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겨울 117호 - TFT 전문가 PKS를 만나다 / 최한별
[2018 여름 <노들바람> 115호 中]
TFT 전문가 PKS를 만나다
최한별 │비마이너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고양이,떡볶이를 좋아합니다.
사주는 거 대환영♥ 만들어주는 건 더 환영♥
정말 어렵게, 어렵게 만났다. 박경석 고장쌤. 이 인터뷰는 긴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세 달 전, 평창패럴림픽을 앞두고 있던 3월 어느날이었다.
뉴미 : 한벼리 아이원츄 아임 청탁 투 유. 노들바람에서 한별이에게 청탁을 하려고 해. TFT 전문가 PKS, 온갖 TFT 다 들어간 박경석 고장님. TFT 진행상황과... 박경석의 일상은 어떻게 되었는가. 뭐 그런 글을.
한별 : 일상...파괴된거 아닙니까.
뉴미 : 응 그런...웃픈상황...잘 써줘 한벼리
요지는 이렇다. 5년에 걸친 길고 뜨거운 광화문농성의 결실로 일궈낸 '민관협의체(Task Force Team, 줄여서 TFT)'들. 장애등급제폐지, 부양의무제폐지, 탈시설, 이동권 등등....TFT란 TFT엔 모두 들어가 있는 박경석 고장쌤. 원래도 이 사람의 '일상'에 온통 일뿐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여기에 TFT까지 겹치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일까....하는 의문이 '원고청탁'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짧은 인터뷰는 그로부터 3달이나 흐른 6월 19일, 유리빌딩 4층에서 우연히 한 테이블에 급식을 먹기 위해 앉으면서야 극적으로 이뤄졌다. 세 달 만에 이뤄진, 그것도 우연히 가능했던 이 인터뷰는 나의 게으름과 건망증, 그리고 비마이너 기자의 바쁨을 조금 증명함과 동시에, 고장쌤의 살인적 스케줄을 많이 증명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많은 사람이 마치 '태평
성대'가 이뤄진 것처럼 생각한다. 이전 대통령들이랑 다른, '좋은' 대통령이라는 생각이다. 인간적이고, 소통할 줄 알고, 따뜻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장애인정책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TF를 잔뜩 구성하긴 했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없으니까. 고장쌤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때보다 싸우는 게 더 힘들다"고 했다. "아예 우리 말을 안 들으면 투쟁 빡세게 하면 되니까. 근데 이번 정부는 우리 말 듣는 척은 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도 안 듣고 있고....그러니 우리는 대화도 하면서 투쟁도 조직해야 하는 거지."
고장쌤은 "TF가 다 미뤄지고 있다"고 했다. 본래 6월초에 계획되어 있던 회의를 정부 측에서 줄줄이 연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TF에서 유의미한 정책이 결정된 것도 없다. 등급제폐지 TF에 복지부가 들고 나온 '등급제 폐지안'은 복지부가 3차례 진행한 시범사업 결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탈시설 TF 역시 지지부진하다. 모두 '예산부족'을 이유로 들고 있다. 보통 고장쌤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비마이너 기자로서 인터뷰하는 것이다 보니, 갑자기 고장쌤 인터뷰 톤이 된다.
경석 문재인 정부가 차별금지법이나 등급제 등 소수자 이슈에 있어서는 여전히 이전 정부와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하고 있으니, 우리는 대화를 이어 가면서도 한 쪽에서는 계속 투쟁해야 해요. 대화에 안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대중 투쟁을 조직하고 이슈를 제기해야 하지.
한별 교장쌤 그런 딱딱한 '전략' 말구요, 이 지지부진한 정부를 향해 계속 대화하고, 싸우는 과정에서 박경석 개인이 느끼는 감정은뭐예요? 노들바람 독자분들은 박경석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경석 어? 흠흠...난 이런 거 고민하는 게 즐거운 일이야. 할 게 없어서.. 이런 고민 외에는 고민이 별로 없어. 나처럼 단순무식한 사람은. 나는 어디 가서 쉬라고 해도 늘 어디를 점거할까...그런 생각만 하게 되던데.
한별 그거 약간 독재 아닙니까. '나 아니면 안 된다', 이런...약간 박정희 같은데?
경석 그래 보일 수도 있는데. 난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나중에 전장연 사람들이 다른 대표를 뽑으면 그 대표의 색대로 저항해나갈 수 있겠지. 지금은 나를 뽑아줬잖아 사람들이. 그럼 박경석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을 거란 말이야? 그래서 나는 내게 주어진
일을 한다! 그래서야.
한별 응 그렇구나. 그래도 교장쌤 주어진 일을 오래 하려면 잘 쉬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너무 안 쉬시는 것 같아요. 잠은 하루에 몇 시간이나 주무세요? 3시간? 4시간? 어젯밤에 분명 사람들이랑 술 먹고 있었는데 다음날 새벽 여섯시에 저한테 자료 보
내준 적도 있잖아요...진심 소름....
경석 야, 일하는 게 얼마나 즐거운데. 집에서 5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벽만 쳐다보고 있어봐. 얼마나 일하는 게 소중하다구.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다.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후, 집 안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보낸 세월을, 이 사람은 이렇게 '만회'하고 있는 거구나, 하고.
경석 우리 어머니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잖아. 그때 서울대병원에서 장례 치렀는데, 입관할 때 보니까 작년에 종필이(고 박종필 감독님) 입관하던 거기야. 종필이도 서울대병원에서 장례했잖아. 입관 전에 그 차가운 철제 침대 위에 누운 어머니와 종필을 보면서... 나의 죽음을 생각하게 됐어. 나도 언젠가 저기 누울 텐데. 그때 누가 내 모습을 봐줄까. 그때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야겠다, 싶어.
한별 음...그렇구나. 그래도요 교장쌤, 시간도 한정적이지만 인간의 몸도 한정적이잖아요. 열심히도 좋지만... 잘 쉬는 것도 잘 싸우기 위해 필수적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교장쌤 정말 많이 걱정해요. 오래 같이 활동하면 좋겠는데 너무 자기 몸 안 살피고 일만 한다고요.
사람들이 걱정한다는 말을 듣더니 교장쌤이 갑자기 들다방 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컵을 내려 놓은 교장쌤 눈이 좀 빨갰던 것도 같고.... 잠시 탁자를 내려다보던 교장쌤이 다시 장난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경석 그러고 보니 운동 시작하면서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네. 내가 노는 법을 너무 못 배운거 같아!
한별 와 나 정말 잘 가르쳐줄 수 있는데.
경석 그래? 배워야겠네.
한별 돈 내시면 가르쳐드릴게요^^
인터뷰는 또 30분 만에 끝났다. 교장쌤도 나도 다시 빡빡한 일정으로 되돌아가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짧은 시간은 엄청나게 밀도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늘 교장쌤을 속을 참 알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3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술도 없이 벌건 대낮에 교장쌤을 너무 많이 엿본 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 너무나 바쁘다. 교장쌤 말고도 노들야학 상근자들, 전장연
활동가들, 센터 활동가들... 정말 다들 얼마나 바쁜가! 우리 서로 많이 걱정해주자. 내가 당신을 소중히 여긴다고, 그래서 걱정이 된다고, 많이 말해주면 좋겠다. 우리의 걱정이 '쉬는 시간'을 만들어주진 못할지언정, 내 곁에 '동지'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소중한 순간을 만들 수는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