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가을․겨울 109호 - 유코디, 전국장애인운동활동가대회에 가다!?
유코디, 전국장애인운동활동가대회에 가다!?
유지영 |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판에서 활동보조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유코디로 불리며, 괴상한 짓을 솔선수범해서 행하는 유쾌, 상쾌, 통쾌한 처자입니다.
찌는 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초, 말로만 듣던 전국장애인운동활동가대회 일정이 다가왔다. ‘재미있다’, ‘지역 활동가들과 교류할 수 있어서 좋다’, ‘뒤풀이 시간을 조심해야해’, ‘활동가대회는 재미로 가는 게 아니야, 역량강화를 하는 거야’ 등의 말을 익히 들어왔고, 작년 활동가대회 사진 속 엄청난 인원을 본 나는 기대 반, 설렘 반의 마음으로 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박세영 팀장님과 함께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가다보니 금세 도착하게 된 일산직업능력개발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가분들의 모습이 보였다. 색깔별로 모둠이 정해졌는데, 처음 뵙는 분들이라 매우 어색하고 괜히 부끄럽고 그렇지만 좋았다. 몸 풀기 마음 열기 프로그램 시간이 끝나고 맛있는 저녁 식사 후 숙소에 짐을 풀고 반성폭력 교육을 듣게 되었다. 교육 후 숙소로 돌아와 목욕 재개를 하며 팀장님과 더욱 가까워졌고, 무더위에 지쳐 에어컨을 틀고 잠을 청하기로 했다. 활동가대회 첫날이고 다른 센터 사람들과 함께 방을 쓰려니 어색할 것 같아 먼저 굿 나잇 인사를 전했다. 옆방 사람들은 소소하게 모여 치맥(치킨과 맥주는 사랑입니다)을 즐기고 계셨다. 함께 하고 싶었지만 난 아직 어색하니까, 낯선 잠자리에 적응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렇게 설레는 첫날밤이 지나가는 듯 했다.
“꺼이꺼이, 흐에엥, 히잉… 훌쩍훌쩍, 우에엑… 주르륵……”(?) 새벽 1시쯤,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에 놀라 옆 침대를 보니 고개를 푹 숙이고 구토를 하고 있는 박 팀장님. 방바닥은 이미 물바다였다. 나는 놀란 토끼눈으로 “세영 쌤! 무슨 일이에요, 괜찮아요?”라며 얼른 불을 켰다. 비몽사몽한 정신에 흐느껴 울며, 구토를 계속하고 있는 그녀. 얼른 휴지를 가져다주고 방바닥을 수습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지영 쌤아, 나 머리가 너무 아파. 또 이래 또. 흐이잉.” “왜 그래요, 머리가 계속 아프다니, 자주 이랬어요?” “가끔 그래. 집에 있을 때도 가끔 이럴 때면 방법이 없어. 속상해. 짜증나.” 나는 “괜찮아요, 괜찮아요”라고 말하며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주었다. 10분쯤 흘렀을까? 조금 진정이 되었고 이제는 괜찮은 것 같다며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나도 잠자리에 누웠고 금방 잠이 다시 들었다.
새벽 3시 30분 쯤, 또다시 흐느끼는 소리에 잠을 깼고, 아까와 똑같은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자연스럽게 휴지를 가져다주고 수건으로 수습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아까보다 혈색이 안 좋고 핼쑥한 모습으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성을 낸다. “이유도 모르겠고 이러니까 답답하고 짜증나. 머리 아픈 거 때문에 병원에도 갔었는데 원인을 모르겠대. 흑흑흑.” 나는 말없이 토닥이다 “쌤, 계속 이러면 활동가대회고 뭐고 일단 병원으로 가요, 그게 낫겠어요”라고 말했다. “누우면 계속 어지럽고 속이 안 좋아. 앉아서 잘 수도 없고 미치겠네.”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고 머리는 여전히 아프지만 속은 좀 진정된 것 같으니 다시 잠을 자보겠다는 그녀의 말에 나도 다시 잠을 자려고 누웠다.
