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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아 안녕]
‘시원섭섭’보단 ‘시원불안’하달까

정민구 


응답하라 2006

제대하고 학교에 복학했다. 난 오래된, 나이 많은 복학생이 되었고 내 이름 뒤엔 언제 붙었는지 모를 ‘옹’자가 붙어 있었다. 군대라는 이름의 수용소에서 나오니 무한 조증에 사로잡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세상에 그런 효자 또 없던 시절이었다. 무엇이든 해야만 했기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봤다. 우연한 기회에 시범사업 중인 활동보조인 제도를 알게 됐고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보조인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활동보조를 하게 된 사람은 현재 현수막 공장에서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대식이였다. 당시 대식인 노들야학 학생으로 불수레반에서 공부 중이었는데 명실상부한 불수레반 에이스. 아니, 노들야학에서 공부를 가장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었다. 그는 근육장애가 있어 서 내가 옆에서 책장을 넘기기도 하고 필기도 대신해야 했다. 난 그렇게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계기를 통해 노들야학 수업을 듣게 되었다.

하루는 좌모 교사의 수학수업 시간이었다. 수업시간에 늦게 들어온 그는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한 표정이었고 언뜻 보면 우왕좌왕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말하는 속도도 엄청 빨랐다. 분수 개념을 설명할 때의 일이다. 짧은 분필 하나를 집어 들더니 힘겹게 반으로 쪼갠다. ‘2분의 1’을 설명한다. 그리고 분필을 더욱 힘들게 다시 반으로 쪼갠다. ‘4분의 1’을 설명한다. 분필 부러트리느라 얼굴이 벌게지고 팔이 부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며 학생분들이 까르르 웃는다. 나 역시 웃으며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곳에 함께 있고 싶다.’

2006년 4월. 야학 에이스 대식이가 검정고시를 보는 날이다. 다들 대식이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야학에서 보기 드문 모범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날 술을 많이 마시고 인사불성이 된 나는 대식이를 제 시간에 시험장에 들여보낼 수 없었다. 결국 1교시 과목인 ‘국어’시험을 아예 볼 수 없었다. 대식이와 어머니께 너무 죄송해서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른다. 대기실 한쪽 구석에서 시무룩해 있던 나에게 홍모 교사로 추정되는 사람이 다가와 위로해 주며 던진 한마디에 난 9년 동안 야학에서 수업을 하게 된다.

“괜찮아요. 뭐 그럴 수도 있지. 8월에 국어 시험만 보면 돼요. 정 그렇게 미안하면 야학 교사를 하던가.” 그렇게 해서 이듬해인 2007년 3월 야학에서 교사를 시작했고 같은 해 10월 상근활동까지 하게 됐다.

응답하라 2008

노들야학은 2007년 12월 31일자로 정들었던 정립회관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마로니에 공원에 천막을 치고 2008년 1월 2일부터 100일 정도 천막야학을 했다. 낮에는 장애성인의 교육권 확보를 위한 선전전, 기자회견, 집회를 하고 밤에는 수업을 했다. 그리고 돌아가며 천막에서 숙식을 했다. 한겨울에 천막 안에서 잠을 자면 아무리 온몸을 꽁꽁 동여매도 코가 너무 시리다. 아침에 동태가 된 몸을 추슬러 근처에 있는 오모가리 김치찌개를 먹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천막야학이었다. 대학로에서 술 먹다가 천막에서 노숙인분하고 다툼이 일어났다는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뛰쳐나갔던 일, 한밤중에 발전기에 불이 붙어 119 소방차가 출동했던 일 등 하루하루가 시트콤의 연속이었다. 사실 시트콤 같은 하루는 그 이후에서 계속된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밤이 됐고 술 한 잔 걸치면 이불 속이다. 그때 우리의 밤은 그 누구의 낮보다 길었다.

그렇게 노들은 내 인간관계의 전부가 되었다. 아니, 내 모든 것이 되어갔다. 그런 노들을 그만둔다고 하니 누군가 내게 물었다. “그렇게 청춘을 다 바쳤는데, 시원섭섭하겠어요?” 질문에서 두 가지가 잘못됐다. 먼저 청춘을 다 바치지 않았다. 청춘을 바쳤다는 말 속에 헌신이나 희생이 전제돼 있다면 난 ‘청춘을 바쳤다’기 보단 ‘청춘을 즐겼다.’ 내 주변을 아무리 둘러 봐도 나보다 청춘을 즐긴 사람 찾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시원섭섭’하지 않다. ‘시원불안’하긴 하다. ‘시원’의 의미는 내 앞에 백지로 남아 있는 2016년에 무슨 그림이든 그릴 수 있어 시원하고 같은 의미에서 불안하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짧은 내 인생을 뒤돌아보면 서른 살까지는 종종 상상해 봤던 것 같다. 하지만 마흔은 내 인생에 없던 숫자이다. ‘노들’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니 마흔이라는 숫자가 눈앞에 턱하니 나타났다. 마흔이 주는 무게감이 크게 느껴진다.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어떤 삶을 살아갈지 모르겠지만 딱 한 가지 확실하게 아는 게 있다면 9년 동안 노들이 선물한 나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부끄럽지 않은 노들인으로 남겠다.

A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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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왼쪽의 안 좋은 표정은 김도현, 오른쪽이 정민구. 2015년 노란들판의 꿈을 준비하던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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