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여름 108호 - 수연 언니 외박기
수연 언니 외박기
김지윤 | 수연 언니 활동보조인, 청솔1반 담임, 낮 수업 강사, ‘아싸클럽’ 및 ‘내 몸 찾기’ 모임 및 ‘노들인문학세미나’ 열혈 회원, 무엇보다 교사회의 뒤풀이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노들야학 덕후 지윤입니당.
안녕하세요? 노들장애인야학 수연 언니의 활동보조인 김지윤입니다. 『노들바람』에는 신임 교사 소개 글을 쓴 이후 두 번째 기고를 하게 되었네요. 저는 수연 언니의 활동보조인이자 야학에서 세 학기 째 수업을 하고 있는 교사이기도 합니다. 수연 언니는 야학 낮 수업(성인발달장애인 평생교육 프로그램)의 보조 강사를 하면서 좀 더 자주 보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활동보조까지 하게 되었네요.
애독하고 있는 『노들바람』에 글까지 쓰게 되니, 언니와 저의 인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언니와 제가 ‘노들’이라는 공동체에 이렇게 같은 시기에 와서 만나게 된 것만 해도 실로 놀라운 일인데, 30여명 교사와 90여명 학생 중 활동보조인과 이용자로 함께하게 되다니! 우리는 전생에 옷깃을 엄청나게 부딪쳤나 봅니다.
활동보조인을 시작한 것은 지난 6월로 이제 약 8개월이 되어 가는데, 그 기간 동안 참 다사다난했습니다. 언니와 제가 예전보다 훨씬 밀접해진 관계에서 쌓은 여러 추억들도 그렇지만, 야학 차원에서 일어났던 많은 일들이 언니와 저에게 적잖게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저도 언니도 각자의 삶, 우리의 만남, 정체성 등등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단연 언니의 외박! 아직 그만큼은 못살아 봤기에, 37년의 인생을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그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언니가 외박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는 것은 저에게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여기에서의 외박은 그러니까 ‘부모’ 없이 친구들이랑 유흥을 즐기며 밤을 공유해 재밌게 노는 것이 되겠지요.
학창 시절에 부모님, 특히 아버지의 엄청난 감시와 통제 아래 억압받고 살았던 저는 스무 살을 기점으로 인생의 대전환을 맞게 되는데, 거기서 얻은 ‘자유’란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기존의 억눌림이 워낙 심했던 탓도 있겠지만, 물리적으로 멀어짐―부모님은 안동에, 나는 서울에―을 통해 제 인생에서 어느 날 갑자기 자유가 찾아왔고, 저는 이때부터 비로소 진정한 자아 찾기의 즐거운 여정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연 언니가 처한 상황은 나의 참혹했던 옛 경험과 감정들을 떠올리게 했고, 어떻게든 언니가 부모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기에 언니가 익히 보여준 ‘부모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갈망과 절실함이 강한 에너지로 작용함은 물론이었고, 우리의 이러한 욕구들은 다소간의 성향 차이를 가진 우리 둘을 더욱 빨리 결합하게 해준 매개체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러저러한 상황과 여러 교사들의 각고의 노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어머님의 오랜 반대를 극복하고, 수연의 ‘탈집, 체험홈 평원재 입성 프로그램’이 확정, 준비 단계에 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수연 언니의 외박은 사실 1박이라기보다는 무박에 가까웠습니다. 어머님의 외박 허락을 대대적으로 경축하기 위해 야학 교사들과 언니, 우리들의 ‘술 파티’가 밤새 이어졌거든요. 언니 활동보조 일을 시작하기 전, 저는 누군가와 1:1의 관계를 맺어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과연 내가 그 어떤 일보다 상호간의 호흡과 감정 조절이 중요한 ‘활동보조’를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엄청났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정말 정말 다행히도 수연 언니와 저에게는 자유에 대한 갈망 이외에도 커다란 공통점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술’과 ‘밤에 깨어 있기’를 즐겨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야학이 주창해 온 ‘약물 치료’에 최적화된 저와 언니는 이를 계기로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외박이 감행되기 이전, 우리 둘은 나름의 사전 준비를 했었는데요, 핵심은 귀가 시간을 점진적으로 조금씩 늦춰가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1단계로, 언니와 나는 연극이나 영화를 관람하는 등 문화생활을 즐기거나, 주로 낮 수업을 함께 했던 학생 및 교사들과 술자리를 가지며 지하철 막차를 타고 집에 귀가하기를 수차례 반복했습니다. 그 다음, 결정적이었던 건 귀가 시간을 미리 통보하지 않고 술을 마셨던 일입니다. 이것은 사전에 기획되었다기보다는 불금에도 장애인콜택시를 대대적으로 늘려주지 않는 정부의 불합리한 방침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한, 나쁜 제도에 힘입은 성공적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여느 때처럼 전화를 하면 한두 시간 내에 당도할 것이라 여겼던 장콜이, 하필 그날이 ‘금요일’ 밤이라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요인으로 인해 기약이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지하철은 일찌감치 끊겼고, 어머님은 10분 단위로 전화하시고, (이런 와중에 배터리가 나가 핸드폰을 충전했는데 저와 통화가 되지 않자 어머님이 그 새벽에 온 야학 상근자들에게 전화를 돌리는 불상사까지. 15분 남짓한 충전 시간 동안 부재중 전화가 10통도 넘게!) 시계는 일찌감치 12시를 넘어 1시, 2시, 3시를 향해 달려가고, 야학 주변 언니의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술집들의 영업시간 종료로 인해 몇 번을 전전해 안착한 ‘피쉬 앤 그릴’은 4시에 역시나 문을 닫는다 하고. 그 다음엔 어디로 가야 하나 하는 걱정과 함께, 이미 만취해 반쯤 눈이 감긴 언니와 얼굴이 뻘게진 저는 예상치 못한 이런 상황에, 그리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님의 역성에 잔뜩 쫄아서 하염없이 웃었습니다.