새벽 5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또 다시 “후에에엑~ 주르륵… 흑흑” 소리가 들려왔다. 선잠을 자던 나는 꿈을 꾸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누군가의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창가 쪽에서 쿨쿨 자고 있던 활동가 한 분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팀장님의 등을 두들겨 주고 있었다. 괜찮다고 말하는 팀장님. (그분의 등 두드림이 상당히 파워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다시 쓱싹쓱싹 정리를 하였고, 걱정스런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미치겠네, 미치겠네를 반복하는 그녀. 옆에서 지켜봐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너무 안쓰럽고 답답했다.
새벽 5시 30분, 침대에 기대앉은 팀장님은 나에게 미안해하며 마저 잠을 청하라고 했다. “나는 괜찮아요. 쌤이 걱정이지. 에휴…” 불을 꺼도 밝은 방안에서 우리는 다시 나란히 누웠다. 7시쯤 또다시 구토가 시작됐지만, 이제 더 이상 나올 것도 없이 헛구역질을 하는 팀장님. 옆에서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어 애타는 나. 사람들은 하나 둘 일어나 둘째 날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씻고 옷을 갈아입느라 분주했다. 서기현 소장님께 연락해서 새벽 상황을 설명하였고, 9시쯤 소장님이 숙소로 올라오셨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셋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보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 병원에 가도 소용이 없다면 집에라도 가서 쉬는 게 낫지 않겠냐는 소장님의 말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고 고민하는 팀장님. 결국 아버님이 호출되어 팀장님을 데리러 오셨고, 곧장 병원 응급실로 가셨다. 팀장님을 배웅하고 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쌤에겐 괜찮다고 했지만 긴장이 풀리면서 비몽사몽인 정신과 천근만근인 내 몸이 느껴졌다. 쓸쓸하고 외롭게 점심을 먹고 오후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강당으로 갔다. 아직 프로그램 시작 전이라, 양치를 하고 참석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숙소로 들어왔다. 팀장님에게 몸은 좀 괜찮은지 카톡을 보내고 1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난 잠깐, 아주 잠깐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저녁 식사시간이 되었다.-.-;
저녁 7시, 그녀가 돌아왔다. 마중을 나갔는데 혈색도 좋아졌고 머리도 아프지 않다고 한다. 대신에 약을 잔뜩 타왔다. 언제 아팠냐는 듯이 해맑게 웃으며 “입원한 것도 아니고, 아프지도 않은데 집에 가도 뭐… 근데 지영쌤. 저녁식사 끝났어?” 팀장님이 배가 고픈걸 보니 이제야 안심이 되었다. 소장님이 빵과 음료를 사주셨고, 그녀는 미소를 되찾고 살아났다. 덕분에 신나는 장기자랑 시간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뒤풀이 시간, 쏘맥(소주+맥주의 비율은 3:7이 좋습니다)을 마시고 싶었으나, 눈으로 꿀꺽꿀꺽 마시고 접어두었다. 유레카! 제육볶음이 이렇게 맛있을 수가!! 종이컵 가득 제육볶음을 열심히 덜어 먹고 또 먹고, 방으로 돌아와 팀장님의 약을 챙겨드린 후 난 편안하고 깊게 잠이 들었다.
마지막 날, 2박 3일 동안의 활동가대회에서 찍은 사진들을 편집해서 영상으로 보여주었는데, 팀장님과 나는 몸 풀기 마음 열기 시간 이후의 사진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는 유령 활동가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 나의 첫 활동가대회는 말로 듣던 활동가대회하고는 매우 달랐다. 재미있지도 않았고, 지역 활동가와 따뜻한 교류를 나누지도 못했고, 뒤풀이 시간을 조심해야하지도 않았으며, 역량강화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또 오고 싶은 활동가대회임은 틀림이 없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꿈을 꾸는 동지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한 오며 가며 마주칠 때마다 따뜻한 눈빛으로 ‘우리’라는 유대감을 주는 눈인사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향하여~ 투쟁으로 마무리 한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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