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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 비인간 동물도 함께

‘시설을 나온 몸들: 동물×장애 탈시설 토크’ 기획 후기

 

 

 보리

노들야학에서 생계 노동을 하고 새벽이생추어리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혹은 죽임당한 동물들과 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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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14일, 새벽이생추어리와 경계를뛰어넘는동물들이 공동 주최한 ‘시설을 나온 몸들: 동물×장애 탈시설 토크’가 있었습니다. 인권·동물권 기록활동가 홍은전이 사회를 맡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임소연, 새벽이생추어리 보리가 패널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실 이번 토크의 기획은 탈시설 운동 당사자들의 말을 들으면서 생추어리가 시설이 아닐까 의구심을 가졌던 경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서 마로니에 8인은 시설에서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아침에 밥을 먹고 해가 채 지지 않은 저녁에 잘 준비를 하고, 매일을 같은 자리에서 현관 밖을 지켜봤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좋은 시설은 없다고 외칩니다. 축산업과 제약 산업에서 탈시설하여 생추어리에서 살고 있는 새벽이와 잔디는, 인간들이 밥을 주는 이른 아침 시간에 밥을 먹고 인간들이 돌봄을 마치는 이른 저녁에 잘 준비를 하고, 종종 울타리 밖을 내다보곤 합니다. 그러면 좋은 생추어리는 없는 걸까요? 물론 새벽이와 잔디는 빨리 밥을 달라고 소리를 내면서 의사표현을 하고, 생추어리 안에서 자기가 원할 때 집에 들어가 이부자리를 정리하지만, 새벽이와 잔디가 언제 밥을 먹을지는 돌보는 인간이 정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새벽이는 생추어리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잔디는 산책을 하지만, 잔디가 가는 경로를 활동가들이 통제할 수 있어서 가능한 일입니다.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의 연극 「빛나는」에서는 시설에 살던 장애인이 시설을 탈출하자 시설 관리자가 허둥대며 장애인을 쫓아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새벽이가 예전에 울타리를 뛰어넘었을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새벽이는 신나게 주변을 탐색했습니다. 하지만 동물원을 탈출한 동물들을 생각해 보면 민가에 내려간 대형 동물의 끝은 죽음이기 때문에 돌보는 인간들은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다행히 새벽이가 새로운 곳보다는 자신을 유인하기 위한 먹을 것에 더 맘이 동했기 때문에 무사히 돌아왔지만, 새벽이의 호기심이 커진다면 민가까지 내려갈 수 있기 때문에 상근 활동가들은 울타리를 높이기로 결정했습니다. 누군가의 호기심을 위험으로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슬픕니다. 돌보는 이들은 종종 새벽이는 힘이 세서 마음만 먹으면 나갈 수 있지만 우리를 봐주고 있는 거라 말하곤 합니다.

 

  누군가는 생추어리와 시설을 나란히 두는 것은 새벽이와 잔디의 수많은 동족이 죽임을 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너무 가혹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후원자들의 돈을 한 푼 두 푼 모아 겨우 만들어낸 생추어리라는 곳마저 살처분의 위협으로 위치를 꽁꽁 숨기고 있는 마당에, 이런 말은 사실 돌보는 이의 과한 죄책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떤 몸들을 시설에 가두는 사회는 시설 밖에 있는 몸들이 머무는 곳마저 시설처럼 만들기 때문에 이 대목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생추어리가 안전하고 지속가능하고 더 좋은 생추어리가 되기 위해서 법 개정과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고, 더 나아가 새벽이가 평생 갈 수 있는 공간이 생추어리로 한정되지 않고 밖을 드나들면서 생추어리가 정말 집이 되기 위해서는 온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걸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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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던 중 홍은전 님이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아래 발바닥행동) 초기 활동가들을 인터뷰한 글을 보았고, 투쟁을 통해 제도가 갖춰지기 전 장판의 상황이 지금의 새벽이생추어리나 동물권 운동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물권 운동을 하는 저조차도 비인간 동물들이 조직적으로 대량 학살당하는 거대한 현실 앞에서, 죽이지 말라는 구호를 넘어 생추어리를 위한 더 구체적인 의제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개별적인 대응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벽이생추어리보다 앞서 맨바닥에서 투쟁을 통해 제도를 만들어낸 활동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운동이 이렇게나 닮은 점이 많다는 것을 장애운동에게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과 비인간 동물 당사자를 만나고, 관점을 바꾸고, 당사자를 가둠으로써 이익을 얻는 거대한 기득권과 싸우고, 당사자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려면 필요한 구체적인 것들을 모색하고, 이를 제도화하여 권리로 보장하는, 장애인 탈시설 운동의 긴 역사와 동물권 운동의 현재와 앞으로의 과제를 나란히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비인간 동물을 지칭할 때 인간 동물을 지칭하는 용어인 ‘사람’을 쓸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우리는 인간 종에 속하지만 개인을 지칭할 때는 인간이라고 쓰지 않고 사람이라고 지칭합니다. 그렇지만 돼지 종에 속한 개인을 지칭할 때는 돼지라고 지칭합니다. 용어를 다르게 사용하는 데에서 어색함을 느껴서 일부러 사람이라고 지칭하고자 했습니다. 시설에 갇힌 사람들의 환경은 인간과 비인간 모두 열악합니다. 화장실과 생활공간이 분리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좁은 공간 안에 수용하고 있으며, 갇힌 사람들은 이름도 붙여지지 않은 채 개별성을 존중받지 못하는 등 동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삶의 조건을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 있는 당사자들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외부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발바닥행동은 시설 양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시설 인권 실태조사를 하면서 당사자들을 만나고 시설 자체가 문제적이라는 것을 밝힙니다. 동물권 활동가들은 도살장 앞에서 비인간 동물들을 만나고 이들을 애도하고 기록하여 세상에 알립니다. 차이가 있다면 조사를 진행한 사람들은 조사원의 권한으로 시설 안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동물권 활동가들은 사유지인 농장과 도살장 안으로 접근할 수 없고 도살장으로 향하는 트럭이 정차해 있을 때 잠깐 당사자들을 만날 뿐입니다. 당사자들을 만난 활동가들은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누구도 시설에서 살면 안 되고 이 죽음들은 부당하다고. 그리고 당사자와의 만남은 당사자의 탈시설로 이어집니다. 비질을 하던 동물권 활동가들은 불법을 무릅쓰고 새벽이를 구조했고, 시설 실태조사를 하면서 만난 꽃님 씨는 활동가에게 전화를 걸어 시설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합니다.

