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가을 143호 -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20주년을 기념하여 / 불구덩이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1)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20주년을 기념하여
불구덩이 조상지, 이수경, 서한영교, 동녘
정리 서한영교
1
(노래) 어젯밤 꿈속에 나는 나는 날개 달고
구름보다 더 높이 올라 올라 올라 올라
올라 올라 올라 올라 올라 올라
떨어져 죽는 꿈을 꾸었다
2
꿈에서 깨어나 보면
죽어가는 죽음만 있어서
죽어서야 이곳을 나갈 수 있어서
죽어야지만 이곳을 나갈 수 있어서
죽는 꿈만 꾸는 것도 지겨워서
기도, 라는 걸 했다
3
천사가 칼을 들고 내려와 나를 찔러 죽여주길
천사가 창밖으로 나를 내던져 죽여주길
기도했다
4
하지만 천사는
(노래) 구름보다 더 높이
더 높이 더 높이 더 높이 더 높이
(낭독) 더 높은 곳에서만 살아서
이곳 시설에서는 살지 않아서
나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기도할 수 없어서
5
그런지, 천사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6
그래서, 기도하는 대신 두드렸지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렸지
침대를 두드렸지/창문을 두드렸지/벽장을 두드렸지
“굳게 닫혀 있던 시설문을”(최용걸) 두드렸지
“죽을 때까지 안 바뀔 것 같”(이규식)은 시설 담장을 두드렸지
“인간은 어디까지 인간답지 않을 수 있는가?”(송효정) 떠올리며 두드렸지
두드리며, 외쳤지
7
여기, 사람이 있다.
여기, “지옥 속에 갇힌”(정민구) 사람이 있다.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여준민) 사람이 여기, 있다.
“갇혀, 격리되고, 착취와 폭력을 당하는”(박숙경) 사람이 여기, 있다.
8
당신과 같은 사람이,
“나와 같은 사람이”(최재민) 있다
여기, 있다
9
발바닥에 붙은 불을 끄듯
(노래) 이리저리 나를 찾는 발걸음 소리
발꿈치를 들어 올려
(노래) 이리저리 나를 찾는 발기척 소리
이리저리 나를 찾으며
10
안에 있냐고
거기 있냐고
문을 열라고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리며
“사람들을 비집고 높은 계단을 온몸으로 기어오르며”(전유리)
“내가 앞장설 테니까 날 따라오면 된다”(이규식)라며
“마지막 시민을 향한 걸음”(발바닥)을 멈추지 않고
11
세계 끝 지옥을 뒤지는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네 걸음, 다섯 걸음, 여섯 걸음, 일곱 걸음, 여덟 걸음, 아홉 걸음, 열 걸음, 열한 걸음, 열두 걸음, 열세 걸음, 열네 걸음, 열다섯 걸음, 열여섯 걸음, 열일곱 걸음, 열여덟 걸음, 열아홉 걸음, 그리고 스무 걸음,
12
어느새 두꺼워진 발걸음이, 발바닥이, 있다.
13
그래, 우리
14
세계를 “펄펄 뛰게 만”(조아라)드는 투쟁하는 인간이 되었으면 해
“모진 공격에도 불구하고, 한 발 한 발 앞으로”(박옥순) 나가는 용기였으면 해
“또 다른 세계를 향한 시도들”(김정하)이었으면 해
“버벅거리면서도 비틀거리면서도”(여민준)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이었으면 해
15
“아무리 탈시설을 욕하고 발바닥을 비웃어도”(문혁)
“삶이 짓밟힐 때에도”(김재환)
16
“간절한 눈빛과 뚝심”(이정하)으로
“힘차게 버텨주고 여전히 계속”(송효정)
“곁을 지키며 함께” (최주영)
17
“기쁘고, 버겁고, 슬프고, 가슴 벅”(조아라)차게
“동료들과 춤추며”(김정하)
“아픔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게”(황선원)
18
“더 튼튼한 미래”(이정하)를 향해
19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조금 조금씩 개미처럼 느리지만 조금 조금씩”(발바닥 홈페이지)
“더 멀리 더 많은 이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미소)
20
“탈시설 사회로 향하는 결의를 다지는 이 자리에 여러분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초대글)
<창작 노트>
-1장: 장애인거주시설 생존자이자 공연 공동낭독자인 조상지 님의 이야기를 노래와 함께 시작된다. 장애인거주시설은 장애인들의 ‘무덤’으로 불린다. 죽어야지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떠올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시설 속 죽음-이미지로 작품은 시작한다.
-2장: 죽음을 떠올릴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죽음-체제 속에서 천사를 기다리며 기도하는 그 손, 사적인 구원과 파멸을 바라는 손, 이 아니라 두드리는 ‘손’으로 전환되면서 다른 챕터로 넘어간다. 시설 벽을, 담벼락을,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리며, “여기, 사람이 있다”, 고 외치는 그 목소리가 시설 담벼락을 넘어섰을 때, 그 때.

- 3장: 그 목소리를 들은 누군가, “듣지 않으려는” 세계 속에서 들으려하는 발걸음(발바닥)이 다가오고, 열리지 않는 문을 열려고, 온 몸으로, 싸우며, 밀치며, 비집으며, 기어오르며, 앞장선 발바닥의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이 밀려온다.
-4장: 발바닥 활동가들이 스무 걸음(스무 해)을 걸으며 길어 올린 문장들을 병렬로 엮으며, 우리의 튼튼한 미래를 향하는 문장들을 디딤돌처럼 놓는다.

<불구덩이 소개>

노들장애인야학 학생-교사-강사-활동지원사로 이루어진 인류최초의 AAC(보완대체의사소통) 밴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어떻게 조금 더 긴밀한 ‘보완대체 의사소통’(AAC)을 구성해낼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잡다한 언어 실험을 벌이고 있다. 쓰레귀-메탈(trash-metal)을 기반으로 한 불구-감성 발라드를 추구하며,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서도 함께 읽고 싶은 문장을 몸-음성-목소리-사운드를 서로 번갈아가며 낭독하는 불구-덩어리(crip-collective)다.
1)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의 책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자음과모음, 2012> 의 제목을 빌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