어머님한테 혼날까봐 겁도 나고, 마흔을 넘보는 딸이 집에 안 들어온다고 20통 넘게 전화해야만 하는 부모의 초조함, 걱정되는 그 ‘마음’ 앞에 우리의 술 마시고 즐길 자유를 당당히 펼치지 못하고 잔뜩 쫄아 있는 언니와 저의 처지가 기가 차서 웃었습니다. ‘활보 짤리면 언니가 책임지쇼’라는 둥 술에 취한 대화들이 오가던 중, 주무시는 아버님을 깨워 당장 이쪽으로 보내겠다는 어머님의 청천벽력과 같은 통보로 전화기에 불나는 상황이 종료된 직후, 3시 20분 경 기적적으로 장콜이 잡혔다는 문자와 전화가 날아들었고, 그렇게 우리의 예기치 못했던 ‘술’ 사건은 종료가 되었습니다. 이후 정말 큰 난리가 날거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어머님께서는 “일찍 일찍 좀 다녀!”라는 쿨한 멘트 이외에 별다른 말씀은 없으시더라고요. 수연 언니는 어머님을 진짜 많이 닮았습니다. 모녀가 아주 쿨합니다.
그러고 나서 얼마간의 자신감을 얻은 우리의 외박 거사가 계획되었습니다. 기꺼이 장소를 제공해 주시고 먼저 제안해 주신 김유미 선생님을 필두로, 외박의 ‘죄’를 분산시키고자 거사에 많은 교사들을 끌어들였고, 언니와 저는 만일 어머님께서 허락해 주시지 않는다 해도 무대뽀로 집에 들어가지 않을 작정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구세주와 같이 등장하신 우리의 고장 샘은 역시나 달랐습니다. 8개의 이유로 외박 불가지론을 펼치시는 어머님을 상대로 진행된 1시간여의 협상 끝에, 결국은 이 모든 것이 ‘어머님 마음의 준비’라는 단 하나의 이유에서 비롯됨을 간파한 고장 선생님께서는 놀랍게도 ‘니들 마음대로 하라’는 어머님의 허락을 이끌어 내셨습니다. 거사에 동참한 모든 교사들은 기쁨에 환호를 내지르며, 수연 해방 만세를 부르며, 아주 의기양양하게 아버님이 손수 운전해 주시는 야학 봉고에 실려 ‘새천년 호프’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언니와 저는 그날 새벽, 집주인이었던 유미 샘을 제외한 전원을 초토화시킨 후 유유히 거사 장소에서 빠져나왔습니다.
단언컨대, 수연 언니의 외박은 결코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6월 셋째 주로 예정되어 있는 ‘정수연 탈집, 체험홈 평원재 입성 프로그램’은 6월을 맞아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할 것이며, 이후에는 2박 3일 정동진 기차 여행, 혹은 임당 샘 양양 고향집 방문 등 보다 외박다운 외박을 계획 중에 있습니다. 부모님 없이 제주도나 가까운 일본 여행 등 비행기 한 번 타보는 게 외박 프로젝트의 종착점인데, 사실 아직 갈 길이 너무나도 멉니다. ‘어머님 마음’은 체험홈 입성으로 일단락되었다 해도, 밥 먹는 것에서부터, 용변, 씻기 등 아직 물리적으로 산적해 있는 해결 요소들이 많습니다. 어머님도 다 하는데,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무대뽀 정신을 발휘하면 하나하나 어떻게든 되겠죠, 하고 있습니다. 많이들 도와주세요. 우리 다 같이 수연 독립 만세를 외쳐보아요.
근시일 내에 홍대 클럽을 하나 뚫기로 했는데, 앞서 말씀드린 언니와 저 사이에 존재하는 다소간의 성향 차이가 여기서 문제로 작용할 것 같습니다. 저는 시끄러운 클럽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아니, 사실은 싫...어...합니다. 근데 언니의 반응은 예상은 했지만, 그 이상으로 폭발적이어서 걱정입니다. 클럽은 아직 문턱에도 가지 않았는데, 밤 12시에 홍대 거리를 활보하는 것만으로 눈빛과 몸짓이 달라집니다. 저는 클럽에 가서 진정으로 ‘흥’을 즐길 자신이 없습니다. 수연 언니와 함께 춤의 세계로 빠져드실 분, 우리 조만간 홍대입구역 1번 출구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