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자료실

조회 수 88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도움반에서 드리는 편지



김혜옥




김혜옥. 노들야학 창립 멤버. 3대, 5대 교사대표를 지냈으며 초등 특수교사입니다.
지난 3월, 전교 선생님들께 뿌린 메시지를 조금 수정했습니다. 이런 지면에 글이 실릴 줄은 모르고 얼기설기 쓴글이니 부디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목련꽃 봉오리 맺힌 걸 보니 봄이 오긴 오나봅니다.
지난 주말에는 「노예 12년」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노예제를 다룬 영화인데 인간의 자유 의지와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제가 아는 어떤 분들의 삶이 떠올랐 습니다.



‘한여름에도 솜바지를 입고 바지 속에서 다리가 썩고 있던 사람. 침대에 팔다리를 묶인 채 한 사람이 각목으로 맞아온몸에 시퍼렇게 피멍이 든 사람… 양념 안 된 반찬과 시래깃국, 10년도 더 된 참치캔. 오줌을 버려줄 사람이 없어 아무도 물을 주지 않았고… 방문은 밖에서 잠겨 있었고, 도망치다 붙들려온 사람들이 개처럼 두들겨 맞았다. 한 달에 한 명씩 죽어나갔다. 하나님, 제발 여기서 나가게 해주세요. 여기서 나가야 한다. 늦은 밤, 여자는 모두가 잠자리에 들기를 기다려 무릎으로 정신없이 기기 시작했다. 날이 하얗게 밝아 올 무렵, 온 몸이 생채기에서 피가 흐르고… 그녀는 그렇게 시설을 탈출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 이야기는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10위 안에 든다는 우리나라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바로 장애인생활시설에서요. 그리고 지역사회에 살아보고자 목숨을 걸고 탈출한 사람들의 이야기이지요.
왜 그들은 범죄자도 아니고 몹쓸 돌림병에 걸린 사람들도 아닌데 우리와 같이 살지 못하고 분리되어 살아야 했을까요? 왜 자신의 사회와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해야 했을까요? 누가 그들을 시설에 가두었을까요? 누가 그들을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도 유지하지 못하고 살다가 죽어가게 만들었을까요?


혹시… (우리가) 학교에서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그들을 학교 바깥의 시설로 몰아넣은 것 아닐까요?

편의시설도 없고 보조할 사람이 없으니 사회에서도 같이 살 수 없다며 (우리가) 그들을 시설로 넣은 것 아 닐까요?

올해 도움반에 몇 명의 친구가 더 들어왔습니다.
최근 발달장애아를 둔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자살하는 뉴스가 많아 마음이 너무나 아픈데, 이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힘차게 일반학교에 발걸음을 내딛는 부모님들. 일반학교에 보내놓고 하루하루 마음 졸이는 모습이지만, 새삼 참 고맙고 힘이 되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합니다.




102_20_01.jpg




우리 아이들을 권리실현의 주체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장애가 있으니 불쌍해서가 아니라, 부모 조직의 입김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실현하는 권리로서 이해받았으면 합니다. 겉보기엔 똑같은 밥 한 그릇일지라도, 겉보기엔 똑같은 한 걸음일지라도 그것이 시혜나 동정이 아닌 권리로서 존중 받는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다르겠지요.
선진국처럼 공립일반학교에 통합된 장애아 한 명에 특수교사, 보조원, 언어치료사, 심리치료사가 달라붙는 복지 시스템은 아니어도 우리나라도 조금씩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확보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필요한 서비스를 지원하여 결국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게 하겠다는 의지겠지요.



흔히들 장애아의 기적을 말할 때 헬렌 켈러와 그녀를 가르친 애니 설리번 선생님을 얘기하지요. 하지만 제가 열심히 가르쳐서 말을 못하던 아이가 말을 잘할 수 있게 되고 글을 못 읽던 아이가 글을 읽게 되는 기적을 이룬다 해도 그 아이가 자라서 직업도 갖지 못하고 다시 시설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 기적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진짜 기적을 일궈내는 사람들은 바로 선생님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실에서의 통합이 ‘사회적 통합’의 기초가 될 것이니까요. 글을 잘 못 읽더라도 말을 잘 하지 못 하더라도 잘 걸어 다니지 못 하더라도 장애인이 생활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것, 저는 그것이 진정한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지금처럼 지역사회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또 나중에 커서 지역사회의 일원이 되어서 소소한 일상을 같이 나누면 참 좋겠습니다.



결국 노예제가 폐지되었듯, 결국 여성이 참정권을 가지게 되었듯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것…. 저는 역사는 그렇게 진보해나갈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언젠가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세대에는 ‘공감하고 소통하는 능력, 사회적 약자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능력’이 기업에서 인재를 뽑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이라고 합니다. 실제 구글 같은 회사에서는 장애인도 많이 채용하고 있고 그 장애인들과 같이 협력하여 일을 해나갈 수 있는 능력과 태도를 지닌 사람을 성적이나 학벌이 뛰어난 사람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도움반 친구들이 ○○초 친구들에게 그런 덕목을 키울 수 있는 소중한 존재가 되길 바라봅니다.




다소 불편한 내용이 있는 긴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십시오.




