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가을 120호 - ‘비와 당신’ 2019년 후원주점 평등한 밥상 / 진수
‘비와 당신’
2019년 후원주점 평등한 밥상
진수 | 언제부턴가 소나기에 발 젖는 걸 좋아 한다.
6시가 되자 소낙비가 내렸다. 후원주점이 가장 바쁜 시간에 눈치 없이 하늘은 비를 쏟았다.
두두두두 떨어지는 빗소리는 이제 막 끝난 쿨레칸과 야마가타트윅스터의 공연처럼 리듬있고 힘찼다. 비를 보자 후원 주점 준비팀들은 바쁘게 콘센트를 확인 하고 조리대를 천막 가장자리에서 안으로 옮겼다.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은 내리는 비를 보거나, 준비팀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비는 쉬이 그치지 않고 30분을 더 내렸다. 내리는 비는 주방 천막 지붕에 쌓여 지붕 가운데를 둥그렇게 가라 앉혔다. 몇 몇 사람들은 손을 하늘로 뻗어 천막 지붕위의 빗물을 바깥으로 떨어트렸다. 떨어트린 비를 맞은 다른 몇 몇 사람들은 ‘앗! 차가워!’ 하며 깡총깡총 뛰었다. 발이 젖자,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표정 대신에 얼굴에 웃음을 띄기 시작했다. 아마도 비를 받아드리기 시작하는 순간은 발이 젖는 순간부터 이리라. ‘후원주점에 비라니, 게다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는 시간에 비라니...’ 마음속에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순간, 비에 발이 젖은 사람들의 웃음 띤 얼굴이 보였다. 비에 젖은 사람들은 ‘후원주점이고 뭐고 다같이 비맞고 놉시다!’라고 흥을 돋거나, 천막 지붕에 있는 빗물을 지붕 아래 있는 사람 몰래 떨어트려 놀래 키며 장난을 쳤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다 같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자 내 맘속에 있던 생각들은 ‘오~ 비내리는 후원 주점이라니, 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비를 맞다니!’로 바뀌었다. 그 순간, 내 발도 어느새 비에 젖어있었고, 내 얼굴도 웃음에 젖어있었다.
7시에 눈을 떴다. 너무 일러 다시 자고 눈을 떠 보니 8시. 후원 마당 준비팀장을 맡은 나는 9시까지 야학에 가서 천막치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서둘러 따릉이를 타고 야학으로 향했다. 마로니에 공원 앞에 따릉이를 세우고 핸드폰을 확인 했는데, 주머니고 가방이고, 핸드폰이 없다. 따릉이를 타도 나지 않았던 땀이 한꺼번에 몸을 적셨다. 후원마당 팀장이 핸드폰이 없이 후원마당을 진행해야 한다면... 등골이 오싹 했다. 왔던 길을 짚어 가며 핸드폰을 찾았다. 다행히도 핸드폰은 은행 씨디기 위에 있었다. 이런, 후원마당의 시작이 불길하다...
후원마당 준비팀들이 모이는 시간은 10시.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후원마당노동시간은 10시부터 10시까지 총 12시간. 뒤풀이 까지 노동으로 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렇다면,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까지를 더해, 누군가에겐 12시간 또 누군가에겐 24시간의 노동이 기다린다. 준비팀은 서빙팀과 주방팀으로 나눠 일을 한다. 서빙팀은 노들 주차장에 테이블과 의자를 깔고, 테이블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테이블 마다 번호를 매기고 테이블의 위치를 표시해 놓은 지도를 그려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벽에 붙여 놓는다. 테이블 세팅이 끝나면 서빙팀장이 서빙팀들을 모아놓고 서빙메뉴얼과 그날의 주의 사항에 대해 설명 한다. 자 이제 끝. 시작은 1시. 그때까지 쉬어야 한다. 오늘만큼은 쉼은 금이다!
주방팀은 주방테이블을 후원마당 한 켠에 세팅하고, 2층과 4층에 나눠 있는 후원 주점 준비물품들을 주방 테이블에 갖다 놔야 한다. 물품 이동이 끝나면, 주방팀장이 각 메뉴의 레시피에 대해 공지한다. 이번 후원주점 메뉴는 과일안주부터, 도토리묵, 소세지, 닭강정, 비건 얌운센, 먹태, 피자, 간재미무침, 궁중족발, 비건브라우니까지 무려 총 10개, 각 메뉴를 맡은 팀들은 레시피를 숙지하고 하루종일 안주를 만드는데, 그 중에 불앞에서 계속 만들어야 하는 소시지담당은 그 해 후원마당의 고생 아이콘이 된다. 올해 소시지 담당은 박00교사와 정00교사였다. 두 분 고생 많으셨다고 <노들바람> 지면을 빌려 한 번 더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1시가 됐다. ‘자~후원주점 시작 합니다.’ 라는 말을 외치고 후원인을 받는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노동의 시작. 후원 마당이 마무리 되는 10시까지 정신없이 후원인을 맞이한다. 그렇게 후원주점의 일은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다 모두 하나(일)가 되는 일이고, 노동에 노동에 노동을 하다, 나중엔 NO~동(動)을 외치는 일이라고 할까. 아무튼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시 6시 30분. 그로부터 비는 내 발이 젖은 그 시간 후로 30분이 더 지나고 나서야 그쳤다. 그 후의 이야기는 예상하듯 혹은 예상과는 다르게 끝이 났다. 그러니까 예상한 것처럼 다음날 아침에 해장국을 먹고 후원주점을 마무리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것과, 아침의 예상과는 다르게 후원주점은 성황리에 잘 마쳤다는 것이다.
비와 당신이라는 노래 가사와는 다르게, 비는 내렸지만 그날 내린 비처럼 당신은 왔다. 당신이 없었다면 노들야학 후원마당은 없었을 것이고, 노들에서 함께 먹는 급식은 어려워졌을 것이다. 600명이 넘는 인원과 단체에서 후원금을 보태주셨고, 당일 행사엔 100명이 넘는 인원이 후원주점일을 함께 했다. 비와 함께 온 당신께 그날 말 하지 못 한 참으로 고마운 마음을 이 글을 빌려 전한다.
‘노들야학 후원마당에 와주셔서 그리고 함께 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