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가을 120호 - 서울 인강학교 공립화에 즈음하여 / 이승헌
서울 인강학교 공립화에 즈음하여
이승헌 | 사회복지법인 인강재단 대표이사
인사
자유롭고 평등한 노들장애인야학의 26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 한때 노들에 몸담았던 한 사람으로서, 장애의 문제를 당사자의 입장에서, 사회적 연대를 통해 풀어나가고자 하는 노들의 활동을 변함없이 지지합니다. 이제 오는 9월1일 공립 특수학교로 전환하는 서울 인강학교가 ‘공립화’를 넘어 노들처럼 모든 장애학생들과 교사들이 자유롭고 평등한 그런 특수학교로 발전해 나가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바램이겠지요?
그간의 과정
지난해 10월 서울 인강학교에서 발생한 사회복무요원의 장애학생 폭행 사건을 계기로 우리 인강재단 이사회는 서울 인강학교 공립화를 결정하고, 그동안 여러 절차를 거쳐 추진해 왔습니다. 토지를 측량하고, 학교 재산을 파악해서 서울시 교육청에 증여(기부채납)할 목록을 작성하고, 증여에 대해 이사회가 의결하고 서울시 승인을 얻는 등의 절차들을 진행했고, 서울시 교육청은 교육청대로 올 9월 공립학교 출범을 위해 예산을 수립하는 등 필요한 절차들을 진행했습니다. 이제 필요한 모든 절차가 완료되었고, 이제 인강재단과 서울시간 증여계약 체결, 등기 이전, 그리고 오는 2019년 9월1일 공립 도솔학교로의 새 출발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현재 서울 인강학교는 공립학교 전환에 앞서 필요한 실무 준비를 위해 지난 2019년 7월부터 서울특별시 교육청이 파견한 겸임교장과 겸임교감, 그리고 행정실장이 부임해 학교 운영을 총괄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울 인강학교 재직 교사와 직원들을 대상으로 공립교사, 직원 특별채용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중입니다. 교직원 특별채용절차는 8월 중 완료될 예정입니다.
서울 인강학교 공립화와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문제 중 하나가 ‘인적청산’의 문제일 것입니다. 작년 장애학생 폭행 사건 이후, 교육청의 특별감사가 있었고, 서울장애인인권센터 등 4개기관이 민관합동으로 조사한 ‘특수학교 장애학생 인권침해 실태조사’(이하 인권실태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인권실태조사 결과 서울 인강학교 내부에서 교사들에 의한 장애학생에 대한 광범위한 방임행위 등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되었고, 2019년 4월말경 우리 재단으로 그 결과가 공식 통보되었습니다. 우리 재단은 교육청 감사결과 및 인권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2019년 5월 자체보강조사를 거쳐 2019년 7월과 8월에 걸쳐 해당 교사들에 대한 징계처분을 완료했습니다. 지금은 징계처분을 받은 교사들이 징계에 불복하여 징계효력 정지를 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내거나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우리 재단을 제소하여 소송이 진행 중에 있고, 이 소송들은 아마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서울 인강학교 공립화의 의미
서울 인강학교 공립화는 사립학교 운영주체가 자발적으로 교육청에 재산 일체를 증여하여 공립학교로 전환하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사립 특수학교들에서 계속해서 발생해 왔던 수많은 인권침해 사례들에 대해 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강구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특수학교를 공립화시킨다 해도, 장애학생들을 비장애 학생들과 분리하여 교육한다는 측면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고, 여전히 초/중/고등학교 전 학령기를 하나의 학교에서 보내야 한다는 면에서 아주 근본적인 해결까지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첫째, 학교•교사-학부모•학생 간 관계의 변화, 학부모에 대한 학교/교사의 영향력 감소
사립특수학교의 경우 교사들이 한번 들어오면 정년을 채울 때까지 그 학교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또 학생들도 초등에서 전공과에 이르는 전 학령기를 한 학교에서 보내게 됩니다. 비장애 학생들의 경우 교사들과 문제가 되면 전학가면 되고, 전학을 가지 않아도 졸업하면 교사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장애학생들은 전학 갈 학교도 마땅치 않고, 초등학교를 졸업해도 다시 그 학교를 다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다보니 학부모들은 교사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비록 사립학교 교원이라 할지라도, 교육공무원으로서 엄격한 신분보장을 받고 있는 교사들을 상대로 학부모가 다퉈봤자 이기기도 쉽지 않습니다. 아이가 그 학교에 다니는 이상 학교와 교사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공립화는 이런 문제들을 어느 정도 해소할 것이라 전망합니다. 공립교사들은 적어도 다른 학교와 순환을 하기 때문에 완전히는 아니지만, 학부모와 학생이 학교와 교사들의 영향력에 종속적인 처지에 놓이는 것을 어느 정도는 완화시킬 것이라 전망할 수 있습니다.
둘째, 교직원 담합구조 해체
사립특수학교 교사들은 비록 사립학교 교사이지만, 처우는 공립 교사와 다를 바 없습니다. 넉넉한 급여와 철저한 신분보장은 물론, 입시 구조 속의 실적경쟁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오히려 일반학교 교사들보다 더 많은 시간적 여유를 누리기도 합니다. 이런 물질적 토대와 더불어 한번 정교사로 임용되면 정년에 이를 때까지 그 학교에서 보내야 하는 특성 때문에 다른 교사들, 학교 운영자들과의 유대를 매우 중요시하게 됩니다. 대체로 스포츠나 문화활동 등을 같이 하면서 유대관계를 쌓아나가게 됩니다.
이러한 유대관계들은 언뜻 보면 상당히 바람직해 보이지만, 강력한 신분보장과 물질적 여유에 강력한 유대관계가 더해지면 어떤 국면에서는 매우 강력한 담합구조로 작동하게 됩니다. 외부를 배척하고, 자신들만의 세계를 강고하게 하는 부정적 담합구조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에 학교와 교사들의 학부모들에 대한 영향력까지 더해지면 개혁을 좌절시키고, 정당한 민원을 기각시키는 폐쇄적이고 반동적인 담합구조로 기능하게 됩니다. 여기에 각 무리들간 패거리문화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의 난장판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문제가 있어도 묻히고, 학교 교육이 전체적으로 퇴행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공립화 추진은 이런 교사들의 부정적인 담합구조를 해소하는 효과도 가져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공립학교에서는 교장은 물론이고, 모든 교직원들이 다른 학교와 순환하게 되기 때문에 다른 교사 또는 학교 운영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학교운영을 좌지우지 하는 것도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이 밖에도 기존에는 교직원 임용시 사립학교 운영자의 성향에 종속되었다면 공립학교의 경우는 공립전환시 있는 한시적인 특별채용을 제외하면, 향후에는 임용고시라는 엄격한 절차를 통해 임용된 교사들이 교육활동을 맡게 되기 때문에 교원의 자질과 교육활동의 질적 향상 또한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서울 인강학교의 공립화 추진은 비록 그것이 장애인 특수교육의 많은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라기에는 여전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서울 인강학교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립 특수학교들에서 발생했던 장애학생 인권침해, 교육권 침해 사건들의 구조적인 원인들을 상당부분 완화하고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