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여름 108호 - [고병권의 비마이너] 희망 없는 인문학
[고병권의 비마이너]
희망 없는 인문학
루쉰이 다시 글을 쓴 이유에 대하여
고병권 | 오랫동안 연구공동체 수유너머에서 밥 먹고 공부해왔으며, 작년 여름부터 무소속 연구자로 살아가고 있다. 노들야학에서 철학교사로 지내왔고 최근에 잠시 휴직한 상태. 그동안 밀린 공부도 하고 이런저런 활동으로 자기 충전 중!
오랜만에 재소자들과 함께 하는 인문학프로그램인 평화인문학에 참여했다. 2008년에 강사로 처음 나섰는데, 한 2년 열심히 하다가 그 뒤에는 별로 참여하지 못했다. 그래도 평화인문학은 생명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십 년 가까이를 이어오고 있다. 교정 당국의 소극적 태도 때문에 규모가 줄긴 했지만 주관 단체인 인권연대의 끈질긴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나는 2008년 안양교도소에서 받은 첫 질문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왜 우리가 여기서 철학을 공부해야 합니까?” 당시에는 여러 곳에서 평화인문학과 비슷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넓은 의미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큰 역할을 한 책이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이다. 이 책에는 내가 받은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변이 실려 있다. 저자에 따르면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에 내몰리고 결국 자포자기의 삶을 살게 되는 이유는 언어를 갖지 못해서이다. 사회 공론장에서 가난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그런 언어 말이다. 그런데 인문학은 그 언어를 제공해줄 수 있다. 다시 말해 인문학은 가난한 이들을 정치적․사회적 주체로 세우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가 있다. 그러니 가난한 이들에게는 돈이나 자격증 이상으로 인문학 공부가 필요하다는 게 그 책의 주요 논지이다. 한국의 역자들은 그 간절함을 담아서 책 제목을 아예 ‘희망의 인문학’으로 바꾸기까지 했다(참고로 원제목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부’이다).
하지만 안양교도소에서 그 질문을 받은 날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인문학 공부의 의미를 조금 달리 생각하고 있다. 나는 더 이상 ‘희망의 인문학’을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인문학을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인문학 그 자체는 가난을 벗어나게 해주지 못하며,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만들어내는 수단도 아니다. 설령 가난한 이들에게 투쟁 정신을 고취하고 그들의 무기가 될 만한 말들을 인문학이 제공해줄 수 있을지라도, 그런 수단으로서 인문학을 공부하자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에게 이런 생각을 일깨워준 것은 중국 작가 루쉰의 짧은 글 두 편이다.
첫 번째 글은 루쉰이 소설집 『외침』에 붙인 서문이다. 그는 의학을 배우러 일본에 갔는데 수업 시간에 본 한 장의 사진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는 러일전쟁 중이었는데, 한 일본군 장교가 몇몇 중국인들이 러시아 스파이 노릇을 했다며 한 명을 본보기 삼아 목을 치고 있었다. 주변에는 그 광경을 구경하는 중국인들이 여럿 있었다. 그 사진을 본 후 루쉰은 “제 아무리 건장하고 튼튼해도 어리석고 약한 국민은 본보기 재료나 구경꾼이 될 뿐”이라며, 정신이 온전치 않은 국민의 불행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민족의 정신을 개조할 문예운동의 길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루쉰이 계획한 일들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문예잡지를 내기로 했던 동지들은 흩어져버렸다. 그는 적막함을 느꼈다고 했다. 옛날의 비문들을 베끼며 시간을 보내던 때 친구 한 사람이 찾아와 다시 글을 쓰라고 했다. 이때 루쉰이 꺼낸 이야기가 그 유명한 ‘철방에서 자는 사람들’이다. “가령 말일세, 창문도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는 철로 된 방이 있다고 하세.