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자료실

조회 수 120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온몸으로 함께 울고 함께 기다리는 일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노들야학 은전





대한문에서 출발한 버스는 다섯 시간 만에 진도에 들어선 후에도 한참을 더 달려서야 팽목항에 닿았다. 한때 항구를 가득 메웠다던 천막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간 후 휑해진 그곳은 짙은 해무로 가득 차 있었다. 찰박거리는 바닷물 위에서 끼익끼익 기분 나쁜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빈 여객선과 그 옆에 색색의 과일로 차려진 제사상의 조합이 이 적막한 항구가 연일 뉴스를 도배했던 그 아비규환의 현장임을 서늘하게 보여준다.
방파제에 노란 리본이 빼곡하다. 배를 타고 한참 더 나가야 한다는 사고 해역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사람들은 방파제 끝까지 나가 그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고 또 불렀을 것이다.




“엄마, 아빠, 여보, 내 새끼야. 보고 싶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이제 그만 돌아와다오.
내가 엄마의 아들이어서 행복했어요. 네가 나의 아들이어서 고마웠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은 자신의 가슴을 도려내어 그 난간에 매달아 놓았다.
멀리 시신을 수습하기 위한 천막이 외따로 떨어져 있다. 6월 8일 이후 아직 저 천막을 거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사람이 없다. 열두 명. 아직 열두 명이 저 검은 바닷속에 갇혀 있다. 이제 성별조차 가리기 힘들 만큼 변한 시신은 가족들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한다. 더딘 구조 작업에 가슴을 쥐어뜯던 유족들이 “차가운 바다에서 죽어간 내 자식 한 번은 품어주고 보내게 해달라”던 비명 같은 요구도 더 이상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었다.
방파제의 끝에 서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마음속으로 부른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 그저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따라 불러본다. 그들이 하루라도 빨리 잠수사의 손을 잡고 나와 가족의 품으로 인도될 수 있기를. 그래서 이 악몽 같은 장례가 어서 끝나기를.



나는 비명에 죽은 자식의 영정을 끌어안은 부모의 심정은 모른다. 하지만 그 부모의 죽지 않은 딸의 마음을 안다. 꿈인 것 같아서 어서 깨어나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불쑥불쑥 가슴이 내려앉고 눈물이 터지기를 반복하는 상실의 시간. 8년 전 단 며칠이었으나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고통의 시간. 내 언니의 장례였다.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을 묵묵히 끌고 나갔던 언니와 형부는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친정으로 가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순식간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 가족은 장례를 치르는 내내 상복은커녕 검은 옷조차 제대로 갖춰 입지 않았다. 이미 그녀가 죽어 사라졌는데 그따위 의식이 다 무언가 싶기도 했지만 우리는 갑작스런 가족의 죽음에 대처하는 법을 몰랐고 무엇보다 몹시 피곤했다.
하도 울어서 퉁퉁 부은 눈은 뜨고 있는 것만도 힘들었다. 어차피 꿈이 아니라면 어서 이 장례가 끝나기만을 바랐다. 장례식은 정말 꿈결 같아서 제대로 기억나는 것이 없지만 장례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안에 흐르던 그 무거운 정적만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우리는 각자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쓰러지듯 잠을 잤다. 3일 만에 자는 잠은 슬프고 달았다.




