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겨울 113호 - 누구의 일도 아닌 일 / 장선정
누구의 일도 아닌 일
장선정 (‘장식당’ 주방장)
쓸데없이 부지런한 노란들판 노동자. 쓸데없이 원칙주의자인 각종 잡무 담당. 쓸데없이 손이 큰 게릴라 레스토랑.
아시는 분은 알고 계시겠지만, 무척이나 오랜 세월 교장이어서 마치 태어날 때부터 교장이었을 것만 같은 박경석과 저는 노들장애인야간학교 교사동기예요. (역시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심지어 제가 선배랍니다.) 같이 신임교사 트레이닝을 시작해서 함께 인준을 받았어요. 그 후에, 박경석이 우직하고 끈덕지게 노들의 사람으로 남아서 광화문 사거리에서 버스를 멈추고, 지하철에 뛰어들어 쇠사슬을 묶는 동안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다 결혼 하고 아이를 낳았죠. 첫 아이를 낳고 막 젖을 뗐을 무렵 박경석이 연락을 했어요. ‘니가 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서 좋은 아르바이트를 소개해 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노란들판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사실 일을 시작했다기보단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상태로 그저 접어들었다고 하는 게 더 맞아요. 왜 그랬는지 어떻게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인생에서 어떤 일은 설명할 수 없이 별안간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2년이, 또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지나갔어요. 분명 4계절을 지났을 텐데도 몹시 추웠던 기억, 캄캄한 길을 달려서 아이를 데리러 가던 기억, 항상 피곤했던 기억 정도가 남아 있어요. 그러다 노란들판을 그만두게 되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제 인생에 큰 위기였던 것 같아요. 몹시 고통스럽고 힘들었어요. 왜 아문 상처를 문득 다시 봤는데 다쳤던 순간이 떠오르면서 다시 아픈 것 같은 그런 느낌 있잖아요.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목이 따끔거려요. 2일을 정리하고 있던 어느 날, 박경석이 찾아 와서 이렇게 말했어요.
‘이제 너도 다 컸는데 책임을 나눠줘야지 힘들다고 그렇게 그만두면 어쩌냐.’고요. 트레이드마크인 혀짧은 소리도 없던 그 한 문장이 그 후로 오랫동안 제게 마음의 빚처럼 남아 있었어요.
7년이 지났고, 다시 마치 그렇게 되기로 정해져 있었다는 듯 저는 노란들판으로 돌아 왔어요. 막 스무살이 되었을 때 천지분간 못 하는 막내교사로 노들에 들어왔는데 이젠 젊은 직원들의 대화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나이가 되었어요.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마음을 말씀드려 볼게요. 저는 생각이 많고 그야말로 쓸데없이 진지한데다 저한테만 오면 개그가 다큐가 되는 비관성을 타고 났어요. 애써 노력해야 보통이 될까 말까 그래요. 그렇지만 노란들판으로 돌아오면서 결심한 게 있었어요. 업무능력이 기대에 닿지 못 하고 내 마음만큼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 하더라도 나는 ‘누구의 일도 아닌 일’을 하는 사람이 되자고요.
정교하게 업무분장을 해도 어딘가 구석엔 반드시 ‘누구의 일도 아닌 일’이 있더라구요. 또 대개 그런 일들은 미루면 미뤄지고, 해도 티가 잘 나지 않거나 아무도 모르기가 쉽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런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으로 조용히 바지런하고 싶었어요. 비록 현실은 지각하는 직원들에게 잔소리를 하고 월마감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고객과 싸우면서 항상 시끄럽게 굴고 있지만요.
여러 이유로 2017년을 무척 어렵게 마무리 하고 있어요. 시린 발 구르다 보면 또 어떻게 지나가게 되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에겐 항상 긴 시간보다 어느 순간을 겪어내기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 시간을 통과하고 있어요.
‘내가 이러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어서도 ‘당신도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싶어서도 아니고,
그저 저는,
한 개인으로
또 “노란들판”이라는 노력하는 기업의 구성원으로 ‘누구의 일도 아닌 일’을 발굴하기 즐기는 쫌 쓸데없이 부지런한 직원으로 열심히 살고 싶어요. 내년에도 모두모두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