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네. 머잖아 모두 숨 막혀 죽겠지. 그러나 잠든 상태에서 죽어가니까 죽음의 비애는 느끼지 않을 걸세. 지금 자네가 큰 소리를 질러 비교적 깨어있는 몇 사람을 일으켜, 그 불행한 몇 사람들이 구제할 길 없는 임종의 고통을 겪게 한다면 도리어 그들에게 미안한 일 아닐까?” 그러자 친구가 답했다. “몇 사람이라도 일어난다면, 그 철로 된 방을 부술 희망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대화 이후 루쉰은 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
나는 인문학 강연 시에 이 이야기를 종종 꺼낸다. 루쉰이 의학에서 문예 쪽으로 전향하는 장면이나 그가 글을 다시 쓰기로 한 대목에 인문학 공부의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노들야학에서도 이 이야기를 몇 번 꺼냈다. 그리고 그 때마다 학생들에게 철방에 잠든 사람들을 깨울 것이냐고 물었다. 답변은 항상 갈렸다. 고통스럽게 뭐하러 깨우느냐는 사람도 있었고, 당장 깨워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답변이 갈리기는 어디서나 마찬가지지만, 노들 학생들의 반응은 다른 곳보다 더 강한 편이다. 안 깨웠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다른 곳보다 한숨을 더 깊이 쉬고, 당장 깨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다른 곳보다 더 흥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지난 시절의 기억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삼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희망’ 쪽에 방점을 두었다. ‘그래도 깨우는 편이 낫지 않을까’라고 말할 때, ‘그래도’라는 단어를 넣은 이유는 어떻든 ‘희망’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보니 나는 루쉰의 글을 꼼꼼히 읽지 않았다. 루쉰이 글을 다시 쓰기로 한 것은 친구의 답변 때문이 아니다. 그는 자기 “나름의 확신은 있었지만” 친구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노라고 했다. 희망은 미래에 속하므로 그것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말을 꺾을 수 없었다고 했다. 엄밀히 보자면 그 친구는 루쉰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루쉰은 분명히 ‘절대로 부술 수 없는 철방’이라고 전제하고서 그럼에도 깨울 것인지를 물었다. 그런데 친구는 엉뚱하게 ‘희망’을 끌고 와서 ‘부술 수 없는 철방’이라는 전제를 깨버렸다. 문제를 받아들이지 않은 셈이다. 그러니 루쉰이 글을 다시 쓴 이유를 친구의 답변에서 찾을 수는 없다. 도대체 왜 그는 다시 글을 쓰기로 한 것일까.
또 다른 루쉰의 글 「총명한 사람, 바보, 노예」를 읽었을 때 나는 그 답변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노예는 고달픈 처지를 여기저기에 하소연하는 사람이다. 하루는 총명한 사람, 즉 현자를 만났다. 그는 자신이 먹는 음식은 개나 돼지도 거들떠보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고 그것도 하루에 한 끼 먹으면 다행이라고 했다. 현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노예를 동정했고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위로했다. 신세한탄을 쏟아내고 기분을 푼 노예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얼마 후 그는 지나가던 바보를 붙잡고 또 신세한탄을 했다. 자신이 사는 집은 외양간만도 못해서 방에는 창문 하나 없고 눅눅하고 썩은 냄새가 난다고 했다. 바보가 창문을 내달라고 주인에게 말하라고 하자 노예는 그건 엄두도 못 낼 일이라고 했다. 그러자 바보는 노예의 집으로 가 창문을 내주겠다며 벽을 헐었다. 놀란 노예는 소리를 질러 사람들을 모았고 바보를 쫓아냈다. 노예는 고함소리를 듣고 온 주인에게 어떤 강도 놈이 벽을 부수기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 쫓아냈다고 했다. 주인이 잘했다고 칭찬하자 그는 기분이 한껏 좋아져서 때마침 찾아온 현자에게 말했다. 언젠가 내게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한 현자의 말이 맞았다고. 오늘 주인님에게 큰 칭찬을 받았다고.
