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여름 108호 - 낙산 발정(發程)
낙산 발정(發程)
김진수 | 노들야학 상근 교사이고, 2016년 교사대표이기도 해요. 요새 취미는 점심시간마다 낙산에 올라 제가 살고 있는 곳을 보고 오는 거예요. 높은 곳에 올라 먼 곳을 보는 일은 언제나 좋네요.
봄이 왔을 때였다. 낮 수업 학생들과 낙산에 갔다. 봄이 온 낙산은 흐드러졌다. 벚꽃 잎은 날리고, 개나리는 노오랗고, 진달래는 발그레 했다. 풀냄새와 꽃냄새가 진동했고 하늘은 저 끝까지 보일 듯 파랗게 투명했다. 그렇게 낙산은 봄을 드러냈고, 그런 낙산을 보며 우리는 기침을 하듯 저마다 봄을 터트렸다. 와~ 봄이다! 개나리다! 벚꽃 봐! 한마디로 발정 난 봄이었고 그 봄을 따라 발정 한 낙산이었다. 낙산은 봄을 따랐고 우리는 그 낙산을 따른다. 도심에선 봄이 쉽게 드러나지 않기에 드러난 곳으로, 낙산으로, 봄을 따라….
수원에서 슈퍼를 하던 시절 개 한 마리를 키웠다. 우리 집 개가 발정이 난 어느 날, 슈퍼 영업을 마치고 녀석과 산책을 했다. 고물상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커다란 철문 밑 작은 틈으로, 개 주둥이가 삐죽이 나왔다.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삐져나온 주둥이의 코가 벌름 거렸다. 그 모습을 본 우리 개가 그 주둥이를 향해 나를 잡아끌었다. 그러더니 서로 주둥이를 맞대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그렇게 냄새를 몇 분쯤 맡았을까, 잠시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 둘은 떨어졌다. 문제는 그 이후에 일어났다. 다음 날 슈퍼 앞에 개 한 마리가 찾아왔다. 알고 보니 그 녀석은 그때 그 고물상 개였다. 그렇게 그 개는 몇 날 며칠을 슈퍼에 찾아와서 우리 집 개를 보고 갔다. 한두 달쯤 지나자 녀석의 발걸음이 뜸해지더니, 찾아오는 간격이 한 달이 되고, 그 보다 더 길어지기도 했다. 가끔 녀석이 슈퍼에 찾아올 때, 어떤 날은 향긋한 비누 냄새가 났고, 어떤 날은 고약한 음식 썩은 내가 났다. 눈에 상처를 입거나 몸이 긁혀 찾아온 적도 있었다. 고물상 아저씨의 말로는 녀석이 집을 나갔다고 했다. 고물상 개가 집을 나간 게 우리 집 개 때문인 것 같아 조금 뜨끔했지만, 전에 고물상에서 키우던 개가 죽었다는 소식을 몇 번 들었던 터라 오히려 통쾌했다. 아무튼 그렇게 녀석은 발정 난 우리 집 개를 따라 고물상 밖으로 발정(發程: 길을 떠남)했다.
흐드러진 낙산을 감상하고 다 같이 마음이 들떠 왁자지껄 떠들며 내려오는데, 그 모습을 본 경남 누나가 우리를 보고 한 마디 한다. “어머~ 다들 발정났나봐~” 그 말을 듣고 모두 깔깔대며 웃었다. 하긴 봄이니, 이렇게 한껏 봄을 따르는 낙산이 있으니, 발정(發程)을 안 할 수가 있나. 얼마 있으면 자연이 자신을 더욱 더 드러내 보이는 여름이다. 이번 여름, 집을 나와 길을 떠났던 고물상 개처럼, 낙산을 향해 발정했던 우리들처럼, 어딘가를 향해 누군가를 향해 발정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