- ○○초 학습도움반 김혜옥 드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40 2014가을 102호 - 우리, 이래서 바쁘다! ○●○ 우리, 이래서 바쁘다! - 장애인문화예술판 10월 내지 11월 일정 안내 - 문예판 안수 원래는 내가 연출을 맡아서 준비하고 있는 공연에 대한 썰을 풀어볼까 했... file
» 2014가을 102호 - 도움반에서 드리는 편지 ○●○ 도움반에서 드리는 편지 김혜옥 김혜옥. 노들야학 창립 멤버. 3대, 5대 교사대표를 지냈으며 초등 특수교사입니다. 지난 3월, 전교 선생님들께 뿌린 메시지... file
38 2014가을 102호 - 온몸으로 함께 울고 함께 기다리는 일 ○●○ 온몸으로 함께 울고 함께 기다리는 일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노들야학 은전 대한문에서 출발한 버스는 다섯 시간 만에 진도에 들어선 후에도 한참을 ...
37 2014가을 102호 - 박경석 유언장 ○●○ - 박경석 유언장 - 어찌 보면 지금 유언장을 쓰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나는 해병대를 제대하고 잘 놀다가, 1983년 토함산에서 행글라이... file
36 2014가을 102호 - 오 그대는 아름다운 후원인 오 그대는 아름다운 후원인 ○●○ 노들이면서 노들을 후원도 하는(?) 서기현 님 9월에 어느 잔잔한 가을바람이 불던 날. 하월곡동 어느 한 사무실에서 반짝거리는 ... file
35 2014가을 102호 - 고마운 후원인들 2014년 10월 노들과 함께하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CMS후원인 강경완,강귀화,강남훈,강문형,강병완,강복원,강복현,강소영,강수혜,강영미,강유선,강정...
34 2014여름 101호 - 노들바람을 여는 창 노들바람을 여는 창 “저는 난생 처음으로 출구가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황금 해안에서 인간이 쏜 두 발의 총을 맞고 인간세계로 붙잡혀온 원숭이. 그때 볼에 ...
33 2014여름 101호 - 420장애인차별철폐 투쟁의 날을 맞이하여 송국현 학생을 기억하며 420장애인차별철폐 투쟁의 날을 맞이하여 송국현 학생을 기억하며 노들야학 준호 마주했던 사람들의 죽음에 괴롭고 괴로운 마음을 이끌고 투쟁을 이어온 사람들이... file
32 2014여름 101호 - 지금 국현 씨를 생각하는 모든 분들께 지금 국현 씨를 생각하는 모든 분들께 노들야학 정민 ----------------------------------------------------------------------------- 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 file
31 2014여름 101호 - 송국현 아저씨 장례위원 이야기 장애등급제 · 부양의무제 폐지 농성 672일차,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2014년 420을 보냅니다 송국현 아저씨 장례위원 이야기 노들야학 명희 오늘같이 바람이 불어... file
30 2014여름 101호 - [장판 핫이슈] 그 어떤 죽음도 1/n 될 수 없다 장판핫이슈 그 어떤 죽음도 1/n 될 수 없다 노들야학 민구 큰 일 이 다 요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슝슝’이 아니다. ‘쌔애앵 쌔애앵’지나간다. ...
29 2014여름 101호 - 25만원 노역일기 25만원 노역일기 노들야학 경석 투쟁하면 할수록 쌓이는…… 벌금. 그것이 쌓이고 쌓여, 또 다시 지명수배가 떨어진 박 경석 교장샘. 수배자로 살던 어느 날, 갑자... file
28 2014여름 101호 - 노들야학도 버스 타고 모꼬지 갑시다! 노들야학도 버스 타고 모꼬지 갑시다! 노들야학 도현 - 장기 휴직 교사 그러니까, 비밀이 하나 있다. 노들 사람들은 나를 퇴임 교사라 알고 있지만, 사실 본인은 ... file
27 2014여름 101호 - 또 하나의 기우제가 시작됐다 또 하나의 기우제가 시작됐다 장애인도 고속버스 타고 싶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 노들야학 유미 대중교통이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 시내버... file
26 2014여름 101호 - [형님 한 말씀] 어지러운 난국 형님 한 말씀 어지러운 난국 「 어지러눈 난국 」 - 노들 명학 - 요즘에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 가고 있다. 사람의 생명은 소중한 데 이 소중한 생명들이 이... file
25 2014여름 101호 - 노들 새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 노들새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 두둥~! 새 책이 나왔습니다. 노들의 스무 해 이야기를 담은 노들바람 100호 홍은전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 file
24 2014여름 101호 - [노들아 안녕] 노들센터 아라 코삼 조아라입니다! 위 사진은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때 서강대를 산책하면서 찍은 사진인데요. 벚꽃에 눈이 팔린 저를 위해 활보팀과 광호가 나무를 흔들어서 연... file
23 2014여름 101호 - [노들아 안녕] 김선아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사무국장으로 노들에 발을 들인 김선아예요. 나이는 많고 정신연령은 가르치는 일 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정도ㅎㅎㅎ 그런 제가 신임교사라... file
22 2014여름 101호 - [교단일기] 교육과 탈교육, 그 경계에서 '노란들판'을 꿈꾸다 내가 처음 노들을 알게 된 건 EBS 지식채널을 보고 나서부터이다. 휠체어를 끌고 작업장에 가서 낮에는 일을 하시고, 밤에는 야학에서 공부를 하시던 한 남성분.... file
21 2014여름 101호 - [나쁜행복을 말하다] 진심이 아닌 가짜 글 이사 후 3주 후. in 2013. 3. Webzine 하루 종일 정리하다 쉬다 했는데 어느 날 하루는 책꽂이가 너무 지저분해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책은 그냥 꽂아놓고 종이... fil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5 46 47 48 49 50 51 52 53 54 Next
/ 54
© k2s0o1d5e0s8i1g5n. ALL RIGHTS RESERVED.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