망이 강해서야 원…” 나는 푸념하듯 말했고 모두가 웃었다. 노들의 힘과 의지는 아마도 삶의 이러한 갈망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노들 학생들은 삶에 대한 갈망이 너무 강해서 죽을 때까지 죽음을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 같다.

 

 

3.

사실 종강일에 읽은 루쉰의 글은 그의 마지막 글이 아니었다. 「죽음」의 마지막을 쓰면서 루쉰은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고 “정말 죽을 때는 이런 상념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정말로 그가 마지막에 쓴 글은 「타이옌 선생으로 인하여 생각나는 두어 가지 일」인데 완성되지 못했다. 그는 글을 쓰다가 쓰러졌고 병원으로 이송된 뒤 이틀 후 죽었다.


루쉰의 마지막 글의 주인공 타이옌은 청나라에서 중화민국으로 이어지던 시기의 혁명가이자 학자다. 청나라 정부에 쫓기던 그는 일본으로 피신한 적이 있는데, 루쉰은 일본 유학 중에 그의 강의를 들었다. 루쉰의 마지막 글은 타이옌 선생이 어떤 사람인지도 보여주지만 무엇보다 루쉰이 사람이나 일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를테면 타이옌 선생은 우즈후이라는 인물을 심하게 비난한 적이 있다. 우즈후이는 타이옌 선생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반청운동을 벌이던 사람이었다. 그는 머리에 하얀 붕대를 감고 연설했고(시위 도중 상처를 입었음을 과시하듯), 나중에 중국 본국에 강제 압송되었을 때는 도중에 물에 뛰어들기도 했다. 루쉰에 따르면 타이옌 선생은 그때 우즈후이가 뛰어든 물은 그리 깊지도 않았고 곧 호송경찰들이 건져낼 게 뻔했다고 비난했다고 한다. 타이옌 선생은 그렇게 과시적이고 소란스러운 스타일의 혁명가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던 듯하다(우즈후이는 나중에 국민당내에서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해서 사살한 ‘청당운동’의 핵심인물이 되었다).


이 글에서 루쉰은 타이옌 선생과 더불어 또 한 사람, 나중에 쑨원과 함께 신해혁명을 일으키고 혁명군을 이끌었던 황커창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중에 대단한 혁명가가 된 이 사람은 일본에 있을 때, 반청운동을 벌이면서도 변발을 자르지 않았다고 한다(루쉰에 따르면, 오히려 변발을 자르며 반청운동을 벌이던 유학생들 상당수는 귀국해서는 다시 변발을 기르고 청나라의 충신이 되었다고 한다). 황커창은 소리 높여 혁명을 외치지도 않았고, 무슨 대단한 저항적 기질을 내보이지도 않았다. 루쉰의 기억에 따르면, 그가 저항적 모습을 보인 장면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일본인 학감이 학생들에게 웃통을 벗지 말라고 명령했을 때 그가 세숫대야를 낀 채 웃통을 벗고 목욕탕에서 자습실로 걸어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웃음을 자아내는 풍경, 말하자면 황커창이 웃통을 벗고 자습실로 슬렁슬렁 걸어가는 모습에 대한 묘사가 루쉰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가 이 뒤에 무슨 문장들을 쓰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변발을 자르지도 않았고 혁명을 큰 소리로 외치지도 않았지만 혁명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황커창을 떠올려보면, 루쉰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루쉰은 그 전에도 청원이나 절규, 혈서가 아니라 ‘독하고 매운 침묵’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가르쳐왔기 때문이다.


어떻든 루쉰이라는 위대한 작가의 마지막 문장은 화룡점정, 즉 그림 속 용을 살려낸 대단한 마무리가 아니었다. 웃통을 벗은 채 자습실로 슬렁슬렁 걸어가던 한 남자. 루쉰은 거기까지 쓰고 생을 마쳤을 뿐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세숫대야를 끼고 있는 웃통 벗은 그 남자의 모습이야말로 전사와 혁명가의 진면목이 아니던가. 게다가 이 문장이 ‘완성’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종강의 시간에 무언가 특별한 것을 말하고자 했던 나를 부끄럽게 했다. 왜 그의 마지막 글은 미완인가. 왜 위대한 사상가의 작품들은 미완인가. 그것은 그들이 끝까지 쓰기 때문일 것이다. 끝내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4.
영애 누나는 지난 루쉰 읽기를 회고하며 「행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작품은 ‘끝’에 대한 루쉰의 시각을 잘 담은 글이기도 하다. 어디서 왜 왔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계속해서 걸어가는 행인. 그 작품 속에서 행인은 어느 노인에게 길 앞쪽에 무엇이 있는지를 묻는다. 그러자 노인은 그 앞쪽에는 무덤이 있을 뿐이라고 답한다.


우리도 모두 알고 있다. 우리 인생의 끝은 ‘무덤’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것이 뭐 어떻단 말인가.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우리는 계속 걷고 있으며 이토록 걷고 싶은데 말이다(지금도 어딘가를 걷고 있는 균도 부자처럼, 또 죽음 따위를 떠올리기에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노들의 학생들처럼).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생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는 철학자들은 생에 대한 진실이 아니라 생을 대하는 그들 자신의 태도를 보여줄 뿐이라고. 생이 무엇이라고 거만하게 말하는 철학자들 역시 죽지 않았을 때 그 말을 했다(죽은 뒤에 무슨 말을 하겠는가). 말하자면 그들은 생의 가운데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우리는 모두 ‘생의 가운데’있을 뿐이다. 생이란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살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끝을 관통하는 방식으로만 끝에 이를 것이다.


‘생은 무엇이냐’고 물었던 상연 씨에게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내가 지금 만들어가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생이죠.”그가 웃으며 답했다. 언젠가 그에게 철학수업을 듣게 해달라고 내가 부탁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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