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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야 같이 놀자]

울퉁불퉁 대명 길이 달라졌어요

 

박정숙 | 노들야학 한소리반 학생으로 고졸 검정고시 준비하며 노란들판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입니다.

 

말하자면 좀 긴 이야기이다.
또 말하자면 어이없는 사건이기도 하다.


종로구 혜화동에는 유명한 거리 대학로가 있다.
공연장이 즐비하고 여러 가지 먹을거리와 매일 밤 거리공연이 있는 마로니에 공원. 주말이면 밤도 낮같이 거리에는 많은 인파가 오가는 곳, 그냥 편안한 곳이다. 이곳에 또 나름 유명한 길 대명로가 있다. 이 길엔 극장 CGV가 있고 먹을거리 볼거리들이 즐비해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다. 나는 이 부근에서 이사 다니며 36년을 살았다. 그동안 혜화동과 대학로를 잇는 길바닥에 보도블록들은 여러 번 뜯기고 깔리고 그때마다 미관상 아름다움을 위해 조금씩 불편해지는 것 같았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은 성대 부근이다. 집에 가려면 지나야 하는 서너 개의 길 중에 이 길을 가장 좋아해서 이틀에 한 번은 대명로를 지나서 퇴근한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길바닥 정비를 한다는 안내가 붙어서 잘 됐다 싶었다. 좁은 길에 양옆으로 턱이 있어서 갈 때마다 덜컹거리고 불편해서 민원을 넣을까, 생각만 하늘만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심 반가웠다. 그냥 무심히 광고걸개 걸린 것만 보고 지나쳤지 들여다볼 생각은 안했고 공사한다고 해서 한동안 그 길을 지나가지 않았었다.

얼마 후 그 길로 지나가야 했는데 전동스쿠터가 전복될 뻔했다. 실려 있던 작은 짐들이 튀어나가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주워주며 걱정을 해주었다. 엉덩이와 허리가 충격으로 통증이 심하게 와서 일단은 멈춰야 했고 살펴보게 되었다. 군데 군데 파헤쳐 지고 한 쪽으로 돌들이 쌓여있고 내가 지나다 멈춘 곳은 초록색 두꺼운 부직포로 씌워져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그 아래 울퉁불퉁한 돌판을 깔고 덮어둔 것을 모르고 내가 지나가다 사고가 난 것이다. 어찌어찌 집에는 갔지만 스쿠터가 퉁퉁거리며 온몸이 흔들려 머리가 아프고 엉덩이가 깨지는 줄 알았다. 욕이 절로 나는, 멋진 것도 뭣도 아닌 보기에도 무서운 불편한 길이 되었다. 그날 이후 얼마간 허리통증으로 고생을 했다.

이 길은 노인도 지나가고 장애인도 유모차도 먹거리 구르마도 지나가야 하는데 모두가 힘겹게 지나거나 어린이들이 뛰어가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대형사고가 날 게 뻔한데도 종로구가 세비 처들여서 새로 정비한다는 길바닥은 많은 사람들을 배재한 불편한 길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 동네에 살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이 길을 지나가야 할 텐데 생각하던 차, 교장선생님과 야학선생님들, 야학학생, 전장연 동지들과 페인트칠 투쟁을 하기로 하고 땡볕 아래서 우리의 요구를 외쳤다. 지나가던 시민들도 발이 삐끗했다고 한마디씩 거들어주었다. 또 노점을 하고 계시는 분들도 왜 이렇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셨다. 모두가 불편한 길을 디자인하고 공사 중인 구청 사람들만 모르는 듯했다.

우리는 누구나 편히 보행할 수 있는 길 휠체어도, 유모차도, 노점 구르마도, 덜컹 거리지 않고 지나다닐 수 있는 길로 전면 재공사해줄 것을 요구했고 약속을 받았다.

 

교통약자에게 편한 길이야 말로 모든 보행자들에게 편안한 길이라는 것을 이제는 좀 생각하면서 디자인하고 하고 공사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더불어 사는 것, 함께 산다는 것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실천에 있다.

 

이제 대명로는 변하고 있다. 아직 공사가 마무리 안되서 조금 어수선하지만 출근할 때 일부러 라도 꼭 이 길을 쌩쌩 달려온다. 만약 공사 끝날 때까지 알지 못했거나 우리가 투쟁하지 않았더라면 고쳐지지 않았을 테고,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새로운 공사에 울퉁불퉁 돌을 디자인이라고 깔고 다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잘못되어 불편한 것을 그냥 참고 견디기 보다는 바로잡음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것도 이번 일을 통해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혹시 대학로에 놀러 오면 대명로에 꼭 한번 가보기를 권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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