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겨울 103호-나의 장애와 마주하다
나의 장애와 마주하다
장애인미디어아트 「너그들」 이야기
-센터판 민경
나에게는 두 번째 장애인미디어아트 공연인 「너그들(너의 그림자가 들려)」을 마치고 조금씩 그 여운에서 벗어나고 있을 때쯤 유미 선생님에게서 카톡이 날아왔다. ‘민경 씨, 『노들바람』에 글 써주세요. 「너그들」 공연이야기요. 제가 본 민경 씨 연기가 인상 깊어서요.’ 얼떨결에 쓴다고는 대답을 했지만, 난 내 연기가 뭐가 인상이 깊었다는 걸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왠지 어색해서 물어보지는 못한 채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너그들」은 작년의 「꼴」이란 공연과 마찬가지로 장애인 자신들의 이야기를 꼴라주 형식의 연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다만 「꼴」은 본인들의 이야기를 객관화하거나 각색하지 않은 채 온전히 전달하고자 했다면, 이번 「너그들」은 본인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였지만 일정한 각색을 통하여 좀 더 작품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을 하였다는 점이 달랐던 것 같다. 작년 「꼴」 공연의 주제는 ‘나의 몸’이었다. 장애에 대한 내 마음속의 갈등을 은아 언니와 함께 몸의 움직임으로 표현했었다. 그때 정말 많이 힘들어했던 기억이 난다. 말로는 나의 장애와 직면하기 위해 선택을 했다고 했지만 그게 쉽지는 않았다. 막상 내 몸의 움직임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려니 겁이 났다. 장애인문화예술판의 공연 「공상의 뇌」 작품에서 겪었던 힘든 기억을 풀어내고자 했던 것이었는데, 아직 나의 장애를 정면으로 바라보기에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시간이 마냥 나를 기다려주지는 않고 공연은 올려야 했기에, 힘듦을 참고 공연에 임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나 자신도 「꼴」이란 작품을 온전히 인정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올해 다시 격주 일요일마다 작품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하게 되었다. 초반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중증도 경증도 아닌 애매한(?) 장애를 지니고 있는 나의 현실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활동보조서비스를 필요로 하지만 받지 못하는, 중증장애인들보다 표현이 자유롭지만 그렇다고 장애가 경하다고는 할 수 없는 내가 있었다. 그렇지만 난 올해는 되도록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마음 때문이었는지 워크숍에 빠지는 일도 있었고 종종 시간을 어기기도 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다른 팀원들에게 많이 미안하다. 이글을 통해 죄송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특히 총연출을 맡은 분에게 더 미안한 마음이다.
그렇게 슬렁슬렁 워크숍에 참여했지만 작품의 내용을 논의하던 과정에서 내가 겪었던 일을 글로 써가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다시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처음엔 나 대신 나리에게 혼자 연기를 하라고 제안을 하기도 했다. 조연출인 라나가 같이 참여하여 나와 나리의 경험을 일정한 흐름을 지닌 이야기로 만들어 주고 노래 가사도 다듬어 주었다. 작품을 보면 화상을 입고 옷을 갈아입는 장면부터 이야기의 전개가 바뀌게 된다. 이러한 전환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표현을 할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결국 2인 1역을 하기로 결정이 났다. 나의 경험인 화상 입는 장면은 내가 직접 연기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난 다음 부분부터는 나리가 하기로 말이다. 연습을 하면서 감정이 잘 잡히지 않아 알게 모르게 많이 위축되고 겁도 났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노래도 불러야 하는데, 연기와 노래를 동시에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너무나 컸다. 내가 누구나 다 아는 박치이기도 학고, 내가 노래를 부르는 부분은 나리가 연기를 했던 가사여서 감정을 이입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그리고 다른 작품들보다 우리 작품이 왠지 작고 초라하게 보이는 것 같아 마음 한 편이 씁쓸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공연 날짜가 다가왔다. 공연 전날, 리허설을 하는 동안에도 무대 동선을 맞추고 수정하는 작업이 반복되었다. 리허설을 하면서 나리가 옷 갈아입는 장면을 무대 뒤에서 정확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연습 기간 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올라오고, 내가 하나라도 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나리는 자신을 열심히 표현하는 것 같았다. 드디어 떨리는 첫 공연 날이 되었다. 첫 공연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노래를 겁나게 못했다는 것, 웨딩드레스를 갈아입을 때 무지 힘들었고 나리가 옷 갈아입을 때 도와주고 싶었다는 것, 그리고 수경 언니의 울음에 좀 놀랬다는 것 등이다.
둘째 날 공연이 올라가기 전 리허설을 하는데 나리가 옷을 갈아입는 장면에서 평소보다 더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나리가 어깨에서 말린 옷을 못 내리는 것이 이상하게 신경이 쓰여 그러면 안 되지만 “잠깐만요, 끊어서 갈게요.”라고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나리에게 약간 화를 냈던 것 같다. 나리야~ 정말 미안. 그렇게 리허설을 마치고 본 공연에 들어갔다. 수경 언니의 작품을 보다가 언니가 울먹이는 모습에 눈물이 났다. 그 다음이 내 차례였기 때문에 급하게 마음을 추스르고 무대에 올랐다. 내가 연기를 맡은 부분이 끝나고 나리의 부분이 시작되었는데, 조마조마한 마음에 곁눈질로 슬쩍슬쩍 보니 다행히 리허설을 할 때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옷을 갈아입었다. 나리의 연기도 끝나고 노래를 부르는 부분으로 넘어갔다. 나리가 노래를 부른 후 다시 내 순서가 되었다. 무대 앞으로 나서며 노래의 시작과 동시에 나리를 쳐다보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참으려 할수록 더 흘러나오는 눈물 탓에 안 그래도 못 부르는 노래를 더 망치고 말았다. 그렇게 두 번째 공연에 이어 마지막 공연까지 어쨌든 무사히 끝마치게 되었다.
공연 뒤풀이 시간에 사람들이 내가 울었던 이유를 많이 알고 싶어 했다. 내가 울었던 이유는 여러 감정이 뒤엉켜 한꺼번에 터져 나왔기 때문인 것 같다. 나리가 연기하는 부분에서 혼자 옷을 갈아입을 때, 그 힘들어 하는 모습이 나를 떠올리게 했다. 웨딩드레스를 갈아입을 때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다보니 미안함과 고마움도 있었지만 왠지 모를 서러움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앞 무대에서 수경 언니의 울먹임도 한 몫을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이번 장애인미디어아트는 나의 몸과 장애를 새롭게 마주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