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가을 105호 - [교단일기] 그래 함께 있어 보자!
[교단일기]
그래 함께 있어 보자!
가 나 | 작년 4월부터 노들야학에서 교사활동을 하고 있다. 두 학기 동안 초등과정인 국어3반 수업과 청솔2반 담임을 맡았다. 정돈되지 않은 내 삶을 하나씩 갈무리해보려 한다. 그 다음에는 일도 열심히 하고 실컷 놀아보고 싶다. 함께 놀 친구들을 만들 생각이다.
사진 : 천천히 즐겁게 함께 반 사람들. 경남언니 눈을 떠요.
“ 천 천 히 즐 겁 게 함 께! ”
노들야학이 올해 들어 시작한 ‘성인 발달장애인 평생교육 프로그램’의 이름이다. 이 프로그램에는 노들야학 학생인 김경남, 박주원, 정지민, 정혜운, 이준수, 정수연 이렇게 6명이 참여했다. 저녁에는 원래 있던 노들야학의 수업과 연계하고, 낮에는 새로운 프로그램과 강사진을 짜서 진행했다. 낮에 하는 수업이 있어서 야학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보통 ‘낮 수업’이라고 부른다. 나는 낮 수업에서 기초문해 수업 주강사를 맡았다. 화요일에는 연극수업을 보조했다. 전반기 프로그램은 4월 중반 즈음부터 7월 말까지 이어졌다.
내가 맡은 수업의 타이틀은 ‘기초문해’이지만 수업 시간에 한글과 수 개념 익히기 같은 것만 하는 건 아니다. 각 학생의 수준에 맞게 국어, 수학 공부를 하긴 했지만, 사실 다른 활동들을 더 많이 했다. 중국 음식점에 주문하기, 매니큐어 바르기, 마스크 팩 해보기 같은 생활기술 차원의 수업도 했다. 박물관, 미술관, 궁궐, 성당, 절 등 야학에서 가깝고 학생들과 가볼만한 곳들을 찾아서 나들이를 가기도 했다.
학생들과 여러 가지 수업을 해보았지만, 내가 무엇보다 고심했던 것은 학생들과 잘 노는 것이었다. 뭘 하며 놀까 구상하다가 술래잡기나 비석치기 같은 ‘전래놀이’나 교실에서 할 수 있는 가벼운 ‘실내놀이’를 해볼까 생각했다. 간단하고 쉬운 놀이를 하면 낮 수업을 하는 학생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 런 데 웬 걸 !
수연 씨를 생각해보니 이런 놀이들을 무턱대고 하기가 좀 그랬다. 수연 씨는 손가락과 고개, 그리고 입 정도를 아주 조금 움직이는 정도로만 몸을 쓸 수 있다. 이런 놀이들은 대개 뛰고, 잡고, 당기고, 밀고, 던지고 하면서 몸을 막 쓰는 놀이다. 낮 수업반의 학생들 대부분은 나이가 좀 있어서 체력의 문제가 있을지는 몰라도, 몸을 이러 저리 움직이는 데는 불편함이 거의 없었다. 다른 학생들은 이런 놀이를 몸을 쓰면서 할 수 있겠지만 수연 씨는 그러기가 어렵다. 수연 씨가 이런 놀이를 함께 하려면 대안을 마련해 놓아야 할 텐데, 매번 그걸 생각해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닐 터였다.
그러다가 잘 나오지 않는 홍철 씨를 대신해서 준수가 5월에 새로 낮 수업에 합류했다. 준수가 들어오며 또 다른 차원의 고민이 생겼다. 준수는 먼 거리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지만 벽을 짚고 서서 걸을 수도 있다. 손이 조금 둔하긴 하지만 웬만한 작업들은 할 수 있다. 준수는 수연 씨보다는 몸의 움직임이 자유롭지만, 어쨌든 몸을 마음대로 놀리지 못하는 구석이 있다. 휠체어를 타는 준수랑 다른 학생들이 몸을 쓰면서 함께 할 수 있는 놀이가 있을까 싶었다.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런 자료에 나오는 운동이나 놀이를 함께 해보려면 여러 가지 전문적인 준비물이 필요했고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공터도 필요했다. 결국은 그런 놀이들은 제쳐놓을 수밖에 없었다. 몸을 마음껏 못 쓰는 뇌병변장애인과 몸놀림이 자유로운 지적장애인의 통합교육의 길은 멀고도 멀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수연 씨랑 준수랑 함께 잘 못 놀았던가? 결코 그런 건 아니었다. 수연, 준수와 함께 놀이를 했던 때도 있었다. 수연 씨와 제일 처음 함께 했던 놀이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였다. 낮 수업팀의 임당 선생님이 수연 씨 휠체어를 밀면서 함께 움직였다. 우리는 술래에게 잡힌 수연 씨 손가락을 끊기도 했다. 그 다음에는 풍선을 가지고도 놀았다. 임당 선생님이 빨대를 수연 씨 입에 물려 준 덕분에 수연 씨는 조그맣게나마 풍선을 불었다. 풍선 치기 놀이도 수연 씨와 함께 했다. 둥그렇게 서서 서로 풍선을 쳐내면서 떨어뜨리지 않는 놀이였다. 임당 선생님이 수연 씨 휠체어를 움직이면서 풍선을 쳐준 덕분에 함께 놀 수 있었다.
