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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단 제시할 수 있는 것들 

 

 

최바름

흘러가는대로,, 살고 있습니다. 근데 그러다보니까 벌여놓은 일조차 잘 처리하지 못하게 되었네요.

벌써 한 해의 반절이 지나갔는데, 나머지 반절은 그러지 않고 싶어요~ 

 

 

 

 

 

a. 차도점거

      차도 점거는 갑자기 시작된다. 아무리 그것이 시작될 것을 미리 알더라도 그것은 갑작스러운 것이다. 휠체어가 인도에서 차도로 나가는, 예외적이고 간결한 행위를 통해 시작되기 때문이다. 단 1m의 이동으로 시작될 수도 있다. 

 

 

image02.jpg

 

 

      정류장 근처에서 속도를 줄인 버스 앞으로 휠체어를 끌고 나가면 버스는 간단히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버스가 후진을 하거나 유턴을 하려고 해도 그때는 이미 시위대가 버스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게 된 후다. 버스는 곧 주변을 둘러싼 시위대 때문에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상황에 따라 버스 기사님이나 승객들과 시비가 붙기도 하고,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기도 한다. 어쨌든 결국에는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버스를 남겨둔 채 떠나게 된다. 버스로 충분히 막지 못한 차도의 나머지는 시위대가 몸으로 직접 채운다. 차도 점거를 예상하는 사람이라도 도로가 어떻게 변할지까지 예상할 수는 없다. 시위 현장의 모습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고정적인 모습을 제시할 수 없지만, 조금씩의 변형과 유지를 반복하며 사진과 같은 모습으로 대략 교착된다.

      경찰은 대개 금방 도착한다. 그리고는 시위대가 다른 차도까지 점거하지 못하도록, 혹은 시위 현장을 도로의 차들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도로 앞뒤에 도열한다. 버스와 충분히 가까이 있는 사람은 버스 밑으로 기어 들어가거나 버스 위로 올라가는 등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도 하고, 경찰은 이를 막기 위해 방패를 들고 버스를 둘러싸기도 한다. 

 

b. 차근차근 발생하는 ‘충돌’

시위 중에는 충돌이 발생하기도 한다. 한 시위참여자는 쇠사슬을 몸에 두르고 버스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 했고, 한 경찰은 그를 저지하려 쇠사슬을 맞잡았다. 쇠사슬을 몸에 감은 시위참여자에게 다른 시위참여자 한명이 더 붙어 경찰을 떼어내려고 했다. 그러다가 이 경찰이 다른 경찰들을 불렀다. "일로 와봐! 빨리빨리빨리와. 빨리 오라고!" 그 밑의 계급일 것이 분명한 경찰들 수십 명이 달려왔고 시위대도 곧장 수십이 달라붙었다. 갑자기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소용돌이의 발생을 보는 것 같았다.

 

      단 몇초만에 그것은 이제 쇠사슬을 둘러싼 몸싸움이 아니게 되었다. 그저 저쪽이 미니까 이쪽도 민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속에서 잠시 떠밀려 다녔다. 가방 안 노트북이 깨지면 어떡하나 생각했다. 고함과 비명이 오갔고, 무엇이 목적인지 모르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목적이 생긴다. 이 힘겨루기를 그만하는 것. 힘겨루기의 초반에는 비명과 고함만 오갔던 것에 비해 몇 분 뒤에는 이제 시위대 측에서 "좀 나와요!" "놓으라고!" "건드리지 마세요!" "경찰분들이 먼저 그만하세요"와 같은 말이 나온다. 경찰들 역시 "그만하세요. 진정하세요!" "뭐 하시는 거에요 안하기로 하셨잖아요" 와 같은 말을 한다. 서로가 이 힘겨루기를 그만둬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소용돌이가 사라지는 것이다.

      당시 상황을 이해 해보자면, 충돌은 시위대와 경찰이 서로를 적군의 이미지로 형상화하며 시작 했다기보다는 쇠사슬을 빼앗는 것이 목적인 경찰과 빼앗기지 않는 것이 목적인 시위참여자 사이에서 쇠사슬을 둘러싸고 일어났다. 시위참여자와 경찰이 점점 불어나며 분위기가 고조된다. 시위대가 가진 쇠사슬이라는 사물을 경찰이 용납하지 않는 과정에서 시위대가 경찰을 밀면 밀려난 경찰에게 다른 시위대가 부딪히고, 경찰이 시위대를 당기면 당겨진 시위대에게 경찰이 부딪힌다. 이 과정이 차근차근, 그러나 빠르게 반복축적되면 결국에는 그것이 충돌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가 된다.

 

 

 

 

image03.jpg

 

 

      쇠사슬로 시작한 작은 밀침과 당김이 충돌 수준으로 올라간다고 해도, 금세 몇 분 뒤에는 양 측 모두 이렇게 힘겨루기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정도 레벨의 긴장을 유지할 만한 이유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 고함과 밀침 대신 ‘건드리지 마세요’와 같은 표현이 등장하며 긴장이 해소된다.

 

 

 

c. 판결

당시 내 옆에 있던 일본 출신 동료는 ‘이러한 형태의 시위는 처음 본다’며 ‘비상상태’라고 느꼈다고 했고, 홍콩 출신 동료는 현장이 너무 ‘평화’로워 ‘갑자기 울고 싶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에 더해 그 때 당시 여러 표정과 반응을 간략히 기록해 놓은 것들을 열거해보면 이렇다.

 

-선비꼬마김밥 노동자분  시위문화에 익숙하지는 않음. 시위가 장사에 방해되는 것 같지는 않음.

-누군가에게 전화하며 지나가던 학생  “저 사람들보다 내가 더 불쌍해. 비장애인만 버스 탄다고 저기 앞에서부터 여기까지 다 저러고 있어. 경찰이 방패 같은 걸로 막고. 개빡치게 하고 있어.”

-방패경찰  무표정.

-주위에서 지켜보는 정보과경찰들  부동산과 육아 등 일상 이야기.

-경찰에게 버스를 어디서 타야 되냐고 물어보는 중년 남성과 젊은 여성  중년 남성은 평온한 표정, 젊은 여성은 짜증난 표정.  

-질문에 대답하는 경찰  무뚝뚝하게 버스는 다른 데 가서 타야한다고만 말해 줌.

-중년 남성 택시기사  자기 때는 더 심했음. 이정도는 시위 하는 것도 아님.

-야쿠르트 아주머니(프레시매니저)  시위 취지는 이해하는데 이런 방법은 좀 곤란하다고 생각.

 

image04.jpg

 

 

      이러한 반응들을 모아놓고 보면 한편으로는 ‘당시의 현장이 판결 내려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튀어나온다. 언제라도 무엇이든 판결 내릴 수 있다는 듯 출석과 벌금을 요구하는 법의 상상과 달리, 그러한 합의는 완료되어 있지 않다. 내가 제시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비상상태였다거나 아닌 평화였다거나 하는 주장이 아니라 일단은 위의 서술 모두일 것이다. 

 

 

추신

      요청받은 3.26, 4.20, 5.18 현장을 하나하나 쓰기에는 역량이 부족했습니다.. 다만 차도점거는 세 현장 모두의 공통점이기 때문에 이 글에 각 현장의 경험이 조금씩은 들어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써봤습니다. – 바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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