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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등장한다. 짜잔! 

 

 

 

 임미경

짜잔!하며 웃는 사람. 연극과 훌라를 (  )합니다. 노들장애인야학 활동가

 

 

 

 

  우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등장하며 살아가는 세상을 꿈꿉니다. 모두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조금씩 애써서 서로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내미는 손은 함께 안전하고 즐겁게 머무를 수 있는 장소, 반갑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을 조금씩 늘려가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를 담은 몸짓입니다. 

 

‘나’의 몸과 움직임으로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우리 함께 짜잔해요! 짜잔!

(월간 짜잔잼 소개글)

 

  등장연습모임 짜잔은 오랜 시간 장애인 거주시설에 살다가 탈시설하여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한 11명의 발달장애인을 주축으로 하는 컨택즉흥 춤 모임입니다. 

 

  ‘등장연습모임 짜잔’은 2022년 노들야학 낮수업 탈탈탈반의 전체 프로그램을 담은 공연 <등장인물>의 연출을 맡은 신재(죠스)가 공연을 준비하면서 탈탈탈과 일상 활동을 같이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해요.

 

  처음에는 분반하여 5명으로 시작했다가 2024년부터 합반하여 지금은 매주 금요일 오후 교실2,3,4에 모여 탈탈탈반 전체 11명과 비장애인 강사, 활동가 7명이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몇몇의 체조를 따라 하고 즉흥 연주와 함께 각자의 고유한 움직임을 나누고 합치면서 매번 비슷한 듯하지만 늘 조금씩 새로운 등장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자원교사로 저녁에 수업하던 2022년도 봄에 한 번 참관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지금같은 움직임 수업이라기보다는 사회에서 기대되어지지 않는(?) 새로운 장소에 짜잔하고 등장하기도 하고 일상에서 스스로의 몸을 탐구하고 감각하고 그림이나 여러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해보는 수업이었던 것 같았어요. 그날 주제가 ‘나에게 소중한 것’(‘좋아하는 것’이었나? 하여튼....)을 소개(보여주기)하는 시간이었는데 저는 재*님과 짝궁이 되어서 재*님이 소개 해주기를 기다리는데 스윽 바깥으로 나가시더라구요. 그래서 혹시라도 놓칠 지 몰라 손을 잡고 같이 나섰는데 어떤 것을 소개해주고 싶냐고 계속 여쭤보는데도 그냥 말없이 손을 잡고 마로니에 공원을 가로질러 지하철역 근처까지 가시더라구요. 순간 제가 재*님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도 없고 다른 강사님이나 지원자도 없다 보니 전년에 다른 수업에서 갑자기 야학을 탈출(?)하셨던 어떤 학생분이 생각나면서 덜컥 겁이 나고 손에 진땀이 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재*님께 다른 곳에 멀리 가지 말고 다시 야학으로 돌아가서 야학 주변에서 찾아보자고 했더니 잠깐 쳐다보시고는 선뜻 뒤돌아서 가시더라구요. 다시 마로니에 공원을 가로질러 야학까지 돌아오는 시간이 왜 그리 길게 느껴지던지... 입구에서 다시 교실로 들어가시지는 않고 화단에 걸터앉으셔서 옆에 있는 작은 나무와 저를 번갈아 쳐다보시더라구요. 봄날의 햇볕이었는데도 내 머리위가 너무나 뜨겁게 느껴졌던 날이었어요.

 

  2023년도는 야학에서 월간 짜잔잼이 열릴 때마다 찾아가 신나게 같이 춤을 추기도 하고 10월 성미산마을극장에서 하는 공연을 볼 때는 한 분 한 분의 움직임에 감탄하기도 하고 끝내 무대에 안 나오시는 분은 제목 그대로 짜잔~하고 등장하실 거라고 숨을 참고 기다리기도 하면서 언젠가는 나의 움직임도 좀 더 길게 이 분들과 연결되면 좋겠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2024년도 합반한 짜잔에 드디어 참여를 하게 되면서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안부 묻기, 체조 동작 제안하고 따라하기, 즉흥 움직임을 하는 지금의 루틴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갑자기 늘어난 인원에 따른 환경의 변화가 힘든 것 같아서 안부 묻기, 체조 시간, 동작 탐구 시간을 인원을 반으로 나누어 다른 공간에서 연습하다가 다시 다같이 모여서 차례대로 그 날의 고유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등 따로 또 같이 연습시간을 갖기도 하고요. 바다를 주제로 한 여러 동영상을 같이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면서 여러 동작을 주고 받았어요. 깊은 바다 속 또는 바닷가 등에서 채집된 소리나 음악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것들을 표현해보기도 하고요. 

 

  그러다 6월 아르코미술관에서 <여기 닿은 노래>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월간 짜잔잼 공연을 하고, 8월에는 서울변방연극제 오픈 프로그램으로 서울연극센터 1층에서도 월간 짜잔잼 공연을 하고, 12월에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도 <어떻게 나에게 빨강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월간 짜잔잼을 하게 되었어요. 