죠스 선생님이 준비했던 ‘책으로 하는 비석치기’를 할 때도 준수와 수연 씨는 우리랑 함께 놀았다. 임당 선생님이 비석까지 휠체어를 끌고 가주면 수연 씨는 임당 선생님이 책 대신 손에 끼워준 대형 롤 화장지를 가까스로 밀어 떨어트렸다. 결국 비석을 맞추지는 못해서 임당 선생님한테 핀잔 아닌 핀잔을 듣기는 했지만 말이다. 준수도 비석에서 가까운 곳까지 와서 책을 던져 비석을 맞혔다. 먼 곳에서 던져 맞히기는 어렵지만 가까운 데서는 맞힐 수 있었다.
수연 씨는 눈을 감고 다른 사람들이 내민 손을 만지다가 어느 손이 자기 짝궁의 손인지 알아맞히는 놀이도 했다. 수연 씨는 ‘아침바람 찬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를 부르는 손놀이를 할 때, 상대방이 목 뒤에 찌른 손가락이 어느 손가락인지를 알아맞히는 놀이도 했다. 이런 놀이는 수연과 준수도 충분히 함께 할 수 있는 놀이였다.
수연, 준수가 다른 학생들과 어떻게 어울려 놀아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이른바 ‘낮 수업’사업 담당자인 한혜선 선생님은 이런 말을 해주셨다.
“ 수 연 이 는 그 냥 그 런 데 같 이 있 는 것 만 으 로 도 좋 아 하 는 것 같 아. ”
그래, 어쩌면 낮 수업에 오는 학생들은 낮에 이렇게 야학에 함께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것일지 모른다. 갈 데가 없어서 집에서 혼자 외롭게 있을 바에야 이렇게 모여서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게 아닌가. 우리는 그저 그렇게 흘려보낼 수 있을 낮 시간에 모였고 무언가를 했다. 무언가를 하다 보니 심심하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놀아보기도 했다. 어떻게든 함께 놀아보려고 부대끼다 보니, 몸을 잘 쓰든 못 쓰든 상관없이 어울려 놀 수 있는 방법도 찾을 수 있었다. 이게 다 우리가 함께 있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던 덕분이 아닐까.
낮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는지는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낮 수업을 하는 학생들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경남 누나는 가족들을 찾고 싶어 한다. 혜운 누나는 밤에 잠을 잘 안 자고 지하철에서 길을 가끔씩 잃어버린다. 준수한테는 당뇨가 조금 있다. 지민이 형은 집에 있을 때 가끔씩 술을 마시는 것 같다. 주원이 형은 야한 것을 좀 밝힌다. 수연이는 시를 좋아한다…….
낮 수업을 하면서 이 학생들과 조금은 친해진 느낌이 든다. 혜운 누나는 모두 함께 노래방에 놀러갔던 날, 돌아오는 길에 나한테 생일선물로 팔찌를 사주셨다. 이틀 전에 내 생일이라고 얘기했더니 그때 나한테 팔찌를 사주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을 지켰다. 낮 수업을 하면서 제일 짜릿했던 순간은 지민이 형과 술래잡기를 할 때였다. 노동절 집회를 할 때였을 거다. 광화문 지하도에서 지민이 형과 장난을 치다가 도망가는 지민이 형을 쫓아간 적이 있다. 그때 우리는 둘 다 사람들 눈치도 보지 않고 소리를 마구 지르며 달렸다. 얼빠진 사람들처럼! 그 뒤로 종종 나는 지민이 형과 이런 식의 술래잡기를 했다. 그러면 우리는 또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고 달리고 웃고 그랬다.
이제 2주 뒤에는 개학을 하고 낮 수업도 시작된다. 다음 학기에는 뭘 해야 할지 별 생각도 안 해보았다. 9월이 되면 우리들은 다시 야학에 어슬렁어슬렁 모여 있을 거다.
그 러 면 또 무 언 가 를 하 고 있 겠 지. 그 래, 그 렇 게 그 냥, 모 여 서 함 께 있 으 면 되 는 거 다.
*‘천천히 즐겁게 함께’는 김호철 선생님이 작사, 작곡한 노래의 제목이기도 하다. 노래패 ‘다름아름’이 장애인운동 집회에서 이 노래를 자주 불렀다. 사업을 기획한 분도 이 노래 제목에서 프로그램 명칭을 따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