 다섯 살 위 언니와 나 사이에는 놀랍도록 추억이 없어서 나는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이래도 될까’ 싶을 만큼 아프지 않았다. 온몸이 마취된 것처럼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데도 나는 불쑥 혼자 울었다. 피와 살 어딘가에 묻혀 있다가 불쑥불쑥 흘러나오는 존재. 나는 그것이 혈육인가 보다, 생각했다.
마취가 풀린 후 통증은 엉뚱한 곳에서 찾아왔다. 누군가의 죽음이 그저 그날 오전에 처리해야 할 일거리에 불과했던 영구차 기사가 언니의 유해를 “얼른  뿌리고 오라”며 퉁명스럽게 대했던 것이, 그래서 한 인간의 마지막 흔적을 고작 상조회사의 기사가 아무 의미 없이 가리킨 야산에 뿌려 없앤 것이, 그리고 그녀의 32년 삶을 단숨에 압사시킨 차주의 보험사가 그 삶을 제대로 정산했는지 따져 묻지 않은 것이 두고두고 가슴 한켠을 저리게 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때는 채 식지도 않은 주검으로 돌아온 딸의 얼굴을 만지며 “아직 따뜻한데요. 살아 있는 거 같은데요. 안 죽은 거 아입니까?”라고 의사를 붙들고 물었다는 아버지가 떠오를 때다. 혹시라도 의사가 너무 일찍 자신의 딸을 포기한 게 아닌지 그 순간 아버지는 얼마나 간절했을까. 그녀가 태어났을 때 세게 쥐면 부서질 것처럼 연약한 그 생명을 손에 안아본 후 아버지는 비로소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다고 했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비빌 언덕도 없어 마음 둘 곳 없었던 가난했던 남자에게 그녀는 뿌리 같은 존재였다. 그녀가 떠난 후 ‘자식이 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뿌리가 잘려나간 곳에 통증을 느낄 아버지를 생각하면 나는 마음이 칼로 베이는 것처럼 쓰리다. 방파제에 매달린 이름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모두 얼마나 귀한 존재들일까. 지금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을까. 배 안에 갇힌 사람들은 손을 뻗고 있다고 하는데 어둠 속에서 그 손을 잡아줄 누군가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까. 새끼들의 손을 잡아주지 못해 까맣게 돌이 되어가고 있는 가족들의 고통을 지켜보는 우리는 무얼 해야 할까. 구조작업을 하는 잠수사에게 “승무원복 입은 우리 아들, (단원고) 학생들과 구분하지 말고 같이 구조해 주시길 간절히 부탁한다”고 적힌 쪽지를 건네며 수도 없이 머리를 조아렸다는 어느 부모의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가족을 잃은 슬픔도 모자라 무뢰한들에게 난도질당한 외상으로 피를 철철 흘리는 그들을 65보며 우리는 무엇부터 해야 하나.



함께 울고 함께 기다리는 것, 그것밖에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그것만이 지금 우리가 온몸으로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곡을 할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의 옆에서 축구공을 던져 올리고 요란한 응원가를 틀어 광장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세력들이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다. 진흙탕 같았던 선거 유세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성실하게 세월호를 지워가고 있다.
혈육의 죽음도 잊는 나약한 인간이 추억 한 가닥 없는 이들의 죽음을 잊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바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다 보면 잊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 어느새 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야만적인 세상에 그저 무력한 인간으로 살아감이 한없이 슬픈 날, 그 마음 그대로 팽목항에 가보시라. 마음이란 걸 가진 인간이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나. 간절한 마음으로 바닷속에 가라앉은 세월호의 선체로 들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열두 명의 손을 잡아주시라. 너무 많이 변한 그들의 얼굴에 놀라 고개 돌리지 말고 두 눈 부릅뜨고 보아야 한다. 가장 깊은 곳에 있던 사람들과 그들을 구하러 내려간 사람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에게 전해야 한다. 항구엔 따뜻한 옷과 밥을 챙겨놓고 그대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그대가 사라지는 만큼 까맣게 굳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돌이 되기 전에 당신의 눈물 같은 뼈와 살 그대로 꼭 돌아오시라. 하루라도 빨리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편히 잠들어 꿈에서라도 그 따뜻한 품 꼭 안아보시라.
그리고 기어이 말해야 한다.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마지막 잠수사가 들어와 그대의 손을 잡는 그날까지 함께 기다리겠습니다.