 

  어떻게 보면 우리는 점점 야학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짜잔!하고 등장하는 연습을 하고 돌아오고 있는 것 같았어요. 거리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낯선 환경, 처음 보는 관객들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우리가 연습하던 대로, 때로는 그 이상으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돌아오는 탈탈탈팀! (오히려 관객을 의식하고 즐기시는 듯) 

 

  2025년 4월에는 신재(죠스) 연출에게 의뢰가 들어와서 아르코예술극장 로비에서 우리의 짜잔을 보여줄 수 있었어요. 미술관이나 대극장 같은 소위 문화 예술의 생산과 소비, 향유의 정점을 이루고 있는 공간, 최중증장애인들의 출현이 낯설게 느껴지고 오히려 그 등장이 전혀 기대되지도 않는 공간의 맨 처음을 맞이하는 입구에서 짜잔! 하고 등장해 마음대로 휘젓고 춤을 출 수 있다니! 정말 신나고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어요! 

 

  6월에는 우리나라 탈시설의 산 역사이자 증인인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의 20주년 전시장에서 짜잔잼을 했고, 8월에는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접근성 워크숍>에서 외부 예술인 참가자들과 4주(4회)의 연습을 하고 9월 첫째 주에 대학로예술극장 1층 씨어터광장(“로비”)에서 또 짜잔잼을 했어요. 

 

  이 워크숍은 그동안의 짜잔에 비해 가히 실험적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기도 했어요. 

 

  짜잔잼 말미에 관객을 초대해 다같이 추는 공연 순서상의 짧은 시간이 아니고 익숙한 야학이 아닌 낯선 공간에서 더군다나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같이 춤까지 춰야 한다니! 그나마 그것도 네번만 연습하고 다시 또 낯선 광장(로비)에서 공연까지 해야만 한다니! 

 

  짜잔!을 하면서 우리가 등장하는 거리와 공간을 조금씩 넓혀오던 것을 넘어 낯선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 보이지 않는 시간의 영역까지 넓혀가야 한다는 이 과제가 살짝 겁이 나기도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걱정과 달리 등장연습모임은 이 변화에도 잘 적응해나갔어요. 물론 예상과 기대를 벗어나 다른 짝꿍으로 바꾸거나 하신 분도 있지만요. ㅎㅎ. 사실 매 회차마다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는 순간들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낯선 스튜디오를 가는데 마지막 관문인 오래되고 좁은 엘리베이터가 너무나 느려서 외려 무서웠고 중간에 멈추고 작동을 안하질 않나 전동휠체어 한 대에도 출렁거려서 추락할까 불안한 적도 있었어요. 첫날 갑자기 드러누워 끝날 때까지 아주 편안하게 푹 주무시던 분도 있었고, 갑자기 지지난주 다른 수업에서 있었던 서운했던 사건을 떠올리며 대성통곡하고 울면서 참여를 안하시는 분도 있었고 평소 의사소통이나 춤출 때 너무나 잘 하시던 분이라 별 무리없이 춤 실력을 보이실 것 같았던 분이 외부 예술인 참가자를 계속 외면하고 같이 안추겠다고 하실 때도 헛땀이 났어요. 하지만 2회차, 3회차, 4회차 연습을 더 할 때마다 달라지는 순간 순간들이 미세하게 쌓여 변화하는 시간이 보였어요. 우리끼리 할 때는 어떻게 보면 상대의 몸짓에 익숙해져 잘 안다는 이유로 시도를 안해보았던 새로운 동작을 새로운 참가자들과 함께 만들어내기도 하고,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이름을 부르며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내 귀에 문제적으로 들리는) 문제성 발언이 여과없이 훅 들어올 때는 섣불리 문을 열었나?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지 못한 거는 아닌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야학이라는 공간을 넘어 우리 모두가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범위를 넓혀나가려면 간혹 발길에 채이는 작은 돌들은 툭툭 집어던지고 바깥으로 한 발 더 나아가 손을 뻗어야 된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우리끼리만 지내던 집이 조금 넓어지고 크기와 모양과 색깔이 제 각각인 창문들 여러 개가 여러 방향으로 더 달리고 열려서 그 창문들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과 보이는 풍경이 다양해지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돌이켜보면 매번 별다를 게 없이 안부를 묻고 체조를 하고 되풀이되는 연습을 통해 다음 동작을 만들어가고 또 그 다음 동작으로 이어지던 지난 2년 동안 저도 조금, 아니 어쩌면 좀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보다 더 오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발 끝에서 떨어지지 않는 그림자가 되어 나란히 걷기도 하고 내가 지지하고 지탱해주고 싶은 만큼 짝꿍에게 내 몸무게를 실어 한껏 기대기도 하고요. 

 

  덕분에 짜잔하는 날은 늘 즐겁습니다. 짜잔!하는 날이니까요!

 

  다음엔 좀 더 멀리 나가서 또 짜잔!하고 등장하고 돌아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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