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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활동지원사입니다]

중증장애인의 삶을 생생하게 함께 겪는 일

 

 

 

씨앙 | 선배한테 술 한 번 잘못 얻어먹고 연극이라는 세계로 끌려 들어와

한도 끝도 없는 궁핍 속에 궁상떨고 사는 씨앙

 

 

  나는 지난 5~6년 동안 중증 장애인 극단 <장애인문화예술 판>과 연극 작업을 해 왔다. 서너편의 창작극을 만드는 동안 내가 중증 장애인의 삶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항상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연극인으로서 안정적인 알바도 필요하고 중증 장애인의 삶을 생생하게 겪을 수 있는 계기도 필요했던 나는 당연히 활동지원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198, 벼르고 벼르던 활동지원사 교육을 받고 당장 실습을 나갔다. 그리고 까칠한 이용인 A를 만났다. 6개월 정도 함께한 A와의 시간은 내 삶의 어떤 경험보다 생소했다. 지금 이 이야기를 늘어놓자면 한도 끝도 없는데다가 자칫 까칠한 이용인 A에 대한 뒷담화가 될 수 있으니 자제하고 간단한 에피소드 하나만 소개할 생각이다.

 

  어느 날 까칠한 이용자 A가 땅이 꺼질듯 한숨을 쉬길래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전세로 아파트를 구해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주인이 찾아와서 집을 비워줄 수 없겠냐고 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른 집을 정리하게 돼서 당장 자기가 살 곳이 없어 곤란하니 지금 집을 비워주면 이사 비용을 보전해 주겠다고 했단다. 나라면 이사를 했겠지만 A는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 A에게 이사는 정말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A의 이사가 얼마나 고된 역경이고 모험인지 사람들에게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저기 부동산을 찾아다니고(대부분의 부동산은 턱 때문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도 없다), 이집 저집 할 것 없이 장애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설계. 수 없이 많은 계단과 턱, 그리고 편견과의 싸움은 산 넘고 물 건너 몬스터를 물리치는 모험 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끔찍하게 힘든 일이다.

 

  당장 대본 작업에 돌입했다. 1년 전에 구상한 이야기와 딱 맞는 사연이었기 때문에 작업은 일사천리! 전세가 너무 올라 새로운 집을 구하러 다니는 늑대의 이야기. 이 작품에서 집을 구하는 늑대를 차별하는 자들은 흉측한 괴물이 아니라 귀여운 동물들이다. 펭수나 뽀로로를 연상시키는 귀요미들은 계속 즐겁고 신나게 노래하고 춤춘다. 관객 역시 귀여운 동물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신나고 재밌게 즐기는 가운데 늑대만 지치고 힘들어 한다. 관객이 신나게 따라 부르는 노래들을 즐기지 못하는 건 늑대뿐이다. 이 사회는 늑대의 고통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자기 혼자만의 아파트를 장만한 A. 지금은 주인의 이사 요구를 거절했지만 계약이 끝나는 2년 후 나의 친구 늑대(A)는 강제로 고난의 행군을 해야만 하고 이 끔찍한 일을 수없이 반복하게 될 것이다. 좋다고 노래만 부르지 말고 내 친구를 위해, 우리가 함께 살기 위해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개봉박두! 2020년 여름

<장애인문화예술 판>

 

 

우리 동네 왜 왔니

(늑대를 위한 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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