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여름 142호 - 좌충우돌 신입교사의 연구수업 날 / 이하늘
좌충우돌 신입교사의 연구수업 날
이하늘
올해부터 노들야학 청솔1A반 국어수업을 맡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활동지원사를 하다가 교사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연구수업 날. 연구수업은 다른 교사분들이 수업에 참관하여, 그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평소 학생들과 수업을 진행할 때도 떨리는 편인데 오늘따라 손님이 많아서 그런지 심장이 두 배는 빨리 콩닥거렸다. 청솔1A반 수업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시는 분들은 7명 정도. 학생들과 나는 한쪽 분단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나머지 교사분들은 옆 분단에 각자의 메모지와 펜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 있다. 옆 분단의 교사들은 투명인간으로 생각하고 우리는 수업에 집중하면 된다고 말했지만, 학생분들은 벌써 아는 얼굴에 온통 신경이 쏠려 교실이 북적북적해진다. “오늘 왜 왔어요?”, “뭐해요?”라는 말이 교실에서 낭랑하게 울려퍼진다. 시작부터 식은땀이 난다. 오늘 수업은 어떠려나?

교실 오른쪽에는 청솔1A반 국어수업을 하는 이하늘 교사와 학생들이 있고, 왼쪽에는 연구수업 참관을 하는 교사들이 서 있거나 앉아 있다
내가 맡고 있는 수업은 청솔1A반 국어수업. 청솔1A반 국어수업에서는 각자의 일상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곳에서 나온 한글 단어나 문장을 공책에 써보는 공부를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한글 쓰기가 어색하신 분들이 모여있는 반이기에 쓰기 훈련을 중심으로 말하기와 듣기도 같이 공부하고자 한다. 연구수업 날 가져갔던 주제는 “나에게 온전히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하루가 주어진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로, 이것저것 생각해봤던 주제 중 나름 고르고 골랐던 주제였다. 그런데 아뿔싸! 질문이 조금 어려웠는지 대답을 어려워하신다. 뒤쪽에 앉아계신 몇 분은 벌써 다른 곳을 쳐다보거나 핸드폰을 본다. 어디가 어려우신 걸까? ‘자유로운 날’이라는 단어가 생소했던 걸까? 아니면 어떤 날을 추론하고, 연상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걸까?
가끔 수업을 하다 보면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부분들이 당연한 게 아님을 느낄 때가 있다. 이를테면 나는 인문학 공부를 좋아해서 그런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에서 곧잘 공부를 하곤 했는데, 너무나 읽기 어려운 책을 마주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하는 공부법은 ‘낭송’이나 ‘필사’였다. 따라서 공부를 할 때 막힌다면 누구나 낭송이나 필사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청솔1A반 수업 계획을 할 때 완전히 깨졌다. 낭송이나 필사는 어디까지나 ‘한글’이라는 글자를 충분히 그리고 익숙하게 사용하는 사람들만 가능한 공부법이라는,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모종의 이유로 문자 자체를 공부하기 어렵거나, 공부하지 못했다면 배제되는 세계도 있다. 그런 세계에서 당연하게 일상을 영위하는 삶은 어쩌면 상당한 권력의 자리이기도 하다. 종종 이런 상황을 만날 때마다 이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다행히 수업은 계속해서 진행된다. ‘자유로운 날’이라는 말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을 드리고, “여러분은 쉬는 날에 무엇을 하나요?”라는 우회 질문을 덧붙였더니, 학생분들은 이런저런 대답을 해주셨다. 교회에 가신다는 분도 있고, 늦잠을 자고 싶다는 분들도 있고,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분들도 있었다. 야학에 오고 싶다는 분들도 있고,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분도 있다. 이럴 때 수업은 내가 어줍잖은 실력으로 공을 던지고, 학생분들이 잘 받아주는 캐치볼 같다. 괜스레 뿌듯하기도 하고, 즐겁다. 그렇게 생각하기가 무섭게 갑자기 옆에서 한 학생분이 “저도 얘기할래요!”하며 자기 얘기를 시작하신다. 수업 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문제는 다른 학생분이 얘기하시는 중이었다는 것이다. 그분께 다른 분이 이야기할 때는 그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린다. 하지만 너무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으신지 그 상황은 여러 번 반복된다. 이번에는 갑자기 수업시간에 교실 밖으로 나가는 분도 계신다. 어디 가냐고 여쭤보니 전화를 하러 가신단다. 당황스럽지만 일단 잘 다녀오라고 말한다. 옆에서는 여전히 수업이 지루하다는 표정을 하며 모든 대답에 잘 모르겠다고 하는 분도 있다. 괜찮으신 건지, 수업이 재미가 없는 건 아닌지, 눈치가 보인다. 책상 끝에는 공책을 펴놓고 한 손에는 연필을 들고 있지만, 시선은 핸드폰 속으로 빨려들어 가 있는 분도 있다. 그분의 이름을 부르니 슬쩍 웃으시며 핸드폰을 내려놓으신다. 이럴 때 수업은 뭐라고 해야 할까? 교사와 학생이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실현시키려 찌르고 막는 전투의 한복판이라고 해야 하나? 마치 펜싱의 한 장면 같다.
캐치볼이기도 했고, 펜싱이기도 했던 수업은 어느덧 끝난다. 휴~ 무엇보다 오늘도 무사히 수업을 마쳐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가장 먼저 올라온다. 어느덧 교사들끼리 남아 오늘 수업에 대해 평가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평소 나는 내가 수업하는 모습을 3자의 시선으로 볼 일이 없었지만, 오늘은 동료들 덕분에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해도 어떤 평가가 나올는지, 수업을 잘하긴 한 건지 하는 자의식에 얼굴에 열이 많이 뜨기도 하지만 말이다. 다행히(?) 동료들은 자신의 수업 노하우도 알려주고, 내 수업에서 보완할 점도 알려주었다. 생각보다 비슷하게 어려운 지점을 겪는 게 재밌기도 하고, 그 상황을 각자 마주하는 방식이 달라서 좋았다. 무엇보다 학생들에 대한 관심에서 나오는 여러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학생 개개인이 어떤 마음인 것 같은지, 그가 공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노하우를 나눈다.

‘첫수업교사 연구수업(이하늘 청솔1A반 국어수업)’ 간담회
노들야학이라는 시공간 위에서 벌어지는 수업이라는 사건은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이곳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을까?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오히려 답이 있다면 재미없을 것이다. 다음 수업을 기다리고, 또 다음 수업을 기다리며 계속 고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