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봄여름 104호 - [교단일기] 안녕! 노들 미술반!
사진 : 미술 수업 시간
*ㅈㅅ형
ㅈㅅ형은 붓보다는 크레파스나 색연필, 사인펜 같은 재료를 쓰는 것을 편안해합니다. 그리고 그림을 다 완성하면 꼭 그림에 대한 내용을 물어보세요. 그림 설명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ㅈㅅ형의 그림 안에는 늘 같은 영웅들이 등장합니다. 교장 선생님, 영희 선생님, 민구 선생님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차를 그리는 것도 좋아하는 ㅈㅅ형의 그림 속에서 ㅈㅅ형은 세 영웅들과 함께 차를 타고 떠나기도 하고, 세 영웅들과 함께 야학에 오기도 하고, 세 영웅들과 함께 과거로의 여행도 합니다. 그림을 설
명하고 있을 때 ㅈㅅ형의 모습은 극적인 모험에서 갓 돌아온 영웅 같습니다.
*ㅇㄹ씨
ㅇㄹ씨는 손에 경직이 있지만 끈기 있게 끝까지 혼자 그림을 완성합니다. 관찰력이 뛰어나고, 그림을 정말 좋아하세요. 속도가 남들과 다르다고 조바심 내지 마세요. 그 누구보다 세밀하게 멋진 그림을 그려 낼 것입니다.
처음 ㅇㄹ씨가 제 수업에 들어왔을 때를 기억합니다. ㅇㄹ씨 어머니는 “ㅇㄹ가 뭘 할 수 있겠냐. ㅇㄹ는 못한다.” 라는 말씀부터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의 그림은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멋진 그림의 진면목을 어머니가 봐주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면 어머니께, 늘 ㅇㄹ씨의 작품을 보여드리면서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전했습니다. 얼마나 반복했을까요. “ㅇㄹ가 그런 이야길 하고 싶었구나.” 하시더니, 언제부턴가 “역시 ㅇㄹ가 잘한다. 우리 ㅇㄹ가 그림을 잘 그려요.”라고 했을 때, 전 정말 기뻤습니다.
*ㅎㅇ언니
ㅎㅇ언니는 자율적으로 수업을 합니다. 제가 준비해간 수업을 따라 온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림을 그리고 흙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신체장애를 가진 학생들에게 수업보조인이 먼저 배정되는 것을 많이 섭섭해 합니다. 수업보조인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참! 수업보조인은 꼭 남자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수업보조인에게 반말을 할 때가 많아서 종종 수업보조인의 얼굴이 벌게지곤 합니다. 저에게도 상처 되는 말을 많이 해서 처음엔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럴 땐 당황하지 마시고 단호히 상황을 정리해야 합니다. 수업 중에 상처받는 사람이 생기면 안 되니까요.
몇 년 전이었습니다. 어느 날 수업에 들어온 ㅎㅇ언니가 포장을 채 뜯지도 않은 화려한 브로치를 보여주었습니다. 웬일인지 굉장히 부끄러워했습니다. 평소엔 남성복을 입고 다녀서 몰랐는데 그날 이야길 들어보니 화려한 액세서리를 좋아해서 남들 모르게 집에 모아만 놓았다고 합니다. 왜 평소엔 하시지 않는지, 왜 남들에겐 들키지 않으려고 하는지 이야길 들었습니다. 그날 언니는 우리 모두 앞에서 멋지게 브로치를 착용해 보였습니다. 우리는 누구랄 것도 없이 너무너무 예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빨개진 얼굴로 가방 깊숙한 곳에서 귀걸이와 목걸이를 꺼내 착용하였습니다. 엄청나게 크고 반짝거리는 액세서리들보다 언니의 웃는 얼굴이 훨씬 반짝거렸습니다. 언니는 ‘예쁜 것’을 좋아하는 분입니다. 그림에도 화려하고 다양한 색깔을, 아주 많이 쓰는 걸 좋아한답니다. 그날 이후 종종 멋진 액세서리를 하고 등교하시는 언니의 모습이 너무 예뻐서 웃음이 번지곤 했습니다.
*ㅈㅇ형과 ㄱㄴ언니
ㅈㅁ형, 그리고 ㄱㄴ언니와 원활히 수업하기까진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수업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하고, 스스로 무언가를 그리거나 만드는 것을 전혀 따라오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소양이 많이 부족했던 이유였습니다. 그냥 미술을 전공했던 저였기에 좀 더 전문적인 지도가 필요한 두 분에게 적절한 지도를 할 수 없었습니다. 제일 좋고, 맞는 방법은 두 분을 지도할 수 있는 전공자 교사가 일 대 일 수업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죄송하게도 여건이 되지 못했습니다. 열 분이 넘는 학생과 함께 수업을 하는데 두 분에게만 붙어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두 분께는 비전공 보조교사가 붙더라도 한계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전 늘 두 분께 죄송했고, 풀지 못한 숙제 같았습니다.
제가 전체적인 수업을 이끌면서도, 두 분은 보조교사와 함께 수업에 참여하실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해 봤습니다. 반년쯤 지나니 감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ㅈㅁ형의 경우 수업내용을 쉽고, 자세히 풀어 설명하면 이해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수업 초반에 심도 깊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무엇을 할지 정하면 그 다음부턴 보조교사와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보조교사는 단계별로 보여주면 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ㅈㅁ형이 돼지를 그리고 싶을 때, 완성된 돼지를 보고 그리거나 상상해서 그리진 못합니다. 하지만 한 개의 동그라미를 보조선생님이 그리면 그것을 보고 따라 그립니다. 큰 동그라미와 여러 개의 작은 동그라미를 하나씩 따라 그리다 보면 ㅈㅁ형이 그리고 싶어 했던 돼지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만들기의 경우도 같습니다. ㅈㅁ형이 만들고 싶으신 것을 보조교사가 한 단계씩 보여주면 따라 만드는 겁니다. 이렇게 스스로 결정한 것을 혼자 완성했을 때 굉장히 기뻐합니다. 저 또한 기뻤습니다.
ㄱㄴ언니의 경우 수업내용을 따라오기 어려워합니다. 해서 수업내용에 상관 없이 언니가 그리고 싶거나 만들고 싶은 활동을 합니다. 그것은 주로 단순 반복 작업일 때가 많습니다. 동그라미를 반복적으로 그리거나, 지점토로 동그라미를 수없이 만들거나 하는 식입니다. 색종이를 작게 수없이 자르기도 합니다. 제가 할 역할은 언니가 만들어낸 수많은 파편들로 재밌어 할 만한 활동을 생각해내어 보조교사와 함께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작게 자른 색종이는 꽃받침을 그린 도화지에 붙이면 예쁜 꽃이 됩니다. 수 없이 만든 지점토구슬을 색색이 칠해 꾀어내면 예쁜 목걸이가 됩니다. 언니가 만들어낸 재료로 보조교사와 함께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사진 : 미술 수업 시간
사진 : 미술 현장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