 

  정부, 시설 운영자, 가족, 시민, 네 주체의 침묵의 카르텔이 장애인을 시설에 가둡니다. 마찬가지로 정부, 기업, 소비자인 시민이 축산업과 동물 착취 산업을 지속하게 만듭니다. 거대한 기득권이 설계한 죽음의 경로에서 이탈하여 공간을 이동한 당사자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집, 활동지원, 소득이 필요합니다. 새벽이생추어리는 새벽이와 잔디에게, 큰 초기비용이 들어가는 집, 돌봄 활동가들의 돌봄, 후원자들의 후원으로 꾸린 생활비를 지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시민들의 자발적인 활동과 후원에 기대고 있습니다. 활동가들이 꽃님 씨의 활동지원을 하면서 지원 체계의 필요성을 느꼈듯이, 새벽이생추어리 활동가들도 탈시설한 이의 삶이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하려면 지원 체계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정부가 장애인 시설에 지원하는 돈을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비용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정부가 축산업에 지원하는 돈을 생추어리를 지원하는 비용으로 전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 지금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비용이고, 효율보다 존엄, 착취보다 공존을 택하는 관점의 전환이 중요합니다.

 

  동물 착취 산업을 생추어리로 전환하면서, 비인간 동물을 이용하기 위한 지식이 아닌 비인간 동물이 잘 살게끔 하기 위한 지식과 의료 체계 또한 갖추어나가야 합니다. 국가는 농장 동물이 더 빨리 살찌고 더 많은 젖을 만들도록 종을 개량하기 위해 많은 세금을 들이고 있습니다. 다리에 비해 비대해진 몸집을 가진 농장 동물은 시멘트 바닥과 분변에 넘어지기 쉽고, 넘어져서 다친 동물은 치료하지도 않고 바로 도살합니다. 비인간 동물을 착취하기 위한 지식은 비대하게 발달되어 있지만 비인간 동물의 건강을 위한 지식은 전무한 상황에서,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와 달뜨는 보금자리(생추어리)는 다친 거주민을 떠나보내야 했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새벽이생추어리 활동가들 또한 새벽이와 잔디가 아픈 기색을 보이면 최선을 다하지만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하곤 합니다. 열악한 환경과 부족한 지식, 비싼 의료비 등으로 거주민을 떠나보내게 되었을 때 돌보는 이는 자책을 하기 쉬운데, 이러한 자책의 화살을 사회로 돌려야 합니다.

 

  탈시설한 당사자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지원과 지원 체계뿐만 아니라 법 개정도 필요합니다. 정부는 가축이 전염병에 걸리면 전염병이 발생한 농장을 중심으로 반경 500m는 즉시 살처분, 반경 3km는 예방적 살처분을 합니다. 한국은 살처분을 피할 땅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농장이 많이 있는데, 생추어리도 살처분 정책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서 새벽이생추어리는 위치를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의 살처분 정책은 생추어리의 존속조차 운에 맡기게 하고 있고, 생추어리가 지역사회와 관계 맺을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최근 이탈리아에서는 방역 당국이 생추어리 안으로 들어와 돼지들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우리가 우려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에 충격을 받았고, 저에겐 이름과 얼굴을 아는 사람의 살해당함은 비질에서 잠깐 만나는 사람들의 죽음보다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살해당한 돼지 중에는 열여섯 해를 산 노년의 돼지도 있었습니다(돼지의 자연 수명은 15~20살이라고 합니다.) 간신히 살아남아 늙어갈 권리를 얻었던 사람을 한 번 더 죽이는 건 너무 분하고 원통한 일입니다. 돼지라는 종이라는 이유만으로 시설 안의 돼지, 멧돼지, 인간의 보호 아래에 있는 돼지 등 모든 돼지들을 살해하는 국가 폭력을 멈추어야 합니다. 새벽이생추어리의 돌봄 활동가들과 시민들은 지난 11월 11일 살처분 정책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주최했고 앞으로도 살처분 정책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해 나갈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좋은 생추어리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지원과 법 개정 등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생추어리 또한 인간 관리자가 운영하는 제한된 공간입니다. 시설 밖의 장애인들이 집에만 있지 않고 배우고 일을 하면서 사회생활을 하려면 지역사회가 바뀌어야 하듯이, 새벽이와 잔디가 생추어리를 집 삼아 생추어리 근처에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으려면 지역사회가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전국에 지역 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수많은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인야학이 조직되어 있습니다. 생추어리가 하나 둘 생겨나고 있는데, 생추어리들의 경험과 고민을 모으고 공동의 요구를 조직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슬로건,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 그 세상에 비인간 동물도 함께였으면 좋겠습니다. 모두의 해방이 이루어진 세상을 용감하게 함께 상상하고 싶습니다. 흔쾌히 기획에 참여해주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임소연, 인권·동물권 기록활동가 홍은전, 그리고 모든 스텝분들과 자리해주신 관객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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