※이 글은 은전 님이 지난 6월 ‘기다림의 버스’를 타고 팽목항에 다녀와 쓴 글입니다. 10월 29일 황지현 양의 시신이 발견되었고, 실종자 9명은 아직 찾지 못한 상태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53 2014가을 102호 - 나의 저상버스 첫 경험 ○●○ 나의 저상버스 첫 경험 노들야학 수빈 나는 그동안 저상버스를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었다. 저상버스라는 것이 뭔지도 몰랐다. 어렸을 때 엄마 등에 업혀 몇 ... file
52 2014가을 102호 - [형님 한 말씀]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형님 한 말씀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노들 김명학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벌써 가을이 우리 곁으로 다가 오고 있습니다. 이젠 제법 아침 저녁으로는 찬 기운이 느... file
51 2014가을 102호 - [노들아 안녕] 노들야학 가나 노들아 안녕 ○●○ 한가위에 부치는 연애편지 노들야학 가나 당신에게 한가위는 잘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가나’입니다. 당신을 만나고 나서부터 저는 ‘가나’라는 ... file
50 2014가을 102호 - [노들아 안녕] 노들센터 현수 노들아 안녕 ○●○ 잠시만 안녕?! 노들센터 현수 정말 오랜만에 노들바람 지면을 통해서 인사드리네요. 마지막으로 쓴 것이 97호 [뽀글뽀글 활보상담소]였으니, 꽤 ... file
49 2014가을 102호 - [나는 활동보조인입니다] 최영은 님 나는 활동보조인입니다 ○●○ 언니와 함께하는 월요일 최영은 활동보조인 4시. 지하철역에서 언니를 만난다. 오전 활보님과 교대. 이때부터 수다는 시작된다! 먼저 ... file
48 2014가을 102호 - [뽀글뽀글 활보상담소] 조사와 점검이 계속된다 뽀글뽀글 활보상담소 ○●○ 조사와 점검이 계속된다 노들센터 활보팀 요즘 장애인활동지원기관들이 바쁘다. 연금공단이니 구청이니, 각 관청에서 계속해서 이런 저...
47 2014가을 102호 - 꽃동네 가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 꽃동네 가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노들야학 덕민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서울협회 회장,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그리고 이... file
46 2014가을 102호 - 당신에게, 나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기고 간 메시지 당신에게, 나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기고 간 메시지 [ 8월 14일 한국 주교들과 만난 자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 “희망의 지킴이가 된다는 것은 또한, 가난한...
45 2014가을 102호 - 뭔지도 몰랐던 인권교육, 어느새 1년 ○●○ 뭔지도 몰랐던 인권교육, 어느새 1년 노들야학 기영 안녕하세요. 저는 기영이라고 합니다. 저는 인권교육이 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전 잘 몰라서 안 한다고... file
44 2014가을 102호 - 활동가 대회를 다녀온 후 ○●○ 활동가 대회를 다녀온 후 센터판 순영 안녕하세요. 저는 센터판 엄순영입니다 처음에 활동가대회라는 것이 있다는 말을 듣고, 가서 뭐하는 걸까? 궁금 하기도... file
43 2014가을 102호 - 전쟁터가 만난 바닷가 ○●○ 전쟁터가 만난 바닷가 노들야학 재연 이글을 내가 쓸 줄이야 이놈에 노들 미워.... 여행 갔다 온 지 두 달이 돼 가는데 참 일찍도 쓰라고 한다. 부담스럽게 ... file
42 2014가을 102호 - [자립생활을 알려주마] 다음에는 어디를 가보고 싶어요? 자립생활을 알려주마 ○●○ 다음에는 어디를 가보고 싶어요? 노들센터 성근 추석이 지나고 무더위가 한풀 꺾인 9월 15,16일 처음으로 노들 체험홈 입주자 분들과 즐... file
41 2014가을 102호 - 올라! 스페인-! ○●○ 올라! 스페인-! 14. 10. 13 노란들판 해니 일정 : 8/29 ~ 9/10 (10박 12일) 목적 : 일상 탈출, 휴식, 잠깐 이 나라를 떠나고 싶어서… 도시 : 말라가, 세비야... file
40 2014가을 102호 - 우리, 이래서 바쁘다! ○●○ 우리, 이래서 바쁘다! - 장애인문화예술판 10월 내지 11월 일정 안내 - 문예판 안수 원래는 내가 연출을 맡아서 준비하고 있는 공연에 대한 썰을 풀어볼까 했... file
39 2014가을 102호 - 도움반에서 드리는 편지 ○●○ 도움반에서 드리는 편지 김혜옥 김혜옥. 노들야학 창립 멤버. 3대, 5대 교사대표를 지냈으며 초등 특수교사입니다. 지난 3월, 전교 선생님들께 뿌린 메시지... file
» 2014가을 102호 - 온몸으로 함께 울고 함께 기다리는 일 ○●○ 온몸으로 함께 울고 함께 기다리는 일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노들야학 은전 대한문에서 출발한 버스는 다섯 시간 만에 진도에 들어선 후에도 한참을 ...
37 2014가을 102호 - 박경석 유언장 ○●○ - 박경석 유언장 - 어찌 보면 지금 유언장을 쓰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나는 해병대를 제대하고 잘 놀다가, 1983년 토함산에서 행글라이... file
36 2014가을 102호 - 오 그대는 아름다운 후원인 오 그대는 아름다운 후원인 ○●○ 노들이면서 노들을 후원도 하는(?) 서기현 님 9월에 어느 잔잔한 가을바람이 불던 날. 하월곡동 어느 한 사무실에서 반짝거리는 ... file
35 2014가을 102호 - 고마운 후원인들 2014년 10월 노들과 함께하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CMS후원인 강경완,강귀화,강남훈,강문형,강병완,강복원,강복현,강소영,강수혜,강영미,강유선,강정...
34 2014여름 101호 - 노들바람을 여는 창 노들바람을 여는 창 “저는 난생 처음으로 출구가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황금 해안에서 인간이 쏜 두 발의 총을 맞고 인간세계로 붙잡혀온 원숭이. 그때 볼에 ...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 Next
/ 58
© k2s0o1d5e0s8i1g5n. ALL RIGHTS RESERVED.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