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봄 107호 - 우리는 누구일까요?
우리는 누구일까요?
이정훈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에서 활동한지 8개월 째 접어든 장애인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슨 욕을 먹더라도 해야 속이 풀리는 성격 안 좋은 장애인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일 하지도 않아도 돈이 없어도 즐겁고 행복해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이상한 장애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을 사회라고 부릅니다. 그 사회에서 요딴 일, 저딴 일 등등이 일어나는데,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그 이유들을 밝혀내려고 애를 쓰는 학문을 사회학이라고 부릅니다. 그 사회학에는 여러 이론들이 있는데, 그 이론들 중에 갈등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갈등이론은 사회에서 이러쿵 저러쿵 발생하는 일들이, 상반된 입장에 있는 개인이나 집단이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고 등 두드려 주며 의견 차이를 좁혀가려는 노력의 과정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갈등이론은 오히려 사회에서 이런 저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은 개인과 개인 또는 집단과 집단 간의 끊임없는 싸움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조금 더 이야기를 하자면, 이 사회에는 돈과 힘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 위에서 명령하고 조종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 돈과 힘을 가진 사람들 밑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갈등이론은 그래서 이 사회는 이 두 집단이 쉴 새 없이 치고받고 싸우는 전쟁터라고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지배하는 사람들을 부르주아라고 하고, 돈 없고 지배당하는 사람들을 프롤레타리아라고 합니다. 이러한 구분을 두고 계급을 나눈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사실 굉장히 오래 된 것입니다. 1800년도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했으니 말입니다. 특히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의 몸을 사용해 노동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자신의 몸 이외에는 가진 것이 없는 계급이라고 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처음이나 지금이나 그 쓰임새는 그리 많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장애인들은 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속해 있을까요?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장애인들과 같이 세상이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입니다. “어이, 당신들, 세상을 좀 살기 좋게 바꾸고 싶다며. 근데 당신들은 우리 장애인들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이라고 생각해?”라고 말입니다.
이런 질문들을 혼자 속으로 품고, 세상 좀 바꾸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그들도 여전히 우리 장애인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저들도 장애인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프롤레타리아가 가장 낮은 계급인데, 장애인들은 그 가장 낮은 계급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장애인들이 프롤레타리아라고, 아니 이 공동체의 미래를 걱정하는 정의로운 시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년 11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민중총궐기에 동참했습니다. 그것도 제일 선두에 서서 행진하며 도로를 점거하고 차들을 막아 행진하는 사람들이 신나게 걸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백남기 농민께서 맞아 쓰러지셨던 물대포를 같이 맞아가며 싸우기도 했습니다. 민중총궐기의 모든 순서가 끝날 때까지 광화문 네거리를 지키며 함께 밤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당당하고 정의로운 프롤레타리아로 또 시민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그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은 과연 우리 장애인들을 어떤 사람들로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같은 시민, 같은 프롤레타리아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함께 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는 투사들로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요즘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렇든 다치거나 병 때문에 그렇든, 몸의 어느 부분이 자유스럽지 않은 사람을 장애인이라고 부르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우리 장애인들은 프롤레타리아에도 속하지 못합니다. 정부의 수급비를 받아 살아가는 장애인들은 시민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럴 바에야 우리끼리 이름 하나 만들면 어떨까 싶습니다. 시민도 프롤레타리아도 아닌 우리는 ‘장애인 계급’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장애인 계급입니다.