우리는 이 노예가 평생 노예로 살 것임을 예감한다. 그는 평생 창문 없는 방에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 벽이 단단해서도 아니고 주인이 무서운 사람이어서도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가 노예의 삶을 사는 것에 대한 자각이 없다는 데 있다. 이 자각이 없는 한에서는 누구도 그를 구원할 수 없다. 루쉰은 구원자의 목록에서 지식인, 즉 현자를 일찌감치 배제했다. 현자는 구원자이기는커녕 노예체제의 협력자이다. 그는 노예의 처지를 위로하고 막연한 희망을 제공하면서 노예로 하여금 노예적 삶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만든다. 물론 바보도 노예를 구원하지 못했다. 노예를 구하기 위해 벽을 부순 혁명가 바보를 쫓아낸 것이 또한 노예였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노예가 노예이기를 멈출 수 있을까. 결국 누군가 말한 것처럼, 노비 문서는 노비 손으로 찢어야 한다.
루쉰은 왜 다시 글을 쓰기로 했을까. 철방을 부술 수 있는 희망을 떠올렸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절대로 부술 없는 방에 갇힌 채 잠든 사람들을 깨울 것이냐’고 물었을 때, ‘그래도 철방을 부술 희망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답하는 것은 사실상 물음을 회피한 것이다. 그런 ‘희망’을 이유로 사람들을 깨우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다시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다. 만약에 정말로 철방에서 나갈 희망이 없다면 당신은 사람들을 안 깨울 것인가.
나는 루쉰이 다시 글을 쓴 것은 희망을 보아서도 아니고,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서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철방에서 나가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한 편의 글보다 총알 한 방, 망치질 한 번이 더 낫다. 인문학은 이와 관련해서는 철저히 무력하다. 문학이나 철학에는 애초에 철방을 부술 힘이 없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글을 쓰고 인문학 공부를 하는가. 왜 우리는 철방에서 잠든 사람들을 깨워야하는가. 이상한 말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철방에 갇혀 있음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지금 우리가 노예로 살고 있고 수인으로 갇혀 있다는 것, 즉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감옥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다. 이 자각이 없다면 우리는 한 주인을 벗어나고도 금세 다른 주인을 섬기는 노예로 살 것이고, 창문 없는 방에서 벗어나서도 또 다른 창문 없는 방에 갇혀서 한탄하고 위안하며 계속 살아갈 것이다.
인문학이 어떤 힘을 발휘한다면 철방에 대해서가 아니라 철방에 갇힌 사람에 대해서일 것이다. 즉 인문학은 사람을 철방에서 빼내주지 못하지만, 철방에 갇힌 사람을 노예에서 자유인으로 바꿀 수는 있다. 노예가 꾸는 달콤한 꿈을 빼앗는 대신 자유인만이 느끼는 답답함을 선물할 수 있다. 나는 ‘희망의 인문학’ 대신 희망을 만들지 않는 인문학, 희망에 의존하지 않는 인문학, 한마디로 ‘희망 없는 인문학’이 더 소중하고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지난 4월 훌쩍 우리 곁을 떠나버린 김호식은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는 철학 수업에 가장 큰 열의를 보였고, 니체와 루쉰을 정말 좋아했는데, 철방 이야기에 대한 반응은 한결같았다. 나는 그에게 해마다 똑같은 물음을 던졌는데 매번 ‘깨우지 말아야 한다’고 답했다. 인문학 공부가 정말 재밌고 또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랬다. 재작년에는 옆에서 누군가 “깨워야 나갈 희망이 있다”고하자 “어떻게 나가? 아무 소용없잖아!”라고 대꾸했다. 그때까지 ‘희망의 인문학’을 말하고 다니던 내게는 의외의 답변이었다. 그때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 문득 그에게 묻고 싶다. 혹시 내가 ‘깨운다’는 말로 희망을 부풀리고 헛된 꿈을 꾸게 한 것을 질책한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