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가을 143호 - 제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기록으로 저항하라!” / 하영
제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기록으로 저항하라!”
하영
제22회, 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방학마다 꼭 조조영화를 예매하던 중학교 시절을 떠올립니다. 평일 오전에는 값이 싸고 사람도 없어서 제가 가장 기쁘게 즐기던 순간이었습니다. 고요하고 평화롭고 차분한 순간. 시간이 조금 흘러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우연히 혜화를 지나가던 중에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를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제가 아는 ‘극장’의 풍경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조금은 소란스러웠고, 누군가는 신나는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기도 했고, 화면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날 처음으로 제가 사랑하던 고요한 극장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시간이 더 흘러 처음으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 자원활동가로 참여한 날을 기억합니다. 처음 마주친 날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관객들의 표정을 이번에는 열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영화를 보며 웃고 떠들고 울고 소리치는 얼굴들과 함께했습니다. 모든 영화에는 수어 통역과 음성 해설이 지원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설명글이 함께 실린 프로그램북도 있었습니다. 비장애인뿐 아니라 장애인도 함께 영화를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 속에서 처음으로 ‘함께’ 한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올해 5월 개최된 제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의 슬로건은 “기록으로 저항하라!”였습니다. ‘저항’에는 무수한 방법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일상의 실천부터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거대한 일까지一 ‘기록’은 어디쯤에 있을까요? 어쩌면 그 모든 저항이 모두 기록이 될 수도, 혹은 그 모든 기록이 모두 저항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번 영화제의 개막작〈시설 밖, 나로 살기〉는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탈시설한 ‘초현’의 이야기입니다. 그날 영화를 보며 현장의 관객을, 그리고 어쩌면 아직 시설에 살고 있을 장애인을 동시에 떠올려 보았습니다. 탈시설 후 ‘초현’의 삶은 마냥 행복하게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나만의 집을 갖고 원하는 공간을 꾸려가기 위해 지난한 투쟁을 거쳐야만 했습니다. 〈소영의 노력〉은 장애인 무용수로 활동하는 ‘소영’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속에서도 소영은 자신의 몸을 ‘완전히’ 긍정하는 것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비장애인의 신체를 부러워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영화제에서는 장애인 당사자의 삶 속에 있는 분투와 기쁨을 담은 이야기가 상영되었습니다.

결국 이 영화들은 저항하는 삶의 기록이자, 삶을 기록하는 저항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서울시가 부당하게 장애인인권영화제를 배제하고 예산을 집행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영화제의 존재 자체가 기록이자 저항일 겁니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삶을 기록하며 그 삶으로 저항을 이어가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과 저항은 영화제가 끝난 이후에도 각자의 삶에서 꾸준히 이어질 것입니다.
내년 영화제에도 함께 만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